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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찬양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다
  • 이기우
  • 등록 2023-06-09 16:4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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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9주간 토요일(2023.6.10.) : 토빗 12,1-20; 마르 12,38-44


욥기와 마찬가지로 토빗기는 실제 있었음직한 전형적인 인물들과 역사적 사건들을 대표적으로 처리해서 교훈을 주려고 쓰여졌습니다. 그래서 ‘토비트’와 ‘토비야’ 그리고 ‘라구엘’과 ‘사라’라는 가공인물을 내세운 이러한 교훈문학은 유다 역사 말기에 원로들이 이교인들의 헬레니즘 풍조에 빠져들기 쉬운 젊은 세대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유다교의 메시지를 전해주기 위해서 쓰여졌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라파엘 대천사가 남기고 간 메시지는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 하느님의 업적은 밝히지 않아도 되며 오직 살아 있는 모든 이 앞에서 하느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찬미하여라.


둘째, 진실한 기도와 의로운 자선으로 베푸는 선행이 하느님을 찬양하는 일이다.


셋째, 진실하게 기도를 바치면 대천사가 듣고 하느님께 전해 드린다. 그리고 기도에 응답하러 대천사가 지상으로 파견된다.


그런가 하면 오늘 복음은 군중에게 율법 학자들의 위선을 경고하면서 신심 깊은 가난한 과부의 봉헌을 칭찬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전해 주었습니다. 부유했던 율법 학자들은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 그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도 가진 것을 모두 다 넣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봉헌의 진정성입니다.


박해시대 모두가 궁핍했던 교우촌 신자들은 그 과부의 진성성을 올곧게 실천하였고, 이 전통을 물려받은 구교우들도 주일미사의 헌금을 바칠 때에는 다만 얼마라도 헌 지폐를 다림질을 해 가며 새 돈처럼 다듬어서 봉투에 넣어서 정성껏 봉헌하곤 하였습니다. 얼마를 바치면 더 크게 갚아주시리라는 헛된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더 받을 것을 기대하고 바친다면 그것은 봉헌이 아니라 투자로 전락하는 것이며 심하면 하느님과 거래하려는 교만의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봉헌의 진정성은 자신이 땀 흘려 얻은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귀하게 바치는 데에서 나타납니다. 이러고 보면 그 가난한 과부는 라파엘 대천사의 두 번째 충고를 귀담아 들었던 전형적인 유다인 아나빔이었고, 자신의 삶과 재산으로 하느님을 찬양한 귀감이었습니다.


라파엘 대천사가 처음에 당부한 대로, 하느님의 업적은 굳이 밝히려 들지 않아도 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온 세상을 지어내신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지어내신 세상 만물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분의 창조 업적은 드러납니다. 이를 부인하려는 얄팍한 과학주의적 사고방식 탓으로 부질없이 창조를 부인하는 진화론자들이 설칠 따름입니다.


삼라만상이나 생명체들의 먹이사슬로 엮여져 있는 생태계, 무엇보다도 이 모두를 의식하고 하느님의 존재까지도 믿고 닮고자 하는 인간 현상을 놓고 창조주를 부인하는 진화론자들의 주장은 과학의 근본 철칙인 인과율(因果律)에도 어긋납니다. 자연이나 생명체들의 질서정연한 생태계는 그 자체로 창조 업적을 증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구체적으로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선물이나 은총에 대해서는 하느님을 찬미해야 합니다. 찬미함으로써 하느님께 영광이 더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구원에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은총에 감사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자신을 하느님께 속한 존재로 스스로에게 각인시키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는 우리의 찬미가 필요하지 않으나 저희가 감사를 드림은 아버지의 은사이옵니다. 저희 찬미가 아버지께는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으나 저희에게는 주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에 도움이 되나이다”(연중평일 감사송 4).


그런데 찬미가는 있어도 찬양가라는 기도 양식이 따로 없는 이유는 하느님 찬양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한 기도로 하느님과 소통하며 그 소통에 대한 응답으로 의로운 자선을 행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네 삶이 그 자체로 하느님께 대한 찬양이 되려면 기도로 하느님과 소통하며 그 소통의 결과로 자선을 행하여 가진 것을 나누면 됩니다.


한 가지를 더 들자면, 예수님께서 몸소 모범을 보여주시고 또 가르치신 바대로 서로 섬기는 행실을 갖추는 것입니다. 섬김과 나눔은 기도로 하느님과 소통한 결과입니다. 섬김과 나눔은 겸손과 절약의 미덕을 쌓게 해 주고, 자칫 교만할 수 있고 인색하기 쉬운 우리 자신을 단련시켜줍니다. 이러한 덕행과 수련이 우리에게 마귀의 유혹이 닥칠 때에 우리를 보호해 주는 보호막이 되어 줍니다.


라파엘 대천사의 세 번째 메시지인 진실한 기도와 응답에 대한 확신도 매우 중요합니다. 비록 가진 것이 없어도 정성껏 바치는 봉헌을 하면서 그 지향으로서 이타적으로 공동선을 위한 기도를 바치면 대천사들이 응답해 줍니다.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을 받는, 이러한 영적 질서는 계절이 순환되고 별들이 자전과 공전을 규칙적으로 하고 있는 자연 질서 이상으로 확실하고 정교한 것입니다.


응답이 구체적으로 이루어지기 전에 기도할 때부터 이미 받은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고 예수님께서는 가르치셨고, 실제 당신 자신도 그렇게 살아가셨습니다. “너희가 기도하며 청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이미 받은 줄로 믿어라. 그러면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마르 11,24).


교우 여러분! 세상 모든 일을 섭리하시는 하느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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