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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총리 취임을 보며 느끼는 소회
  • 지요하
  • 등록 2015-06-24 09:37:23
  • 수정 2015-06-24 09:4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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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라한 내 석양


내 유일한 재산인 시골 32평 아파트 현관에는 세 개의 시화(詩畵)가 출입문 옆으로 나란히 놓여 있다. 고장 문학회에서 만들어 예술제 행사 때 전시를 하고 내게 돌려준 것들이다. 집 안에 들여놓기도 마땅치 않고, 버리는 것도 선뜻 내키지 않아, 그냥 아파트 출입문 옆에다 놓아두고 있다.


몇 개가 더 있었는데, 아파트 로비에다 놓았던 것을 어느 음식점에서 가져다가 벽에 걸어놓은 사실을 나중에 전해 듣고, 그 집에 가서 확인을 하고 식사를 한 적도 있다. 그 집에 걸린 것도 세 개였지 아마….


▲ 우리 집 출입문 옆의 시화들 고장 문학회에서 만들어 예술제 행사 때 사용하고 내게 돌려준 시화들을 버리기 위한 과정으로 아파트 출입문 옆에 놓아두고 있는데, 어느새 해를 넘겼다.


내가 출입을 할 적마다 보게 되는 시화 세 편의 제목은 <놀빛 석양에서 서광(瑞光)을 보네>, <어느 여행길의 쉼터에서>, <애써 구하지 않는다> 등이다. 처음에는 그 시화들을 버리기 위한 과정으로 잠시 아파트 출입문 옆에 놓기로 했던 것인데, 어느덧 내가 집을 들고 날 적마다 나 자신을 비추어보는 거울 같은 것이 됐다.


<놀빛 석양에서 서광(瑞光)을 보네>는 추하게 늙지 않고 저녁 햇살에서도 이승 너머의 ‘희망’을 되새기며 살고자 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 <어느 여행길의 쉼터에서>는 나 스스로 한 시절 순례자임을 되새기는 내용이다. 그렇다. 나는 단지 한 순간의 나그네일 뿐이다. 나는 오늘도 나그네의 심정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애써 구하지 않는다>는 이승 너머의 ‘내일’을 위해 현세의 이기와 과도한 물질적 이익을 탐하지 않으며 살고자 하는 내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2002년에 지어 고장 문학지에 발표하고, 2008년에 출간된 신앙시집 <때로는 내가 하느님 같다>에 수록했던 시인데, 내용을 소개하자면 이렇다.


내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라곤

가난한 마음 한가지였다

아버지에게서 배운 것이라곤

하늘 우러르는 것뿐이었다


애초 물욕이 없고 이재에 어두우니

얻으려 하지 않았고

크게 배운 것이 없으니

큰 성취를 탐하지도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애써 구하지 않으니

구하지 않는 것이 실은 구하는 것임도

조금은 알게 되었다


구하는 것이 실은 잃는 것이요

구하지 않는 것이 실은 얻는 것임을

하늘과 땅의 이치를 헤아리듯 되새기며


나는 오늘도 애써 구하지 않는다

오늘만이 아닌

‘내일’을 위해….



이 시를 대하면 아파트 출입문에 부착되어 있는 천주교 신자 집임을 알리는 표찰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도 들곤 한다. 내가 하느님을 믿고 사는 천주교 신자이기에 이런 시를 지었을 것은 자명하다.

그런데 석양을 체감하며 살고 있는 요즘에는 이상한 부끄러움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스스로 내 가난을 노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가진 것 없고 이룬 것 없는 내 허랑한 신세를 애써 치장한 시인 것만 같다.


내 가난에 대해 스스로 변명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시를 보는 사람들은 혹 작자의 자기위안이나 변명 따위를 감지하지 않을까? 그래서 나를 측은지심의 눈으로 보게 되는 건 아닐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조만간 분리수거장에 버리기로 다시 마음먹는다.


저들의 하느님과 나의 하느님


전 국무총리 이완구가 총리 자리에 앉기 위해 국회 청문회장에서 자못 사투를 벌이던 때, 나는 집을 들고 날 때마다 출입문 옆의 시화 <애써 구하지 않는다>에 눈을 주면서 이상한 자괴감을 감내해야 했다.


나는 그때 이완구가 천주교 신자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평신도 신학자 김근수 선생이 ‘페이스 북’에 올린 글을 보고 천주교 대전교구장 유흥식 나자로 주교가 이완구 바오로의 ‘멘토’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내 아둔패기 꼴을 자각하며 몹시 무안해 하기도 했다.


▲ 검찰 소환된 이완구 전 총리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3천만 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의혹을 받고 있는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에서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이날 이 전 총리는 “심려를 끼쳐 드려 송구스럽다”며 ˝진실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오마이뉴스 유성호


그리고 깊은 허탈감 속으로 빠져들었다. 갖가지 비리와 의혹의 종합세트 같은 사람이 결국 총리 자리에 오르는 것도 내겐 난해한 일이었고, 그가 천주교 신자라는 사실도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나는 갑자기 신앙생활이 피로해졌다. 이상한 피로감 때문에 성당에 가기가 싫어졌고, 천주교 신자이고 싶지 않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데 이완구 바오로가 성완종 리스트 사건에 연루되어 고작 70일 동안 총리 노릇을 하고 물러나더니, 공안검사 출신 황교안이 국회 청문회장을 ‘희극무대’로 만들며 총리가 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황교안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다. 열렬한 개신교 신자라고 했다. 열심히 하나님을 믿고 살면서 신앙 광고도 많이 한 그 공로를 하나님께서 어여삐 보시고 보상을 해주신 덕인지 그는 국회 청문회를 구렁이 담 넘어가듯 통과했다.


