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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교’와 ‘사제’, 일방적 복종 아닌 자유롭고 존중 담긴 관계라야
  • 끌로셰
  • 등록 2022-03-03 21:22:04
  • 수정 2022-03-03 22:3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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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출처=Vatican)


‘성직의 근본 신학을 향하여’라는 주제로 열린 교황청 심포지엄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람직한 사제상에 관해 변화하는 시대상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지난 2월 17일 심포지엄 연설에서 “내가 제안하는 것은 (내가 만났던) 사제들만이 갖고 있었던, 그들이 사목을 하는데 있어 특별한 힘과 기쁨, 희망이 되어준 특징들을 찾고 이를 관상해보며 얻은 숙고의 결실”이라고 말했다.

 

교황은 자신의 의견이 새로운 것이라기보다는 지금까지의 경험과 의견을 토대로 한 자신의 “짧은 총론”임을 강조하고 “이것이 내 성직 생활의 ‘백조의 노래가’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이것이 내 경험에서 비롯된 것임을 여러분께 장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교황은 다른 발언에 앞서 가장 먼저 “변화로 인해 언제나 우리는 이에 맞서는 여러 방법을 마주하게 된다. 문제는 수많은 행동과 태도가 유용하고 이로울 수는 있어도, 전부 복음의 향기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다’라는 과장된 낙관주의는 현재의 갈등, 복잡성, 모호함을 받아들이지 못해 최신의 것만을 진정한 현실이라고 ‘신성시’하여 세월의 지혜를 업신여기게 된다”며 “두 태도 모두 성숙한 해결책에 이르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사제 역시 다른 신자들과 마찬가지로 세례 받은 사람 가운데 하나임을 강조했다. 


사제의 삶이란 무엇보다도 세례 받은 사람의 구원 역사다. 우리는 성직을 포함한 모든 개별 소명이 세례의 실현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세례 없이, 즉 첫 부르심이 성스러움으로의 부르심이라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은 채로 성직을 살아가고자 하는 유혹을 경계하자.

 

교황은 그러면서 사제들이 일종의 특권의식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에둘러 비판했다. 교황은 “베드로, 바오로, 마태오를 생각해보라. (예수께서) 이들을 택한 것은 이상적인 선택이 아니라 각자에 대한 구체적인 노력의 일환”이라며 “각자 어떤 소명을 선택한 것이 적절한가 아닌가를 고민할 것이 아니라, 마음속으로 이 소명이 세례 때 받은 사랑의 가능성을 자신 안에서 드러낼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교황은 성직자들에게 하느님, 주교, 하느님 백성은 물론 성직자들 간에 ‘가까이 지내기’(이탈리아어: vicinanza)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먼저, 하느님과 가까이 지내는 일에 대해 교황은 “사제가 자기 직무에 필요한 힘은 모두 이 관계에서 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며 “주님과의 진중한 관계 없이는 우리 사제들의 직무는 무용한 것이 되어버린다. 예수와 가까이 지내는 것, 그분의 말씀과 만남으로써 우리는 우리 삶을 그분 앞에 놓을 수 있게 되고,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 분노하지 않는 법을 배우게 된다”고 강조했다.

 

많은 성직 생활 위기는 부실한 기도 생활, 주님과 친밀하게 지내지 않는 것, 그리고 영성 생활을 그저 종교적 습관으로 치부하는 데서 비롯된다.

 

이러한 기도 생활을 통해 “사제는 자신에게 맡겨진 사람들의 고통에 자리를 내어줄 수 있도록 충분히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한다”며 “주님과 가까이 지내는 가운데 자신의 비참함을 끌어안고, 받아들이며, 내보이는 행동이 사제가 자기 직무 중에 일상적으로 만나게 될 모든 비참함과 고통에 자리를 내어주는데 가장 좋은 교훈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사제가 하느님의 백성과 가까이 지내는 일을 준비할 수 있게 해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으로 교황은 주교와 가까이 지내는 일에 대한 소명을 거론하며, 이것이 일방적 복종이 아닌 경청과 자유롭고 존중이 담긴 의사표현임을 설명했다.

 

오랫동안 주교와 가까이 지내는 일은 오로지 일방적인 방식으로만 이해되어왔다. 교회에서는 여전히 순종에 관해 복음과는 동떨어진 해석을 내놓았다. 순종한다는 것은 듣는 법을 배우는 것이며 누구도 하느님의 뜻을 독점했다고 자처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것을 말한다. […] 주교는 학교 감독이나 수위가 아니라 아버지다. 주교는 이러한 가까이 지냄을 실천해야 한다. 주교가 이렇게 행동하고자 노력하지 않으면 사제들을 멀어지게 만들거나 야망이 있는 사제들만 그의 주위로 몰려들게 된다.

