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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데모와의 대화, 그 뒷이야기
  • 이기우
  • 등록 2023-04-18 22: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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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2주간 수요일(2023.4.19.) : 사도 5,17-26; 요한 3,16-21


오늘 복음은 니코데모가 예수님과 질의응답으로 나눈 대화에 이어진 본문입니다. 니코데모의 반응이 어떠했는지 본문에 소개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가 예수님께서 화두로 던져주신 말씀을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을 것을 전제로 요한 복음사가가 깨달은 바에 입각해서 이 대화를 보충하고 있습니다. 


니코데모는 유다인 구도자를 대변합니다. 모세와 여호수아가 성취했던 파스카 과업의 수준을 회복하지 못한 채 속절없이 흘러온 천년의 세월을 배경으로 하고, 도대체 언제나 이스라엘이 파스카 소명을 성취할 수 있으며 누가 이 성취를 이끌어줄 수 있을 것인가를 묻는 극소수 유다인 구도자의 대변자가 그였습니다. 


니코데모는 현대의 과학주의자도 대변합니다. “이미 늙은 사람이 어떻게 또 태어날 수 있겠느냐?” 라는 반문이 과학적 사고방식에서 나온 것이고 또한 그 맹점도 드러냅니다. 또한 합리주의자도 대변합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으면, 병자를 치유하고 마귀들을 쫓아내는 그런 기적들을 아무도 일으킬 수 없다.”는 판단은 합리적 사유방식에서 나온 것이고 그 한계도 드러냅니다. 


그리고 니코데모는 실용주의자마저 대변합니다.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는 없지 않습니까?” 하는 식의 접근은 영적인 현실을 감각적인 이미지로만 인지하는 실용적 인지능력을 대변하는 것이고 또한 자기 수준을 스스로 심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대신해서 후세의 수많은 니코데모들에게 모범 답안을 제시합니다.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며, 파스카 과업과 또 이를 위한 부활의 현실을 이루고자 하는 이들은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본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미 존재하는 세상의 창조주를 알아보지 못하는 과학주의적 사고방식의 맹점을 극복하게 해 주려는 가르침입니다. 


온갖 기적들을 통해서 예수님의 신성을 알아보기는 하면서도 정작 자기 자신들은 그 신성을 받아들이려는 합리적 노력을 엄두도 내지 못하는 합리주의의 한계를 넘어서게 해 주려는 채찍이기도 합니다.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가 나오려고 하기보다는 어머니의 사랑과 모범을 본받으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 실용주의의 장애를 딛고, 사랑을 빛으로 비추기 위한 실용적 시도를 하라는 무언의 죽비이기도 하지요. 


그런가 하면 오늘 독서에서는, 최고 의회가 군중의 기세에 눌려 마지못해 풀어주었던 사도들을 다시 체포하여 감옥에 가두었는데 주님의 천사가 이들을 감쪽같이 탈옥시켰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남들을 구해 주면서 자기 자신은 구하지 못한다.”(마르 15,31)고 유다인들로부터 조롱을 받으신 적이 있는데, 당신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저 수난을 참아 받으시더니 당신의 일을 하는 사도들이 위험에 닥치자 얼른 천사들을 시켜 구해내셨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서 이제는 베드로와 요한만이 아니라 모든 사도들이 두려움 없이 확신에 차서 복음을 선포하게 되었습니다. 반면에 대사제와 수석 사제들과 경비대장 등 악인들은 예수님을 기세 좋게 죽여 버렸을 때의 상황과는 딴판으로 막심한 좌절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요한의 관점으로는 빛과 어둠으로 갈리는 심판적 상황입니다. 이렇게 심판을 받아 진리와 정의를 거스르는 감옥에 스스로 갇힌 자들 중에는 행동으로나 말로 폭력을 저지르는 자들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따라 살지 않으면서 그분의 이름을 팔아 정작 실천해야 할 진리와 정의 그리고 사랑을 미루고 자신들의 배만 채우는 자들도 그에 해당됩니다. 이러한 어리석은 소행이 빌미가 되어, 오류와 불의의 어둠에 남아있는 과학주의자, 합리주의자, 실용주의자들이 종교를 무시하고 교회를 배척하며 신앙마저도 미신으로 취급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예수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으니, 이것이 세상에 대한 당신의 극진한 사랑입니다”(요한 3,16).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창조하신 세상이 죄악으로 망가져가는 것을 지켜보시다가 다시 당신이 보시기에 좋도록 창조하시려고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그 세상의 죄악이 예수님을 당신 아드님이신 줄을 알아보지 못하고 십자가를 짊어지우려 하자, 세상이 당신과 맺어야 하는 관계 양식을 깨우쳐 주시려고 예수님께 그 십자가를 받아들여 목숨을 바치라고 이르셨으니, 이것이 겟세마니에서 이루어진 하느님과 예수님의 영적 대화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예수님의 가르침과 삶이 세상을 새롭게 창조하시려는 하느님의 뜻임을 깨우친 제자들을 사도들로 부활시키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셨으며 복음 선포에 동참하려는 이들로 교회를 세우셨으니, 이것이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극진한 사랑입니다. 


교우 여러분, 이제 우리가 왜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지를 알고, 그 믿음의 길이 왜 십자가로 시작되어 부활로 나아가는지도 깨달으며, 부활이란 파스카 과업의 길에서 행하는 나눔과 섬김의 삶임을 알아차릴 수 있도록, 그 옛날 당신 사도들을 감옥에서 구해내신 예수님께서 또 다른 무명(無明)의 감옥에 갇혀 있는 우리들에게 당신의 천사들을 보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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