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강생의 신비 안에서 기쁜 성탄을
  • 이기우
  • 등록 2022-12-17 16:21:45

기사수정



대림 제4주일(2022.12.18.) : 이사 7,10-14; 로마 1,1-7; 마태 1,18-24

 

오늘 대림 제4주일에는 강생의 신비를 요셉의 믿음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본 묵상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강생의 신비는 요셉의 믿음이 얼마나 깊고 높았는지를 알게 해 주는 동시에 요셉과 마리아 부부가 평생 동정으로 살게 된 사정도 알게 해 줍니다. 


강생의 신비 


주님께서 세상에 오시는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세상 모든 사람이 남녀의 결합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 자연의 섭리인데, 유독 그분만은 성령으로 그 생명이 잉태되셨고, 하필 그때가 요셉과 마리아가 약혼한 직후였기 때문에 당사자인 마리아는 물론이고 약혼자인 요셉도 함께 살기 전에 아기가 생겼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성령으로 동정의 몸에서 아기가 잉태된다는 강생의 신비는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로서, 하느님께서 세상과 생명을 아무것도 없는 무(無)에서 창조하신 신비에 버금가는 하느님의 섭리였습니다.


요아킴과 안나의 믿음 


한편 마리아의 부모인 요아킴과 안나로서는 혼인한 이후 줄곧 자식이 없다가 늘그막에 기도해서 얻은 귀한 딸, 그 마리아를 아주 어릴 적에 하느님께 봉헌하기도 했었으므로 다윗 가문의 요셉과 약혼시킬 때까지만 해도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가문의 며느리가 되어 하느님의 사람이 될 아이를 낳아 기를 것이라고만 기대를 했었을 터입니다. 당연하고 또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그만큼 마리아의 부모는 그녀를 믿었습니다. 


그러다가 덜컥 마리아가 아이 아버지가 누군인지도 모르는 아기를 임신했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을 때 그 부모의 심정은 짐작하기도 어려울 정도의 충격이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성경에 이 당시 요아킴과 안나의 반응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습니다. 하지만 부모의 충격은 물론 실망과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석 달 가량 친척 엘리사벳을 방문하고 돌아온 마리아의 표정이나 행동거지에서는 조금도 흐트러진 구석을 발견할 수 없었던 데다가, 아마도 엘리사벳으로부터 보내왔을 법한 전갈 또한 범상치 않았기에 그 부모는 이런 상황에서도 마리아를 믿었습니다. 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믿기로 했습니다. 아나빔다운 믿음이었습니다. 


요셉의 믿음 


또 다른 한편으로 마을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했을까요? 나자렛은 작은 마을입니다. 누구 집에 그릇이 몇 개 있다더라 할 정도로 서로의 사정을 잘 알고 지내는 마을 공동체에서 마리아의 성장과정을 익히 보아 잘 알고 있던 마을 사람들도 요셉과 약혼까지 하고 정식혼인도 하기 전에 아기를 임신했다는 소식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리아의 성품은 물론 한 마을 이웃에 살던 요셉의 성품까지도 잘 알고 있었던 마을 사람들은 쉬쉬 하면서도 소문만 내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한 마을에 살던 사람들 가운데에서도 제일 중요하고 가장 난처한 입장에 빠진 사람이 요셉입니다. 누구보다도 마리아를 사랑했고 또 믿었던 요셉이지만, 약혼 후에 엘리사벳 집에 석 달 가량 머물고 나서 나자렛에 돌아온 마리아가 아기를 임신 중이라는 사실은 말을 들어보지 않고 모습만 보아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때부터 요셉의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미 소문은 마을 안에 다 퍼졌을 판인데, 회당장 랍비와 마을 사람들은 자신만 쳐다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던 그 무렵에, 요셉은 도저히 마리아를 고발할 수가 없었습니다. 만일 자신이 고발하게 되면 마리아는 돌에 맞아 죽을 것이 뻔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튼 마리아의 뱃속에 생긴 아기는 자신의 아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도 없었으므로, 요셉은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지 않고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작정했습니다. 마리아가 뱃속에 가진 남의 아기를 받아들일 수도 없고 사랑하는 마리아를 차마 돌에 맞아 죽게 할 수도 없었던 요셉이 보인 의로움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그날 잠든 요셉의 꿈에 천사가 찾아와서 요셉에게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했다는 놀라운 사정을 알려주었습니다. 이로써 배신의 아픔을 벗어날 수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덜컥 믿기도 어려운 처지였을 텐데도 꿈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저 없이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워낙 다져온 믿음으로 겨우 버티고는 있었겠지만 아마도 십중팔구 자신을 심히 불안한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었을 마리아를 안심시켰을 것이고, 이후 일생동안 마리아의 충직한 보호자가 되어 주었습니다. 


마리아의 믿음에 못지않은 요셉의 믿음이 돋보이는 대목입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해서 그들이 보인 믿음도 놀랍지만, 서로에 대한 믿음도 그에 못지않게 놀랍습니다. 믿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서로 믿어주는 것, 이것이 진정한 사랑임을 요셉과 마리아가 보여주었습니다. 


