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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서, 하느님께로 이끄는 ‘말씀’
  • 이기우
  • 등록 2023-04-25 14: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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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2023.4.25.) : 1베드 5장; 마르 16장

 

오늘은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입니다. 마르코는 바르나바의 사촌(콜로 4,10)이며 베드로의 수행비서(1베드 5,13)로 활약을 하다가, 바르나바가 바오로와 함께 시도한 소아시아 선교여행에 수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마르코는 베드로와 함께 바오로로부터 신학적 영향을 받아 복음서를 펴낸 인물로서, 두 사도의 가르침을 증언하여 기록을 남긴 초대교회의 교부가 되었습니다. 


마르코는 바르나바가 주도한 첫 번째 선교여행에 함께 했었지만 중도에 포기하고 돌아와 버렸습니다. 이를 전하고 있는 사도행전에서는 이에 대해 별다른 설명 없이,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에서 수행한 선교활동에 대해 전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분명히 주도권은 바르나바에게 있었을텐데도, 안티오키아 회당장들은 바오로에게 백성을 격려할 말씀을 청했고, 이에 따라 바오로는 그가 십여 년 동안 숙고했던 이스라엘의 구원 역사를 재해석해서 들려주었습니다. 이 중에 새로운 부분은 이것입니다. “이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을 구원자로 이스라엘에 보내셨습니다”(사도 13,23).


바리사이들이 놓쳤던 부분이기도 했고 사울이 벼락을 맞고 십여 년 동안 고심하며 깨달은 계시진리가 바로 이것이었지요, 예수님을 구원자로 알아보지 못한 것. 하지만 1차 선교여행에서 요한 마르코가 허락도 없이 되돌아간 것 때문에 2차 선교여행에서 바르나바와 바오로 사이에 심한 언쟁이 벌어졌습니다. 바르나바는 2차에도 마르코를 함께 데리고 가자고 주장했으나, 바오로는 팜필리아에서 자기들을 버리고 떠난 사람을 데리고 갈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그 두 사도는 감정이 격해져서 서로 갈라졌습니다(사도 15,36-39). 


그래서 바르나바는 마르코를 데리고서 배를 타고 고향인 키프로스로 떠나가 버렸고, 바오로는 실라스를 새로운 동반자로 삼아 소아시아의 내륙으로 깊숙이 들어갔다가 필리피를 거쳐 데살로니카와 아테네 그리고 고린토에까지 가서 선교활동을 전개했습니다. 


여기서 우리의 관심은 ‘마르코라 불리우던 요한’(사도 12,25; 15,37)이 왜 돌아갔을까 하는 점입니다. 성경이 이 점에 대해 침묵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마르코가 한 일과 바오로가 한 일을 비교해서 객관적으로 추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바오로는 편지들을 썼고 마르코는 복음서를 썼습니다. 


바오로가 쓴 편지는 주어가 바오로로 나오지만, 마르코가 쓴 복음서는 주어가 예수님으로 나옵니다. 바오로는 이미 십여 년 동안 그분에 대해서 숙고할 만큼 숙고했기 때문에 예수님께 관해 더 알기 위해서는 더이상 누군가를 만날 필요가 없었으므로 예수님의 복음을 선포하고 공동체를 소아시아 곳곳에 건설하는 데 진력하면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필요한 사람들을 만나러 해외 디아스포라의 유다인 회당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마르코는 예수님께서 수행하셨던 공생활을 재구성하느라 예수님의 첫 제자이자 수제자였던 베드로의 증언을 기초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취재하여 보충했으며, 복음서에는 자신의 이름은 빼고 예수님을 주어로 그분이 하신 행적 위주로 썼습니다. 그 결과로, 마르코는 교회 역사상 최초로 예수님의 복음서라는 유형의 성경을 처음 쓴 복음사가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사도 바오로에게 배웠던 대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면 절대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알 수 없다는 신학을 바탕에 깔았습니다. 실제로도 마르코가 지도하던 신앙 공동체들은 바오로가 지도했던 신앙 공동체들의 영향력 하에 있었습니다. 로마 제국으로부터 음으로 양으로 다가오는 모진 박해를 견뎌 내야만 했던 것이 마르코와 바오로가 몸담았던 공동체들이었기 때문에, 이 ‘십자가 그리스도론’은 당시 교회로서는 대단히 절박한 명제였습니다. 


아마도 어쩌면 마르코는, 사도 바오로가 생전에 예수님을 직접 뵌 적도 없으면서도 유창한 언변으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설파하고, 또 그분이 마음에 드실 만한 공동체를 세우는 선교활동에 대해서 깊이 존경하면서도, 행여나 사람들이 예수님을 ‘걸어 다니는 하느님’ 정도로 신격화시키는 나머지 역사의 예수님과 그분의 인성을 잊어버리지나 않을까 그리고 그렇게 되면 신자들이 예수님을 공경하기만 할 뿐 닮으려는 노력은 소홀히 하지 않을까 하고 염려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철저히 예수님이 드러나시도록 복음서를 구성하여 썼고 초점은 ‘십자가의 그리스도’에 두었습니다. 그리하여 마르코는 80여 꼭지에 이르는 본문마다 ‘예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으며, 자신의 복음서를 읽는 독자로 하여금 답변하도록 유도함으로써 복음서가 그 독자를 읽도록 하였습니다. 


사실 우리가 성서를 읽으면 성서가 우리를 읽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시도를 마태오, 루카 그리고 요한까지 계승하는 덕분에 오늘날 우리가 보는 바와 같은 네 복음서가 출현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네 복음서는 단지 성서를 구성하는 한 요소가 아니라, 성서를 대표하는 성경이며 우리를 하느님께로 이끄는 ‘말씀’이고, 이 말씀에 따라 우리의 삶을 창조하면 우리의 삶을 통해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는 하느님의 계획이 이루어집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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