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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지요하] 장명수 예찬
  • 지요하
  • 등록 2015-06-26 10:10:35
  • 수정 2015-10-30 16:3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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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매일 오후에는 2시간가량 걷기운동을 한다. 계절과 상관없이 3시에서 5시 사이다. 오랜 세월 습관화된 일이라, 관성 덕을 보는 셈이기도 하다. 늘 걷는 일이 즐겁고 행복하다. 생업에 매여 사는 사람들, 특히 농사철에 논밭에서 땀을 흘리는 이들을 보면 미안하고 죄스러운 기분도 든다. 때로는 그분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표하기도 한다.  


▲ 장명수의 여름 / 태안군 근흥면 두야리 해변에서 마주보이는 건너편 해변은 남면 진산리이다. ⓒ 지요하


집을 나서면 동서남북이 다 걷기운동 코스다. 오늘은 어느 길을 밟을까 잠시 고심을 하기도 한다. 천수만 기업도시 진입로 우레탄 길을 밟기도 하고, 천수만 초입에다 주차해놓고 천수만 안쪽 길을 걷기도 한다. 


하지만 천수만 길을 걸을 때는 천수만 상실의 아픔을 체감하곤 한다. 황금어장을 박살내고 농경지마저 없애고 대규모 골프장을 건설한 ‘개발귀신’들의 분별없는 소갈머리에 분노하며 골프장에 조소를 보내곤 하는데, 그때마다 마음은 더욱 아프다.


태안읍 삭선리 삭선천의 ‘솔향기길’을 걷기도 하고 원북면의 갈두천 길을 걷기도 한다. 두 길 다 가로림만 제방으로 이르는 길이다. 때로는 가로림만 한 끝 도내리로 가서 서산시 팔봉면 어송리와 경계를 이루는 긴 저수지 둘레 길을 걷기도 하고, 남면 몽산포나 청포대로 가서 드넓은 갯벌을 밟기도 한다. 


가장 자주 가는 곳은 ‘장명수’다. 군청 바로 옆에 있는 우리 집에서 장명수까지는 50분이면 충분하다. 용남로를 밟고 가는 때도 있고, 아맹이고개를 넘어 속햇말과 강박굴을 지나는 때도 있다. 속햇말과 강박굴 모두 옛날에는 바닷물이 들던 곳이다. 속햇말은 바다에 속한 마을이라는 뜻이고, 강박굴은 큰 갯고랑 밖에 있는 골짜기라는 뜻임을 그 길을 애용하면서 알게 됐다.  


▲ 장명수 해변의 쓰레기들 / 시원하고 경치 좋은 곳에서 먹고 마시며 놀 줄만 알았지 쓰레기를 가져갈 줄 모르는 사람들의 흔적. ⓒ 지요하


그러나 장명수를 두 발로 걸어서 가는 날보다 차를 가지고 가는 날이 더 많다. 특히 여름철 오후에는 해변의 긴 산그늘이 좋아서 꼭 차를 가지고 간다. 염전 옆 저수지(지금은 양어장) 근처 ‘장수정’이라는 이름의 정자 앞이나 두야리 농어촌공사 수문 옆에 주차를 하고 해변을 걷곤 한다. 


장명수 해변을 걸을 때마다 신선한 갯바람, 짭짤한 갯내, 갈매기를 비롯한 갖가지 새들의 날갯짓, 물 위로 뛰어오르는 숭어들의 몸놀림을 접하노라면 절로 온몸에서 생동감이 넘치는 듯하다. 행복하고 감사하다. 장명수 해변을 걷는 것은 그야말로 축복임을 실감하곤 한다. 


장명수의 한쪽은 태안읍 남산리와 남면 진산리이고, 반대쪽은 근흥면 두야리, 안기리, 용신리이다. 내 선친의 고향은 근흥면 두야리다. 나는 두야리 추동에 300년 뿌리를 두고 있다. 두야리에서 성장한 선친은 소년 시절 자주 장명수로 가서 멱을 감았다고 한다. 장명수에서 몽산포까지 수영을 한 적도 있다는데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내 어렸을 적에 누이동생과 함께 선친을 따라 장명수에 가서 없는 말미잘을 찾아 한없이 갯벌을 걸었던 추억도 있다. 어렸을 적부터 장명수에 자주 가서 낚시질로 망둥이를 잡아오곤 했는데, 아버지는 내가 잡아온 망둥이로 찌개를 끓여 막걸리를 드시곤 했다. 