요셉의 선택, 평생 동정


천사의 전갈로 마리아의 임신에 대한 의혹은 해소되었지만 요셉으로서는 고뇌어린 심정으로 결정해야 할 것은 더 있었습니다. 장차 태어날 아들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느님께서 보내신 메시아이시라면, 그 다음 메시아의 동생으로 여겨질 아이를 자신이 마리아와의 사이에서 낳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생겨났을 것입니다. 여느 부부라면 당연히 기대하기 마련인 자식 문제를 요셉은 심사숙고한 끝에 평생 부부생활을 포기하기로 결정한 때가 이 꿈 이후였습니다. 


이 꿈은 마리아의 임신에 대한 고뇌를 해소시켜준 반면 평생 동정을 결심하게 만든 또 다른 고뇌를 낳은 꿈이기도 했지만, 요셉과 마리아가 평생 동정으로 살면서 오로지 예수님만을 위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성령의 이끄심을 받게 된 거룩한 시작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평생 동정이란 당사자들의 결심과 노력이 당연히 요구되지만 이것만으로 간단히 감당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젊은 부부가 오직 예수님 때문에 평생 부부 간의 성생활을 포기하고 완덕의 길을 걸었습니다. 


이것은 쉽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인간 세상에서 도저히 일어나기 어려운 기적입니다. 성령의 압도적인 기운이 요셉과 마리아, 이 두 사람의 삶을 이끌지 않고서는 도무지 평생 동정이라는 완덕의 삶을 살아내기가 어려웠을 터이니까 말입니다. 한국교회 박해시대에 동정 부부로 살기로 결심한 신자들의 모델이 이것이었습니다. 


나자렛 성가정의 십자가


이러한 요셉과 마리아를 지켜보던 마을 사람들의 반응은 엇갈렸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예수님이 성장하던 시절에, 그분은 ‘요셉의 아들’(마태 3,23)로 불리기도 하고 ‘마리아의 아들’(마르 6,3)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이 경우 마리아의 아들로 부른다는 것은 예수님을 사생아로 본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마리아와 요셉, 그리고 그 아들 예수를 바라보는 그네들의 시선이 얼마나 차갑고 따가웠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나자렛 성가정이 짊어져야 했던 십자가였습니다. 


생각해 보면, 만삭의 몸으로 찾아간 베들레헴에서 마리아가 해산할 방을 고향 사람들 어느 누구도 내어주지 않았던 싸늘한 반응도 그래서 였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마리아와 예수님께서는 차마 입을 열어 자초지종을 말할 수도 없었던 이런 출생의 비밀과 진실에 대해서 그저 하느님의 안배하심만을 믿고 의탁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그래서 진실을 침묵 속에 묻어버리고 비슷하게 소외당하는 억울한 이들의 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이해하실 수 있으셨을 것이라고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요셉이 먼저 세상을 떠나고 예수님께서도 공생활을 하러 출가하시고 난 후 마리아는 친척 형제들의 집에 머물면서 그들의 봉양을 받아야 했는데, 예수님의 행적에 대해 그 친척 형제들이 보여준 떨떠름한 태도와 미심쩍은 행동들 역시 그분의 이와 같은 출생 비밀과 관련이 있었을 듯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친척 형제들 중에서는 예외적으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만 그분을 따랐을 뿐입니다. 


요셉의 꿈과 하느님의 개입 


이 모든 과정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는 요셉의 숨은 생각을 다 들여다보고 계셨다는 사실이 요셉의 꿈에서 드러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잉태되시고 출생되실 무렵에 일어났던 일들과 관련하여, 하느님께서 결정적인 순간에 개입하신 데 대해서는 오직 당사자인 마리아의 입에서만 나올 수밖에 없는 일들입니다. 마태오와 루카 등 예수님의 탄생을 기록하고 있는 복음사가들도 마리아에게서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사가를 통해 예수님의 잉태와 탄생에 관련된 이런 비밀스런 신비를 전해 듣게 된 초대 교회 신자들과 교부들은 이미 이사야 예언자가 메시아의 징표에 대하여 예언한 바가 있음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몸소 표징을 주시리니,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제1독서. 이사 7,14). 


그러므로 교우 여러분! 성탄을 앞둔 지금, 우리는 요셉이 이 사건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고뇌와 내릴 수 있었던 결정과정을 짚어보면서 강생의 신비가 나타나기 위해서 요셉이 감당해야 했던 고뇌와 결정의 무게를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믿었고, 또 하느님께서도 믿어주셨던 아나빔의 믿음이 이러하였습니다. 마리아의 부모인 요아킴과 안나 역시 아나빔으로서 보여준 믿음도 범상한 믿음은 아니었습니다. 주님의 성탄절은 이러한 아나빔들의 믿음으로 가능할 수 있었던 강생의 신비를 경축하는 때입니다.


그러니 교우 여러분! 


주님의 성탄이 이제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참된 믿음을 본받는 지향으로 강생의 신비 안에서 기쁜 성탄을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TAG
키워드관련기사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가스펠툰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