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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베 보고서’, 프랑스 가톨릭교회 성범죄를 파헤치다 - 교회 성범죄 피해자 추산 ‘33만 명’ … 가장 구체적이고 심도 있는 조사
  • 끌로셰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21-10-12 14:05:40
  • 수정 2021-10-23 12:3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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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교회 성범죄 피해자 추산 ‘33만 명’. 5일 발표된 프랑스 가톨릭교회 성범죄 보고서가 내놓은 숫자는 충격적이었다.

 

교회 성범죄 독립조사위원회(CIASE, 이하 조사위)가 공개한 이번 보고서는 교구 및 수도회 문서고는 물론 교회 성범죄 관련 언론 보도를 종합하여 프랑스 가톨릭교회 성범죄에 관한 종합적인 조사를 진행했다.

 

프랑스 최고 행정법원인 국참사원(Conseil d'État) 부의장을 지낸 장 마크 소베(Jean-Marc Sauvé)가 위원장을 맡아, 일명 ‘소베 보고서’(Rapport Sauvé)라 불리고 있다.

 

조사위는 프랑스 주교회의와 프랑스 수도자회의의 요청에 따라 2018년 말부터 활동을 시작하여 2019년 발족된 단체로, 195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프랑스 가톨릭교회 내 성범죄를 투명하게 조사하기 위해 설치된 독립 조사기구다. 조사위에는 어떤 수도자, 성직자도 포함되어 있지 않으며, 위원들의 종교 유무도 다르고 각자 학계에서 저명한 이들로 구성되어 있어 더욱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는 2018년 미국 가톨릭교회에서 벌어진 전 추기경 시어도어 매캐릭(Theodore McCarrick) 사태로 인해 촉발된 전 세계 교회의 반응 가운데 가장 구체적이고 심도 있는 조사다.

 

프랑스 가톨릭교회는 30여 년간 여러 아동을 성추행한 사실이 드러난 일명 ‘프레나 사건’으로 큰 충격을 안겨준 바 있다. 이는 프랑스 유명 감독에 의해 영화화 되기도 했다. 


장 마크 소베 위원장은 서문에서 “이런 재앙에 오랫동안 가톨릭교회는 제도교회로서 자신을 보호하려고 했으며 성폭력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완전히, 잔인하게 무시했다”고 일갈했다.

 

소베 위원장은 이어서 “2000년 이후, 특히 2016년부터 프랑스 가톨릭교회가 성폭력을 예방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처리하는데 있어 중요한 결정들을 내린 것은 사실이나 이러한 조치들은 모두 때 늦은 것이었고, 불균형하게 적용되었다. 여러 사건들에 대한 반응으로 내려진 이러한 조치들은 조사위가 보기에 전반적으로 충분하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고 지적했다.

 

소베 위원장은 결국 “오래되거나 또는 비교적 최근에 일어난 수많은 비극을 맞닥뜨리며, 조사위는 ‘페이지를 넘기는 일’이란 있을 수 없다고 판단한다”며 “미래는 이러한 고통스러운 현실을 부정하거나 묻어버림으로써가 아니라, 이러한 현실을 인정하고 감당함으로써 세워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2,500여 장 분량의 보고서로 드러난 것


조사위는 지난 3년간 피해자들의 증언을 수집하고, 프랑스 전국 각지를 돌면서 직접 피해자들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행사를 갖는 등 피해자들의 직접 증언을 모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조사위는 보고서를 구체적인 수치와 분석이 담긴 ‘1950-2020 가톨릭교회 성폭력’(Violences sexuelles dans l'Église catholique - France 1950-2020)와 피해자들의 증언이 담긴 ‘피해자에서 증인으로(De victimes à témoins)’로 분리했다.

 

이는 피해자에 관한 접근법에 있어서 가톨릭교회 내 성범죄 피해자 69명의 직접 증언을 구체적으로 상세히 소개함은 물론, 프랑스 전반의 미성년자 성범죄 실태도 함께 조사하여 가톨릭교회 성범죄의 심각성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기 위한 방식으로 보인다.

