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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쯤 살고나면 어느 나라도 제2의 고향 같은
  • 전순란
  • 등록 2015-07-02 11:58:19
  • 수정 2015-07-02 11:5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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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30일 화요일, 맑음


오랜만에 티벳요가를 했다. 그 동안 열흘 넘게 잘 먹고 잘 놀아 온 몸의 뼈들이 푸대접이라고 아우성을 친다. 사람들 사이에 살다보면 내 삶의 리듬이 전혀 다른 리듬을 타는 느낌이다. 앞서 가는 보스코의 몸매 전체가 갈수록 ‘몽실몽실’(다분히 여성적인 형용사)해지는 것도 걱정이다. 오늘부터라도 운동을 시켜야지...


아침에 슈퍼에 가보니 블루베리가 있어 지리산 이웃들이 요즘 블루베리에 올인하는 계절임이 생각난다. 300그램에 우리 돈 3000원 정도 되어 사다가 야쿠르트에 넣어 먹으니 그 맛 속에서 지리산이 살아 오른다.


우리가 참 좋은 동네에 살아왔음이 고맙고 이웃들도 벌써 보고싶다. 특히 소갈머리없이 오로지 돈돈돈 돈 타령을 하는 정권의 손아귀에서 지리산을 지키려고 눈물겹게 투쟁하는 ‘지리산종교연대’와 ‘국시모’ 사람들이 그립다.



▲ 우리가 묵는 집 앞의 성모경당



▲ 우리가 묵는 집(오티나 선생의 모친이 사시던 집)


오티나 의사의 남편 알프레도가 어제 소개해 준 타이어 수리점엘 갔다. 파브리지오라는 주인이 친절을 다해 손을 봐준다.


“이탈리아에서는 도대체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다.”는 것이 외교관 시절 동료 외교관들이 한탄하던 말이고, “이곳만큼 모든 게 인맥으로 이어지는 나라도 없다.”는 탄식도 수십 개 국에서 근무해본 외교관 생활 경험에서 우러난 탄식이었겠지만, 타이어 하나를 수리해도 소개를 받아 가면 안전하다.


파브리지오는 타이어를 꺼내서 옆구리가 터져 있음을 알아내고는 물에 담가 공기 새는 곳을 다시 확인한다. 스캘링하듯이 그 자리를 잘 갈아내고 밴드 같은 것을 붙이고 나서 검정페인트로 감쪽같이 마무리하니 새것보다 질기겠다. 스페어타이어가 더 새것이라면서 그것에 휠을 박아 조수석에 끼워주고 수리한 것은 트렁크에 넣어주었다.

어제 치과의사한테는 “당신은 훌륭한 메카니코(가술자).”라고 칭찬해 주었는데 오늘 이 기술자에게는 “당신은 훌륭한 메디코(의사).”라고 칭찬해주니까 좋아한다. 누가 날카로운 물건으로 타이어를 쑤셔놓았음이 분명하다면서 담엔 스위스라도 조심을 하라고 일러준다. 하지만 아들네가 살고 ‘미리암’ 같은 처녀가 있으니 지구별 어디를 가도 ‘우리 집’처럼 서로 알고 서로 돕고 살아가야 하리라.



이탈리아에 오면 제일 신나는 게 다양한 과일이고 남구의 태양에 무르익은 그 단맛이다. 조롱박 모양의 배, 사과, 체리, 살구와 자두, 멜론과 수박, 키위와 아보카토, 블루베리 등을 잔뜩 사다 놓으니 기분이 흡족하다. 우리나라 과일값의 절반에도 훨씬 못 미치는 가격이어서 과일 좋아하는 여자들은 참 신난다. 과일 좋아하는 미루에겐 귀가 번쩍 뜨일 얘기다.


점심이 늦을 듯해서 라사냐와 닭고기구이, 그리고 애기통감자 구운 것을 슈퍼에서 사다 데웠더니만 보스코의 표정이 “정말 맛 없다!”란다. 그동안 마누라의 솜씨만 만끽하면서 여자를 혹사했으니(저 장거리 운전으로) 맛없는 것도 먹으면서 평소에 어째서 “하느님, 감사합니다. 부인님, 감사합니다.”라고 연창으로 기도해야 하는지 터득해야 할 게다.


▲ 그랄리아 성모 성지(Santuario della Madonna di Graglia)


▲ 성지에서 내려다보이는 그랄리아


비행기를 타면서 책을 한 보따리 가져왔다. 한가한 산골,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딩굴딩굴 책이나 보련다는 생각이었다. 보고나서 사람들 주고가도 되고... 저녁을 먹고 산위의 ‘그랄리아 성모성지(聖母聖地)’로 올라가서 마당에 차를 세우고, 핸드폰에서 찾아 올려 ‘저녁기도’를 바치고, 한 시간 가량 산길을 걸었다.


시골길을 거닐며 로사리오를 바치기도 하고, 산속 폐가의 붉은 기와와 무너져 내린 서까래와 이곳에서 살다 간 사람들의 흔적을 기웃거리는 재미가 쏠쏠했다. 돌과 석회로 지은 벽이어서 지붕만 다시 얹으면 앞으로도 백년도 더 쓸 만한 집들이다.


좁다란 산길을 이리저리 차로 돌아다니다 막다른 골목마다 돌아서 나오기도 하고, 어쩌다 만나는 주민이나 산보객과 몇 마디씩 나누기도 한다. 이탈리아인들은 우리와 하도 비슷해서 문만 열고 들어가면 숟가락 하나 더 놓으면서 “한술 뜨고 가라.”고 할 사람들이다. 도합 15년쯤 살고나면 어느 나라도 제2의 고향 같은 느낌이 드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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