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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선을 위한 사도직의 조건 - [이신부의 세·빛] 엘리야가 불처럼 일어서서 횃불처럼 예언하다
  • 이기우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21-12-10 18:28:10
  • 수정 2021-12-10 18:2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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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2주간 토요일(2021.12.11.) : 집회 48,1-11; 마태 17,10-13

 

횃불처럼 타오르는 예언자의 열정이야말로 우리 교회가 행하는 사도직 활동이 공동선을 향할 때 필요한 은총입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현존 양식에 충실하면, 역사 안에 그리스도를 살아 있게 하는 것이 되어 최고선의 가치를 실현하고 수호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개별 신자들이 기복신앙에 매몰되지 않고 교회 전체가 교세 증가에 매달리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거니와, 세상에 빛을 비추고 세상 사람들이 부패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소금의 역할입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다섯 가지 양식으로 계시된 주님의 현존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에 나아가서 복음적인 변화를 이룩하라고 재촉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복음화로까지 한 걸음 더 나아가자면 사도직 활동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현존 양식에 충실하면서 공동선을 수호하는 사도직 활동에 이르러서야 인간화와 민주화를 거쳐 복음화의 과업이 이룩될 수 있습니다. 다섯 가지 주님의 현존 양식이 주로 종교적이고 교회적인 구조인데, 사도직 활동이 더해져야 활력이 솟아날 수 있습니다. 

 

사도직 활동은 거창할 필요 없이 작아도 됩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도구로 쓰시기만 하면 자그마한 겨자씨가 겨자나무로 자라듯이 세상을 거룩하게 변화시켜서 인간화와 민주화를 거쳐 복음화로 나아가게 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도직 활동이 결코 포기하거나 양보해서는 안 될 것은 양이 아니라 질이며, 사도직 활동의 질적 수준을 담보해 주는 가치가 바로 공동선의 가치들입니다.


그 초점은 어디까지나 인간 존엄성을 실현하는 데 있습니다. 인간은 하느님께로부터 지음 받을 때부터 그분을 닮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런데 마귀의 꼬임에 빠져 온갖 우상을 하느님인 줄 알고 숭배하거나 스스로 하느님이 되려고까지 하던 차에,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사람이 되게 하시어 참으로 하느님을 닮은 인간의 길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인권 유린 현상에 대해 단호하게 맞서야 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예수님의 삶을 우리네 역사 안에서 현존시키는 주님의 현존 양식에 충실해야 합니다. 즉, 말씀과 성찬과 사랑의 섬김, 그리고 신앙 감각을 존중하면서 공동으로 합의하는 교회야말로 인간 존엄성을 이룩하게 합니다.


그런데 세상에서는 자유와 평등, 정의와 평화 같은 최고선의 가치들을 짓밟는 우상숭배가 워낙 흔하게 벌어지기 때문에 인간 존엄성을 실현하기 위해서 공동선에 투신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사도직 실천이 필요합니다. 그 가치는 재화의 보편 목적에 충실하여 재화의 진정한 주인은 오직 하느님이시라는 대전제 하에 자본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자본주의적 사조와 대결하는 일로 나타납니다. 


또한 그 연장선상에서 우상숭배적 경제 질서의 희생자인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여 인간을 위한 경제와 복음적인 경제 질서의 표본을 만드는 일이 그 다음으로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도직 활동은 보조성과 연대성이라는 방법 원리를 필요로 합니다. 

 

보조성이란 국가 정부가 정책적으로 수호하고 증진시켜야 하는 공동선에 대하여 비록 보조적일지라도 당사자들 역시 공동선에 기여할 수 있도록 도와주되 간섭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라는 공동선 사도직 활동에 있어서도 그저 일방적으로 도와주는 자선 행위만으로 충분치 않고 당사자인 가난한 이들 자신이 자각하고 자립하며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 뿐 아니라 더 가난한 이들이나 사회 전체의 공동선에 대하여 기여할 수 있는 존재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보조성 원리는 자율성과 자주성일 뿐만 아니라 참여와 책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병들고 마귀 들린 가난한 이들을 도와주실 때, 반드시 그들의 이름을 물으신다든지, 낫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신다든지 하여 당사자들의 인격을 존중하셨으며, 일방적으로 도와주시는 법은 없었습니다. 게다가 치유나 구마의 기적이 일어났을 경우에도 당신의 신적인 기적 능력이 99% 작동했을 터인데도, 1%에 지나지 않을 당사자의 믿음이 그를 구원하였다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보조성 원리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원리가 연대성입니다. 사회적 약자들에게 있어서 서로 연대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세상의 질서가 강자들 위주로 편성되고 운영되고 있어서 이를 개선하려면 약자들이 뭉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보조성 원리에 따라 주체성을 지니게 되고 최소한의 생존을 담보하게 된 가난한 이들은 거기에서 멈출 것이 아니라 더 가난하고 더 약한 이들을 위해 일어서야 하고, 이 경우에는 반드시 연대의 힘으로 사회적 공동선에 기여할 다짐을 해야 합니다. 


흔히 세상에서 말하는 계급투쟁이라든지 거리 시위에 필요한 물리적 연대의 힘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악보다 선이 더 강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정신적이면서도 사회적인 선의 연대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건전한 여론이 형성될 수 있지요.

 

이렇게 공동선의 가치에로 투신할 그리스도인들에게 엘리야의 모범이 깃발입니다.


“그 무렵 엘리야 예언자가 불처럼 일어섰는데, 그의 말은 횃불처럼 타올랐다.”(집회 48,1)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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