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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맺는 인간관계도 사도적 관계가 될 수 있도록 - [이신부의 세·빛] 바오로의 동지들과 이벽의 동지들
  • 이기우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22-05-26 12:43:00
  • 수정 2022-05-26 12:4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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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필립보 네리 사제 기념일(2022.5.26.) : 사도 18,1-8; 요한 16,16-20


생애 마지막 때에 제자들에게 고별사를 남기신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보내실 성령에 대해 예고하셨습니다. 부활하신 후에는 성령으로 믿는 이들 안에 현존하심으로써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룩하실 작정이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새로이 창조될 현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새 인간이요 이들이 맺는 새로운 인간관계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이 말하는 초점은 성령으로 맺어지는 사도적 인간관계입니다. 


아퀼라와 프리스퀼라 부부는 원래 소아시아 북쪽에 있는 흑해 연안의 폰토스 출신으로서 천막 기술자였습니다. 그런데 로마로 갔다가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로마에서 모든 유다인을 추방하는 바람에 코린토에 오게 되었습니다. 바오로 일행이 코린토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 부부말고도 여럿이 있었지만 아퀼라와 프리스킬라 부부와의 만남은 두고두고 큰 영향을 선교 활동에 미친 듯합니다. 


우선 바오로는 그 부부를 만나서 천막 만드는 일을 함께 한 동업자이기도 했지만 그 일을 함께 하는 동안에 복음을 가르쳐서 선교 협력자로 만들었습니다. 그 후 사도 바오로에게 이 부부는,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목숨을 구하여 준” 은인들이요, 그래서 “다른 민족들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고마워하는” 선교사 동지였습니다(로마 16,3-5).


한국의 초대교회에서도 사도 바오로와 아퀼라·프리스퀼라 부부의 관계처럼 돈독한 사이였으며 또한 교회의 초석을 놓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관계라면 이벽 요한과 이승훈 베드로를 들 수 있습니다. 이벽이 자발적으로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이고 나서 이승훈에게 권하여 북경에 가서 세례를 받아 오도록 하였고, 이승훈으로부터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벽은 한국교회의 창립 주역이요 이승훈은 첫 영세자로서 기억됩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나주 정씨 가문과 각기 사돈지간이었습니다. 이벽의 손위 누이가 정약현과 혼인하였고, 이승훈은 정약현의 손아래 누이와 혼인하였습니다. 그래서 광주 이씨인 이벽과 평창 이씨인 이승훈, 이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사돈지간인 나주 정씨 가문인 정약현의 동생들인 약전, 약종, 약용과 학문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가까워질 수 있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다섯 선비들을 학문적으로 묶어 주었던 사람은 권철신이었습니다. 안동 권씨 가문은 조선 왕조의 개국공신을 배출한 가문이며, 권철신과 그의 아우 일신은 왕세자를 가르치는 스승으로 위촉될 정도로 명망이 높고 학문이 뛰어났기 때문에 전국에서 그로부터 배우고자 하는 선비들이 모여 들었고, 이들이 주어사와 천진암에서 실학을 배우는 강학회를 열곤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강학 모임에서 철신과 일신 등 권씨 형제의 제자였던 선비들 중 지방에 천주교를 전파하는 사도들이 나오는데, 호남의 유항검, 충남의 이존창이 그들입니다. 이벽은 권씨 형제들의 학문과 영향력을 익히 알고 있었으므로, 강학회를 하기 전에 권철신을 찾아가서 열흘 동안 머물며 설득하여 천주학을 받아들이게 하였습니다. 


이벽이 혹심한 문중박해를 받아 세상을 떠났을 때, 이승훈은 그의 뒤를 이어 교회의 책임을 떠맡았으며 강학회의 선비들 중 권철신을 좌장으로 삼고, 권일신과 약전·약종·약용의 정씨 삼형제와 유항검과 이존창 등 천주교 세례를 받은 선비들 아홉 명을 더해서 모두 열 명의 평신도 지도자들이 임시성사조직 내지 준성직자단의 책임을 나누어 받았습니다. 


이렇듯 한국교회는 초기 평신도 지도자들의 자발적인 구도 열정과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었고, 이 가운데 이벽과 이승훈 등 이씨 선비 두 명, 철신과 일신 등 권씨 형제, 약전과 약종과 약용 등 정씨 삼형제 등 모두 일곱 명의 선비들의 인간관계가 주축이었습니다. 


이들이 한국교회를 창립하고 전파하는 과정에서 문중과 조정의 박해가 잇따랐으며, 교황청에서 반세기 전에 내려놓은 조상제사금지령과 북경 주교의 준성직자단 해체 결정 등 교회 내부의 도전과 시련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주자학적 가치관에 빠져 있었던 유림들로부터 온갖 회유가 있었고 조상제사금지령을 내린 교황청에 대한 불만과 내부 갈등까지 겹쳐서 신앙을 포기하는 듯한 언동과 문서 그리고 배교 발언 등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분들을 시복시성 명단에 올리는 심사 과정에서 많은 논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만, 예수님께서 당신이 체포당하시던 겟세마니 동산에서 제자들이 죄다 달아나버렸고 수제자인 베드로마저 당신을 모른다고 부인했던 과거를 모두 용서하시고 교회의 큰 그릇으로 쓰신 것만 보더라도, 한국교회를 창립한 선조들에 대해서도 같은 잣대로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시복시성 여부와 별개로, 적어도 그분들이 신앙을 버린 배교자라는 누명은 벗겨드려야 마땅합니다. 이것이 그분들의 희생 덕분에 신앙을 물려받을 수 있었던 우리 후손들의 도리입니다. 오히려 더 나아가서, 그들이 맺은 인간관계 속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그들 안에 함께 하고 계셨기 때문에 그들 모두 자신들의 생명을 바쳐서 천주교를 받아들이고 전해준 사도들이었음을 명심해서, 우리가 맺는 인간관계도 사도적 관계가 될 수 있도록 기도로 성령의 이끄심을 청하시기 바랍니다.


교우 여러분!


예수님께서 창조하시는 새로운 현실에 걸맞는 인간관계는 성령과 진리로 이끌려야 합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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