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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 기금 횡령 혐의 추기경, 교황 악용하려 해
  • 끌로셰
  • 등록 2023-03-17 15:03:06
  • 수정 2023-03-17 18: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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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젤로 베추 추기경 (사진출처=CNS/Paul Haring)


일명 ‘런던 부동산’ 사태로 알려진 교황청 기금 횡령 사건 재판에서 사건에 연루된 고위 추기경이 교황청 일부 자료에 적용되는 ‘교황비밀’을 악용하여 자신의 비위를 평생 감추려고 한 사실이 드러났다.


지난 9일 이탈리아어판 < Vatican News >를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과 국무원 국무장관을 지낸 안젤로 베추(Angelo Becciu) 추기경 사이의 서한이 공개됐다. 공개된 서한은 총 3통으로, ‘런던 부동산’ 사태 재판이 시작되기 직전인 2021년 7월 말에 오고 간 서한이다.


서한 내용을 살펴보면 베추 추기경은 자신의 무고를 증명하기 위해 콜롬비아 여성 수도자 납치 관련 협상과 런던 부동산 거래가 모두 교황의 지시로 이루어졌다는 내용이 담긴 문서를 내밀며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해당 문서에 서명해달라고 요구하는 등 사실상 자신의 행동이 위법의 소지가 있음을 시사하는 행동을 보였다.


콜롬비아 여성 수도자 납치 사건의 경우 2017년 납치되었다가 2021년 석방된 사건이다. 베추 추기경은 해당 여성 수도자를 위한 협상금 명목으로 교황청 국무원 자금을 임의로 유용했으며, 해당 자금은 베추 추기경에 의해 ‘외교 전문가’라고 지목된 여성이 명품 구매 등에 유용한 것으로 드러난 바 있다.


런던 부동산 사태의 경우에는 애당초 가치가 높지 않았던 부동산을 교황청 국무원 명의로 무리하게 매입하는 과정에서 교황청에 2억 유로(한화 3,000억 상당) 이상의 손실을 입혔다.


재판이 시작되기 전인 6월 21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신은 무고하다는 주장과 함께 이를 증명하는 문서에 서명할 것을 요구하는 베추 추기경의 제안에 매우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교황은 “나는 매우 놀랐다”면서 “당신의 발언과 그에 따른 당신의 절차상 ‘전략’에 깔린 목적에 발을 들일 생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에 비추어 명확히 해야 할 것이 있다”고 서한에서 말했다.


교황은 런던 부동산 구매와 관련하여 “이 제안을 듣자마자 내용, 형식, 시기가 내가 보기에 너무도 이상하여, 국무원장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과 사도좌재무원장 후안 안토니오 게레로 알베스 신부의 사전 자문이 이뤄질 것을 제안할 정도였던 것이 기억난다”며 “이에 더해 그 계획이 다른 것보다 교황청 검찰의 수사를 지연시키려는 목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처음 들었던 우려가 더욱 강해졌다. 이런 요소들을 전반적으로 검토한 결과 나는 해당 계획을 지속하는 것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한, 교황은 베추 추기경이 콜롬비아 여성 수도자 납치 협상금을 교황청 재원에서 재가 없이 지출한 사건을 두고 “기소에 따르면 사리사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본래 용도와 목적에서 벗어난 미비하고 신중치 못한 재원 투여”라고 비판하고 “이런 상황에서 어떤 교황비밀도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이해하리라 본다”고 베추 추기경의 요구를 일단락했다.


이후 베추 추기경은 7월 24일 서한에서 교황이 걸어온 전화에 감사를 표하면서도 “말리에서 납치당한 콜롬비아 수녀 사건과 더불어 제가 교황께 보여드렸던 런던 부동산 매입 제안에서 제가 당신을 속였다고 검찰이 저를 고발했다”며 “교황님을 증인으로 신청해야 하지만 차마 그러지 못하겠다. 대신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확인해주는 당신의 두 가지 서면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심지어 이 과정에서 베추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자신에게 썼던 서한을 ‘무효로 해달라’는 요구까지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베추 추기경이 요구한 두 개의 ‘서면’은 교황의 명령으로 납치된 수녀 석방을 진행했다는 내용, 그리고 런던 부동산 투자를 교황이 ‘흥미롭다’고 여겨 진행하게 했다는 내용이 담긴 서면이었다.


즉, 베추 추기경은 교황청 자금의 횡령이 벌어진 원인이 된 사건 자체가 교황의 명령으로 이루어졌으며, 자신은 그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는 내용에 서명하라는 것이었다.


교황은 이 서신에 답서를 보내면서 ‘분명 거부 의사를 밝혔는데도 다시금 이런 서면을 요구하니 확실히 말하겠다’는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교황은 “당신은 나를 오해했다”며 “특히 비밀유지 거부와 관련해서 나는 고발 내용에 따라 드러난 불투명한 측면을 고려하면 이처럼 중개자에게 돈을 배정한 행위는 국가비밀의 적용을 받을 수 없으며, 교황비밀의 적용도 받을 수 없음을 다시 한번 말씀드린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러니 유감스럽게도 내가 당신에게 이전에 보냈었던 서한을 공식적으로 ‘무효’로 간주해달라고 요구한 당신의 요청에 부응할 수 없다”고 다시 한 번 명확히 전달했다.


이후 프란치스코 교황과 베추 추기경은 별도의 서한을 주고받지 않았으며, 지금까지 50번의 공판이 벌어질 정도로 교황청 재판은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교황청 내사가 시작된 이후인 2020년 베추 추기경은 시성성 장관직 사퇴와 함께 추기경으로서의 모든 직분과 권한을 철회 당한 바 있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1년 4월 성목요일에 베추 추기경의 거처를 찾아 성목요일 미사를 봉헌하기도 했다. 이번에 공개된 ‘냉랭한’ 서한에서도 드러났듯이 지난해 7월에는 전화통화를 하기도 했으며, 이 과정에서 베추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자신을 ‘복권시켜주실 것’이라고 발언했다는 내용의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베추 추기경이 주고받은 서한은 미국 가톨릭 매체 < The Pillar >를 통해 영어로 번역되기도 했다.



[필진정보]
끌로셰 : 언어문제로 관심을 받지 못 하는 글이나 그러한 글들이 전달하려는 문제의식을 발굴하고자 한다. “다른 언어는 다른 사고의 틀을 내포합니다. 그리고 사회 현상이나 문제는 주조에 쓰이는 재료들과 같습니다. 따라서 어떤 문제의식은 같은 분야, 같은 주제의 이야기를 쓴다고 해도 그 논점과 관점이 천차만별일 수 있습니다. 해외 기사, 사설들을 통해 정보 전달 뿐만 아니라 정보 속에 담긴 사고방식에 대해서도 사유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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