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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직무, 예수님 현존을 통해서만 생명을 얻는다
  • 이기우
  • 등록 2023-04-21 17: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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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2주간 토요일(2023.4.22.) : 사도 6,1-7; 요한 6,16-21 


오늘 복음의 상황은 빵의 기적으로 많은 군중을 배불리 먹이신 예수님께서 억지로라도 당신을 임금으로 모시려고 쫓아오던 군중을 피해 산으로 기도하러 가셨다가 겪으신 일입니다. 그 동안 제자들은 따로 배를 타고 갈릴래아 호수 한가운데로 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날이 어두워지자 큰 바람이 불어 호수에 물결이 높게 일었습니다. 이 바람은 북쪽 헤르몬 산에서 불어 내려오는 바람과 서쪽 지중해에서 불어 올라오는 바람이 마주치는 맞바람이었습니다(마르 6,45-52). 새벽이 되자 더욱 거세어진 바람에 밀려 배가 뒤집어질 지경이 되었고 높은 파도로 인해 스며든 물이 가득 차서 배는 가라앉을 지경이 되었습니다(마태 14,22-33). 


예수님께서는 며칠째 군중을 가르치시느라고 시달리셨기 때문에 커다란 기적을 일으키시고 나서는 이들로부터 벗어나서 혼자 기도하시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군중도 제자들도 다 돌려보내시고 헤르몬 산에 올라 하느님께 기도하시다가 문득 제자들이 처한 위험이 감지되셨나 봅니다. 그리고 그 위험은 매우 다급하게 느껴지셨던 것 같습니다. 당신이 타고 가실 배도 없었던 형편이었으므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구하러 서둘러 가시느라고 물 위를 걸어가서 구해 주셨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제자들은 놀라서 유령인 줄 착각하기도 했지만(마태 14,26), 예수님께서는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요한 6,20) 하고 배에 오르셨습니다. 그분이 배에 오르시자 그렇게 거세게 불던 바람이 갑자기 멈추었습니다(마르 6,51). 기적 같은 일은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을 때는 맞바람 때문에 노를 젓기가 그렇게 힘들더니(마르 6,48), 그분이 함께 계시니까 노를 젓지 않았는데도, 배가 어느새 제자들이 가려던 곳에 슬그머니 가 닿았던 것입니다(요한 6,21). 


바람과 파도가 잔잔해지는 자연현상의 기적보다도 더 중요한 기적은, 이로 인해 제자들의 마음도 가라앉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가려던 곳에 어느새 가 닿을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빵이 늘어난 일이나 물 위를 걸은 기적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가려진 이 기적 현상이 오늘 미사의 복음에서 들려온 하느님의 메시지이고, 이는 독서에서 부제 직무를 신설한 사도들의 행위와 맞물려서 교회 직무에 관한 매우 중요한 통찰을 우리에게 제공합니다. 그것은 사제든 부제든 교회의 직무는 예수님의 현존을 통해서만 생명을 얻는다는 점이고, 그래서 성령이 충만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어제의 독서 말씀에서 들으셨다시피, 성령을 받은 후 사도들은 대외적으로는 박해의 상황 속에 놓여 있었습니다. 대사제, 수석 사제들과 경비대장 등을 앞세운 유다 최고 의회로부터 툭하면 체포되어 심문을 받았고, 매질도 당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해서는 입도 벙긋 하지 말라고 함구령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사도들은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사도 4,20)고 버티기도 하고, “사람보다 하느님께 순종해야 하지 않겠습니까?”(사도 5,29) 하고 항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이에 격분한 대사제로부터 매질을 당하기도 했는데 그때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욕을 당할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았다고 기뻐하며, 최고 의회 앞에서 물러 나왔습니다(사도 5,41). 그런 와중에도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은 군중 앞에서 태생 불구자를 일으켜 세우는 기적을 행하기도 했고, 이 기적을 목격한 군중과 소문을 들은 이들을 합해 무려 5천 명 이상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는 또 다른 기적을 일으키기도 하며, 몹시 분주하게 복음을 선포하고 있었습니다. 


한편 공동체 내부에서는 그리스계 유다인 과부들이 식량 배급을 받을 때에 홀대를 받은 일로 해서 불평이 터져나오게 되자, 사도들은 자신들이 행하고 있던 복음선포에 집중하고자 식량 배급과 공동체 내부의 모임을 주재하고 말씀을 전할 직무를 신설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다만 사도들은 이 직무를 담당할 제자들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사도 6,3)이어야 한다고 직무 조건을 제시하였습니다. 이로써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부제 직무가 신설되었습니다. 


이 조치는 이방인 신자들에게 할례를 면제하게 된 결정과 더불어 사도들이 예수님 없이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공동으로 합의한 첫 결정이었습니다. 이것이 훗날 교회가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중대한 결정을 해야 할 때마다 소집했던 역대 공의회의 유래가 되었습니다.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 내린 이 결정은 또한, 사제직과 예언자직과 왕직으로 구분될 수 있는 ‘예수 추종의 직무’에 있어서 사도들이 수행하던 사제직으로부터 예언자직과 왕직을 분리해 내려던 조치였습니다. 이리하여 부제들 중의 한 명으로 선출된 스테파노의 예로 미루어 보면, 당시 부제 직무는 말씀도 선포하고 식량 배급도 담당한 것으로 보아 그렇습니다(사도 6,8-15).


말씀을 선포하는 직무는 물론 교회 재정을 담당하는 직무에 있어서 간직해야 하는 자세는 예수 추종과 성령 순종입니다. 주교와 사제와 부제 등 오늘날 교회 직무 담당자들도 이러한 은총을 청해 받는다면 우리가 탄 교회라는 배는 어느새 가려던 목적지에 가 닿을 것입니다. 교회와 복음화를 위해 무척 소중하고 바람직한 직무영성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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