 

2,500여 장 분량의 보고서에 담긴 고통은 숫자로 곧장 드러난다. 먼저 1950년부터 2020년까지 성직자, 수도자에 의해 성범죄 피해를 입은 피해자 수는 21만 6천여 명으로 추산됐다. 이에 더해 가톨릭교회에 어떤 방식으로든 소속된 평신도에 의해 성범죄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까지 더하면 그 수는 33만 명으로 대폭 늘어난다.

 

보고서는 이러한 장소적 특성을 갖는 성범죄를 구체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프랑스 전반에서 미성년자를 상대로 한 성범죄를 학교, 가정, 교회 등 장소별로 구별하여 조사를 확대했다.

 

그 결과, 18세 이상의 프랑스인 550만 명, 즉 프랑스 인구의 10% 이상이 미성년 당시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고 응답했다. 성별에 따라서 남성은 14.5%, 여성은 6.4%에 해당하는 인구가 미성년 당시 성폭력에 노출되었다.

 

이들 중 대부분은 가족 구성원(3.7%) 또는 가족 인척(2%)에게서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고 증언했다. 가정을 제외한 장소들 가운데서는 가톨릭교회에서 피해를 입었다고 증언한 이들이 약 60만 명에 달하는 1.2%를 기록하며 학교, 문화시설 등을 제치고 가장 심각한 성범죄 피해 장소로 특정됐다.

 

다음으로 교구 문서고와 증언 및 언론보도를 통해 파악한 가톨릭교회 성범죄 가해자 수는 최소 2,900-3,200명 사이로 추산되었다. 이 중 2/3는 교구 사제에 해당한다. 보고서는 “모든 가해 사실이 교회에 알려지거나 알려진 모든 가해 사실이 재판의 대상이 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이를 최소 추정치로 잡았다.

 

조사위는 1950-2020년 사이에 생존한 프랑스 성직자와 수도자 115,000만여 명 가운데 약 3%가 지난 70여 년에 걸쳐 가해를 저지른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미국 존 제이 형사행정대학이 미국 가톨릭교회 성범죄를 조사하여 발표한 일명 ‘존 제이 보고서’(John Jay Report)에서 1950년부터 2002년까지 추산된 가해 성직자 비율(4%)과 유사하다.


다시 한 번 가톨릭교회가 지금까지 아동성범죄에 대해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통계로 확인된 셈이다. 보고서는 이러한 수치들을 통해 “1950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프랑스 가톨릭교회 성범죄라는 현상이 거대하며, 시간에 따라 줄어들고는 있지만 여전히 현존하고 분명하게 특정된 여러 가지 방식에 기인하고, 체계적인 특성을 보인다는 사실이 드러난다”고 지적했다.

 

프랑스 가톨릭교회 성범죄 원인 분석과 관련해서는 교회법, 제도를 방패로 삼는 ‘체계상’ 문제가 끊임없이 거론되었다.

 

보고서는 연대별로 가톨릭교회가 성범죄에 관해 어떤 태도를 보였는가를 지적하면서 과거 “추문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가해자들을 ‘살리기’ 위한 의지가 지배적”이었거나 “성범죄 문제가 부차적인 것으로 여겨지면서” 성범죄 문제가 2010년도 들어서까지 제대로 처리되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조사위는 2015년 들어서는 피해자들을 인정하는 사례들이 늘어났으나 이것이 교구, 수도회별로 편차가 심하다고 지적하고 전반적인 프랑스 가톨릭교회의 대응에 대해 “사실들을 은폐, 상대화, 나아가 부정”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제도교회가 이러한 폭력을 분명히 예방하기는커녕 이를 인식하지도, 이를 요구되는 만큼 확실하고 정확하게 처리하지도 못했다는 점에서 체계적 현상”이라고 명시했다.

 

이러한 체계적 현상의 이유로 “사제상을 과도하게 성역화하는” 성직자중심주의(clerlicalism), 사제 독신제 및 카리스마 과대평가 등을 꼽았다.

 

보고서는 이러한 지적들을 토대로 하여 45개의 매우 구체적인 권고사항도 제시했다. 권고사항 가운데서는 피해자 배상 및 일상 복원은 물론, 형법과 관련된 교회법 개정, 교회 운영, 사제 교육, 예방 대책 등 교회 성범죄에 관한 제도교회의 다각적 관심을 요청하는 사항이 주를 이루었다.