장명수는 내 어렸을 적 추억의 그림들이 많은 곳이다. 그 그림들 때문에 지금도 자주 장명수에 가서 해변 걷기운동을 하는지도 모른다 장명수 해변을 걸을 때마다 추억의 그림들이 너울거려서, 찔끔 눈물을 흘린 때도 있다. 


▲ 해변에 버려진 소주병들 / 먹고 마시며 즐기고는 해변에다 소주병들을 그대로 버리고 가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겨먹은 사람들인지... ⓒ 지요하


그런데 장명수 해변이 대체로 지저분해서 마음이 아프다. 갖가지 쓰레기들이 해변에 널려 있어서 절로 한숨을 내쉬곤 한다. 안기2리 어촌계양식장 관리사무소 옆 공터에, 또 용신리 각골 제방 끄트머리 공터에도 쓰레기더미가 쌓여 있는 것을 보곤 한다. 놀러온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는 쓰레기들을 그대로 놓고 간 탓이다. 먹고 놀 줄만 알았지 쓰레기를 가져갈 줄 모르는 사람들이다. 


한번은 어린아이들을 동반한 가족 한 떼가 해변에서 먹고 마시고 놀고는 쓰레기를 그대로 놓고 가려 하기에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뭘 가르치려 하느냐고 점잖게 한 마디 해서 효과를 거둔 적도 있다.                       


태안읍 남산리에서 근흥면 두야리로 이어지는 제방 길을 밟고 수문 근처 솔밭 앞을 지날 때마다 큰 쓰레기더미를 보곤 했다. 트럭으로 실어다 버린 쓰레기인데, 상습범의 소행임이 틀림없어 보였다. 너무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는 쓰레기더미여서, 근흥면이나 태안군에 진정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런 생각만을 했을 뿐 막상 실행을 못하고 미적거리기만 하는데, 어느 날 보니 그 쓰레기더미가 말끔히 치워지고 쓰레기 투기를 방지하기 위한 팻말이 서 있었다. 순간 고마운 마음이 들면서 혹 근흥면 출신 현 군수 덕이 아닐까 하는 혼자만의 생각도 들었다. 군수가 그런 것까지 신경 쓸 수는 없겠지만…. 


근흥면 출신 군수 덕분에 장명수 해변이 좀 더 깨끗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포기하고 싶지 않은 기대였다. 그 기대가 슬금슬금 발전하더니, 근흥면 안기리나 두야리 해변에서 남면 진산리 해변으로, 장명수 갯벌을 가로지르는 부교(浮橋)가 생기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아, 그런 일이 생긴다면 얼마나 좋을까! 


▲ 장명수 해변의 고래새끼 사체 / 장명수 해변에서는 죽어 있는 숭어들을 많이 보고, 가끔은 새끼고래의 사체도 보곤 한다. 자연 새끼 잃은 어미고래의 심정을 생각하게 되고... ⓒ 지요하


근흥면과 남면 사이 장명수 갯벌에 물이 들면 다리가 물 위에 뜨고, 물이 나가면 갯벌 위로 다리가 내려앉는 그런 부교가 생긴다면 장명수는 태안의 명소가 되리라는 생각이 계속적으로 왕왕 들었다. 


그 부교 덕분에 근흥면과 남면 주민들과 휴양객들의 소통이 좀 더 원활해지고, 내 걷기운동도 색다른 탄력을 받게 되고, 망둥이 낚시 철에는 낚시꾼들이 대거 몰릴 것도 같고, 가족과 함께 장명수를 찾는 사람들도 많아질 것 같고…. 


몇 해 전 태풍 블라벤 때문에 안기리 해변 제방 일부가 파손된 적도 있긴 하지만, 초대형 태풍이 아니라면 장명수는 그야말로 안전한 포구다. 만조를 이루는 때도 한 달에 두어 번뿐이고, 사리 때도 소리 없이 물이 들고 나고 해서 더없이 아늑하고 안온한 바다다. 부교 설치나 유지 관리가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닐 터이다.   


요즘은 장명수를 갈 때마다 절로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하지만 장명수가 진짜 명소가 되어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게 되면 순식간에 오염이 되고, 환경 파괴가 빚어지는 건 아닐까? 절로 걱정도 된다. 그러므로 내가 진정 바라는 것은 장명수의 알뜰한 보존이다. 


덧붙이는 글

지요하 : 소설가이며 저서로는 『신화 잠들다』, 『인간의 늪』, 『회색정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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