연중 제1주간 화요일(2024.1.9.) : 사무 1,9-20; 마르 1,2-28
아기를 낳지 못해 애태우던 한나는 성전에 가서 주님께 기도하여 사무엘을 낳았습니다(독서). 즉, 하느님께서는 한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예언자가 되어 장차 하느님의 일꾼이 될 사무엘이 태어나게 도우신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카파르나움에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악령이 들린 사람을 만나신 예수님께서는 그를 자유롭게 해방시켜 주셨습니다(복음). 그에게 들어갔던 악령을 쫓아내주신 것입니다.
한나의 기도를 하느님 즉 성령께서 들으시고 그 뜻을 이루게 도와주셨다는 대목도 우리가 유념해야 하겠습니다만, 특히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 볼 대목은 예수님을 만난 악령이 드러낸 활동양식입니다.
악령이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마르 1,24) 하고 소리를 지르며 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말씀을 가르치셨을 때였습니다. 회당에 모인 보통 사람들에게는 악령이 자신의 정체를 가릴 수 있었지만 예수님께는 그 정체를 감출 수 없었습니다. 그 악령은 예수님께서 말씀을 가르치시던 권위로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마르 1,20)고 꾸짖듯이 명령하시자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켜 놓고는 쫓겨났습니다.
정신을 움직이는 영은 하느님과 인간을 이어주는 통로입니다. 하느님의 영이 인간의 혼과 소통이 되어야 비로소 인간은 생기있는 영혼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만일 인간의 혼이 성령이 아니라 악령에 사로잡히게 되면 생기가 사라질 뿐 아니라 도리어 악령의 힘에 사로 잡혀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은 죽음의 기운입니다. 그래서 선과 악을 식별하지 못하게 되어 죄를 저지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도 죄에 물들입니다.
이것이 악령의 활동양식으로서, 악령의 또 다른 이름인 마귀가 세상과 인간을 지배하는 방식입니다. 신앙 진리의 공리와 공식에서 파생되는 반대 명제(反對 命題)라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소홀히 인식하거나 무시하여 행동하게 되면 공리와 공식을 응용하기 어렵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사회교리의 주요 원리를 신앙 진리의 실천 명제로서 가르치는 것입니다.
세상에 흔히 돌아다니는 악령은 사람들의 영적 감각을 무디게 하여 악을 선으로 위장하거나 또는 이런 위장한 선을 악인 줄도 모르고 좇아가게 만듭니다. 그런가 하면 하느님의 말씀은 성령께 귀를 기울이도록 사람들을 이끌어 세상의 혼탁한 영적 현실을 간파하게 만들어주고 선한 사람들이 악에 물들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타락시키는 더럽고 악한 영에 반대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으로 들은 대로, 성령께서 그 악령을 쫓아내시도록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말에서는 악령에 들린 이른바 ‘부마’(付魔) 현상을 일컬어 ‘정신 나갔다’거나 ‘미쳤다’고 에둘러 표현합니다. 개인이나 집단에서뿐만 아니라 나라와 나라, 민족과 민족 사이에서도 미쳐 돌아가는 일이 많은 세상입니다. 이른바 사회적인 구조악을 조장하는 악령을 쫓아내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권위있게 말씀하셔야 할 상황입니다. 그러자면 한나 같은 그리스도인들이 성령께 기도해야 합니다.
인간의 영이 성령의 이끄심을 받게 되면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지게 되어 세상에 만연한 죄악 속에서도 선을 창조해 낼 수 있습니다. 악인들이 악령에 사로잡혀 만들어낸 죄악을 발판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하여 교회가 가르치는 사회교리는 그리스도인들이 왜, 무엇을,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에 대한 검증된 진리를 알려줍니다.
첫째, 인간의 존엄성이 유린되거나 짓밟히는 현실은 명백히 악령이 설친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따라서 성령의 이끄심을 받으려는 그리스도인은 인간의 존엄성이 존중받는 현실을 위하여 기도하고 또 맞갖은 실천을 해야 합니다.
둘째, 사회적 공동선이 침해되거나 그 혜택이 고르지 못하게 나누어지는 편중 현상과, 그래서 힘 없는 사회적 약자들이 소외되고 차별받는 현실도 악령이 지배하는 사회 현실입니다. 따라서 성령의 이끄심을 받으려는 그리스도인은 사회의 공동선이 보호되고 증진되는 현실을 위하여 기도하면서 맞갖은 실천을 해야 합니다.
셋째, 재화의 보편성이 실현되지 못하고 자본이 우상처럼 군림하는 현상도 명백한 사회악입니다. 사람은 하느님과 재물을 아울러 섬길 수 없습니다. 따라서 성령의 이끄심을 받고자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들처럼 함께 나누고 섬기는 공동체를 세우고 그 안에서 기도하고 실천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라는 명제가 재화의 보편성 원리에서 파생되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넷째, 사회적 약자들이 공동선 실현에 자주적이고 자율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보조성은 사회적 약자들의 행복과 사회 통합에 긴요한 가치입니다. 그러므로 흔히 침해되기 쉬운 이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이끄심을 받는 그리스도인들이 앞장서서 사회적 약자들의 자주성과 자율성을 보장하는 사도직에 나서야 합니다.
끝으로는 흔히 사회에서 고립되고 소외되어 있기 일쑤인 사회적 약자들이 서로 힘을 모을 수 있도록 믿는 이들이 투신해야 하는 연대성은 성령의 이끄심이 각별히 필요한 실천 명제입니다. 악령은 이기심과 욕심을 부추겨서 사회적 약자들의 처지에 무관심하게 만들고, 사회적 약자들 자신도 무기력하게 만들곤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보잘것없는 이 작은 이들을 하느님의 천사들이 보살피고 있다고 말씀하셨고, 이들에게 행한 자비와 사랑으로 우리의 영원한 운명이 결정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우 여러분!
하느님께서는 성령으로 우리 믿는 이들을 이끌어주시며, 우리의 기도와 예수님의 말씀으로 악령을 몰아내어주십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