 

그리고 주교들이 자신에게 맡겨진 사람들의 현실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교황은 “주교 자신이 맡겨진 사제들과 하느님 백성들의 현실을 경청할 때만 이러한 식별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잊지 않도록 하자”고 말했다.

 

교황은 “이러한 순종은 대립, 경청이 될 수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갈등이 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관계를 끊지는 않는다. 사제는 주교들을 위해 기도하고 존중과 진심으로 자기 의견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함을 전제로 한다. 이는 또한 주교들에게 겸손은 물론 경청, 자기비판을 할 수 있는 능력과 남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능력을 요구하기도 한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사제들끼리 가까이 지내는 일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형제애란 홀로가 아니라 다른 이들과 함께 성스러워지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도적 선택을 의미한다. 아프리카 속담에는 '빨리 가고 싶다면 홀로 가라. 멀리 가고 싶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다.

 

교황은 사제들의 욕망이 가장 큰 문제를 일으키곤 한다고 지적했다. “모든 근원은 욕망이다. 어떤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 욕망에 다다르기도, 비방에 이르기도 한다. 교황청에서 누군가를 주교로 삼기 위해 자료를 요청하면 우리는 종종 욕망에 병든 정보를 받게 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 사제들의 병이다. 여러분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신학교에서 교육을 하고 있는 이들이다. 잘 생각해보라”라고 말했다.

 

교황은 이 지점에서 독신제 문제를 거론했다. “나는 성직자 간의 형제애가 실천되는 곳에서, 진정한 우정 관계가 있는 곳에서 더욱 건전하게 독신제를 체험할 수 있다고까지 말하겠다”며, “독신은 로마 교회가 보존해온 은총이지만 이것을 성화로서 체험하기 위해서는 건전한 관계, 그리스도 안에 그 뿌리를 둔 진정한 존중의 관계가 필요하다. 친구 없이, 기도 없이는 독신 생활은 견딜 수 없는 짐이 되고, 성직의 아름다움 자체에 대한 반증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사제는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는 관계 속에서, 즉 사람들 가운데 있어야 한다.

 

교황은 “결국 우리는 예수께서 우리를 통해 사랑하는 자신의 백성들에게 더욱 가까이 가고자 하는 것임을 재발견하게 된다”며 “성직자로서의 정체성은 성스럽고 신실한 하느님의 백성에 속하지 않고서는 이해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성직의 정체성을 다시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늘날 사람들의 진짜 삶과 긴밀한 관계 속에서, 사람들 옆에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확신한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우리가 ‘성직 공무원’이나 ‘성직 전문가’가 아니라 민족의 목자가 되어주기를 바란다.

 

교황은 그러면서 성직자중심주의와 경직성을 사제들은 물론 교회 구성원 전체가 겪는 가장 거대한 “부패”로 꼽았다.


교황은 마지막으로 “성직 신학이나 사제란 어떠해야 하는가에 관한 이론이나 논의 안에 틀어박히려는 유혹 앞에서 주님께서는 온유와 공감의 눈길을 보내시며 사제들에게 이들이 자기 사명에 대한 열정을 발견하고 그 불씨를 살려 나갈 수 있는 근거가 되는 지표들을 내어주신다. 그것이 바로 가까이 지내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심포지엄은 총 3일에 걸쳐 진행되었다. 첫 날은 ‘전통과 새로운 지평’, 두 번째 날은 ‘삼위일체, 사명, 성사성’, 세 번째 날은 ‘독신제, 카리스마, 영성’이라는 주제로 열렸으며 이번 심포지움에는 그 중요성을 보여주듯 교황청 국무원장 피에트로 파롤린(Pietro Parolin) 추기경, 주교성 장관 마르크 우엘레(Marc Ouellet) 추기경, 인류복음화성 장관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Luis Antonio Tagle) 추기경 등 교황청 주요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필진정보]
끌로셰 : 언어문제로 관심을 받지 못 하는 글이나 그러한 글들이 전달하려는 문제의식을 발굴하고자 한다. “다른 언어는 다른 사고의 틀을 내포합니다. 그리고 사회 현상이나 문제는 주조에 쓰이는 재료들과 같습니다. 따라서 어떤 문제의식은 같은 분야, 같은 주제의 이야기를 쓴다고 해도 그 논점과 관점이 천차만별일 수 있습니다. 해외 기사, 사설들을 통해 정보 전달 뿐만 아니라 정보 속에 담긴 사고방식에 대해서도 사유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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