 

특히 성직자의 직무 수행과 관련해서는 ▲권력남용 식별 ▲성직, 주교직 수행방식 면밀 검토 등이 있었으며 ▲아마존 시노드에서 결의한 기혼사제안 프랑스 가톨릭교회 적용 검토도 있었다.

 

교회의 무능에 우리 모두가, 내 자신이 부끄럽다”


이에 관해 매우 이례적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은 보고서 공개 당일인 5일 입장을 발표했다.


교황청 공보실에 따르면 “최근 사도좌 정기방문 중이던 프랑스 주교들과의 만남을 빌어 교황은 조사위 보고서 출간 소식을 들은 바 있다”며 “교황께서는 고통스럽게 그 내용을 접하셨다”고 전했다.

 

공보실은 “피해자들의 상처에 큰 슬픔을 느끼며, 동시에 그들이 고발할 수 있었던 용기에 감사를 느끼는 가운데 피해자들을 먼저 생각하신다”며 “마찬가지로 이러한 끔찍한 현실을 깨닫고 프랑스 교회가 구원의 길을 걸을 수 있기를 바라며 프랑스 교회를 생각한다”고 밝혔다.

 

교황은 다시 한 번 피해자들을 위해 “주님께서 그들에게 위로를 전하시어 정의를 통해 치유의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란다”고 기도했다.


다음날 오전 일반알현 연설 때도 교황은 “너무 오랫동안 피해자들을 가장 중요하게 신경쓰지 못했던 교회의 무능에 우리 모두가, 내 자신이 부끄럽다”고 참회했다. 


‘프레나 사건’의 피해자이자 프랑스 가톨릭교회 성범죄 피해자 연대단체 < 라 파롤 리베레 >(La Parole Libérée, 해방된 말) 전 대표 프랑수아 드보(François Devaux)는 프랑스 일간지 < La Croix >에 “문제를 이해하는데 이정도까지 깊이 들어가본 적이 없었다” 보고서에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드보는 “최근 다른 나라에서 발표한 보고서들과 달리, 조사위 보고서는 산산조각난 삶의 비극에서 멈추지 않았다. 교회 구조, 철학, 정의, 사고방식이 학대를 만들어냈음을 보여줌으로써 교회의 책임을 밝혀냈다. 이는 교회를 뛰어넘어 이러한 21세기 학대의 매카니즘을 밝혀줄 뛰어난 보고서”라고 평가했다. 

 

조사위는 이날 프랑스 주교회의와 수도자회의에 보고서를 전달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프랑스 주교회의 의장 에릭 드 물랭-보포르(Eric de Moulins-Beaufort) 대주교는 “부끄럽고, 두렵다”며 “사실을 보고, 듣기를 거부하는 태도와 사실을 숨기고 가리려는 마음, 이를 공개적으로 고발하기를 꺼리는 마음이 교회 당국의 태도에서 모두 사라지도록 (피해자들과 함께) 행동에 나설것을 다짐한다”고 말했다.

 

물랭-보포르 대주교는 “지금 당장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여러분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이라며 “여러분 하나하나에게 용서를 구한다”고 고백했다.

 

프랑스 수도회회의(Corref) 의장 베로니크 마르그롱(Véronique Margron) 수녀는 보고서를 두고 “고통과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보고서”라고 표현하며 가톨릭교회의 추문을 인정했다.



[필진정보]
끌로셰 : 언어문제로 관심을 받지 못 하는 글이나 그러한 글들이 전달하려는 문제의식을 발굴하고자 한다. “다른 언어는 다른 사고의 틀을 내포합니다. 그리고 사회 현상이나 문제는 주조에 쓰이는 재료들과 같습니다. 따라서 어떤 문제의식은 같은 분야, 같은 주제의 이야기를 쓴다고 해도 그 논점과 관점이 천차만별일 수 있습니다. 해외 기사, 사설들을 통해 정보 전달 뿐만 아니라 정보 속에 담긴 사고방식에 대해서도 사유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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