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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흔들리는 민주화를 다잡고
  • 이기우
  • 등록 2023-03-31 16:5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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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6월 한반도 평화 기원 미사


사순 제5주간 토요일(2023.4.1.) : 에제 37,21-28; 요한 11,45-56 


에제키엘 예언자가 남겨준 메시지에는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관계를 함축적으로 나타내는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이스라엘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느님의 되리라.”(에제 11,20) 하는 말씀과, “다시는 두 민족이 되지 않고 한 민족이 되게 하리라.”(에제 37,22) 하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두 말씀의 실현가능성을 보증하는 표시는 하느님의 거처인 성전입니다. “나의 성전이 그들 한가운데에 영원히 있게 되면, 그제야 민족들은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에제 37,28). 


구약시대 예언자들의 정통 노선을 보여준 이 세 가지 메시지는 예수님에 이르러 본 궤도에 진입하였습니다. 첫째, 장차 전 인류가 하느님의 백성이 되게 하기 위한 성사로서 교회가 이스라엘 대신에 하느님의 백성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둘째, 사도들에 의해 본시 하나로 세워진 교회는 서방 가톨릭교회와 동방 정교회로 갈라진 채 천여 년을 흘러왔으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계기로 다시 화해하였습니다. 서방교회는 동방교회가 발전시켜온 심오한 영성을 배울 수 있고 또한 선교의 경험을 나누어 줄 수 있습니다. 가톨릭교회와 개신교 공동체들 사이의 관계도 대화의 문을 열어 놓고 서로가 더 복음적이고자 하는 선의의 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입니다. 


가톨릭 그리스도인들은 개신교 그리스도인들이 발전시켜온 말씀의 풍요로움과 성령의 역동성을 배울 수 있으며 성사가 주는 안정성 그중에서도 성체성사가 부여하는 거룩한 변화의 은총에 대해 나누어 줄 수 있습니다. 이것이 갈라진 듯 보이는 교파들 사이에서 교회가 이룩하고 있는 다양성 안의 일치 현실입니다. 


세 번째 메시지는 성전이 하느님께서 거처하시는 장소이면서도 그것은 단지 건물로서만 의미를 지니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현존하시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요청과 희망을 담고 있습니다. 신앙이라는 가치에 의해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위가 이루어지는 한, 우리의 삶은 하느님께서 살아 현존하시는 성전입니다. 우리의 선택이 하느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지는 한, 우리의 삶은 ‘성령의 성전’(1코린 6,19)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 가지 메시지가 모두 그 뿌리를 두고 있어야 하는 기반은 부활 신앙입니다. 하느님 백성의 구심점은 그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이시기 때문이요, 그 하느님은 부활하시어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의 이야기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무릅쓰고 라자로를 소생시키셨는데, 이는 우리 후대의 그리스도인들이 부활하신 당신께 대한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부활의 징표였습니다. 


그런데 이 소문이 파스카 축제를 지내려고 모인 예루살렘 군중 안에서 퍼져나가자, 이에 불안을 느낀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대책회의를 열어서 예수님을 죽일 음모를 꾸몄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경건하게 믿어온 사람들이라고 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 이렇게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대적하는 죄악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아무려나 부활 신앙을 목표로 하는 성전 신학은 건물을 넘어 생명을 향합니다. 이 생명은 개별 생명체에 그칠 수 없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에 따르면 하느님께서 그 안에 거처하고자 하시는 생명은 인간 공동체입니다. 또한 이 공의회가 열리기까지 공의회의 교회 쇄신 흐름을 주도해 왔고, 또 공의회 이후 더욱 가속화된 가톨릭 사회교리의 관점에서 해석하면, 하느님께서 거처하시는 인간 공동체라는 생명은 더욱 사회적인 가치를 향합니다. 


그리하여 선의의 모든 이들과 믿는 이들이 연대하여 인간 존엄성을 실현하는 민주화와 사회 공동선을 실현하는 산업화를 추구하는 것이 인간 공동체의 살아있는 삶입니다. 하지만 민주화를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전인적인 차원에서 즉 육신만이 아니라 영혼까지도 깊이 있게 실현함으로써 인간 소외 현상을 극복하는 동시에, 산업화를 통해 사회적 공동선을 보편적인 차원에서 즉 엘리트들만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실현함으로써 사회 빈곤 현상을 극복하는 한편, 이 두 가지 역사적 진보를 지속적으로 담보해 낼 수 있기 위해서는, 인간 사회가 무신론 사조를 극복하고 창조주 신앙에 기반을 두는 복음화를 지향해야 합니다. 


언제라도 우상숭배 풍조로 기울어질 수 있는 무신론 사회는 민주화와 산업화를 안정적으로 보장할 수 없으며 흔히 야만적인 비인간화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또한 진정한 복음화는 “단순히 더 더욱 넓은 지역에서 또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선교하는 것만이 아니고, 하느님의 말씀과 구원 계획에 상반되는 인간의 판단 기준, 가치관, 관심의 초점, 사상의 동향, 사상의 원천, 생활양식 등에 복음의 힘으로 영향을 미쳐 그것들을 역전시키고 바로잡는 것”입니다(바오로 6세, 「현대의 복음선교」 19항). 


교우 여러분! 지난 2백 년 동안 박해와 식민통치, 분단과 전쟁 등 민족의 고난이 이어지는 가운데 독재 및 빈곤과 싸우면서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룩함으로써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우리 민족이 이제 복음화 과업을 앞두고 있습니다. 잠시 흔들리는 민주화를 다잡고, 산업화를 경제 민주화로 더욱 발전시키는 한편, 우리 민족이 당면하고 있는 현실도 복음의 힘으로 역전시키고 바로 잡을 때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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