황교안은 이완구를 능가하는 비리와 의혹의 종합세트였다. 국회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했거나 스스로 총리 후보를 사퇴한 김용준, 안대희, 문창극에 비하면 그야말로 하나님의 은총이 창대한 사람이었다. 문창극도 열렬한 개신교 신자였는데, 그에게는 하나님의 은총이 작렬하지 않았으니, 하나님의 편애가 섭섭할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황교안에 대한 국회 청문회가 진행되는 동안 여러 가지 궁금증에 시달렸다. 황교안을 한사코 옹호하는 새누리당 의원들을 보면서 김대중 정부 시절 당시 한나라당의 반대로 끝내 총리가 되지 못했던 장상과 장대환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두 사람은 위장전입 문제 때문에 끝내 총리가 되지 못했다. 그런 사실을 새누리당 의원들이 기억이나 하는지, 나는 매우 궁금했다.


황교안을 옹호하는 새누리당 의원들도 사실은 황교안과 같은 비리와 의혹들을 많이 장만해놓고 있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도 있었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저들도 갖가지 의혹과 비리의 종합세트 같은 처지이기에 저토록 황교안을 옹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자신들도 언젠가는 청문회 자리에 설지도 모르기에 그때를 대비해서 비리와 의혹의 종합세트 같은 사람을 통과시키는 선례를 오늘 만든 셈이었다.


황교안을 옹호한 의원들 역시 같은 부류일 거라는 생각, 자신들의 앞날을 위해 오늘 확실한 선례를 만든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들은 사실 끔찍한 일이었다. 그런 생각만으로도 나는 절로 곱송그려지는 심정이었다.


‘잘 사는 나라, 바른 국가’의 정의


▲ 황교안 “청문회에서 의원들 요구 부응 못해 유감”. 황교안 신임 국무총리가 19일 국회에서 진행된 대정부질문에 출석해 “지난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으나 의원들의 요구에 충분히 부응 못했다는 것에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더욱 적극적으로 국회와 소통하도록 힘쓰겠다”고 밝혔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국무총리 황교안은 공안의 냄새를 짙게 풍기는 사람이다. 취임 다음날인 19일 국립묘지 현충탑을 참배한 후 방명록에 이런 말을 적었다. “호국 영령의 뜻 받들어 안전한 사회, 잘사는 나라, 바른 국가를 만들어 가겠습니다.”


‘안전한 사회, 잘 사는 나라, 바른 국가’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분명한 명제이지만, 나로서는 모종의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바른 국가’란 그에게 어떤 것일까? 강한 의문이 들었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공안검사 출신답게 세월호 유가족들과 시민들의 단체인 ‘4·16연대’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등 공안몰이에 나섰다는 말을 듣고 있는데, 그는 세월호 유가족들과 시민들이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도 요구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 물리력으로 정부 비판을 잠재우는 것 등이 ‘바른 국가’의 표상인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일개 촌부인 내 소박한 생각으로는 병역면제, 전관예우, 종교편향, 탈법과 위법 등 무려 11가지의 부적격 사항들을 가지고도 총리가 되는 나라는 결코 ‘바른 국가’가 될 수 없다. 국회 청문회 과정에서 노출된 11가지의 부적격 사항들을 가진 사람은 절대로 총리나 장관이 될 수 없는 나라야말로 바른 국가라는 생각이다.


지면 관계상 일일이 열거하지는 않겠지만 숱한 부적격 사항을 지니고도 총리가 된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바른 국가’라는 말은 공염불일 수밖에 없다. 공염불일 뿐만 아니라, 나 같은 사람에게서는 공포감마저 갖게 하는 살벌한 말이다.


변호사 시절 전관예우에 따라 한해에 16억 원을 벌기도 한 사람을 보면서 나 같은 사람은 완전히 기가 죽고, 생활이 더욱 쪼그라드는 느낌이다. 내 가난(또는 욕심 없는 상태)을 주제로 시를 짓기도 하면서, 가난 속에서도 자존심을 올곧게 유지하며 살려고 노력해왔는데, 나 자신이 너무도 초라해지는 느낌이다.


‘잘 산다’는 것은 잘 먹고 잘 누리며 사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바르게 사는 것’이 실은 잘 사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잘 사는 사람은 뒤처지고 빼앗기고 억눌리고 기가 죽으며 살 수밖에 없다. 사회구조가 그렇다.


그런 사회구조 속에서도 용쓰듯 자존심으로 버티며 바르게 사는 길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사람을 적극 배려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좋은 머리로 고시에 합격해서 승승장구 출세를 하는 것까지는 박수를 받아야 하지만, 온갖 비리와 의혹, 탈법과 위법의 혐의를 지니고도 높은 자리에 앉는 사람에게까지 박수를 보낼 수는 없다.


그런 사람의 출세는 그것 자체로서 사회를 더욱 어둡게 하고 나라를 바르지 않은 길로 이끌어가는 것일 뿐이다.


제발 나 같이 가난한 사람, 가진 것 없고 이룬 것 없는 촌부들도 기죽지 않고 살 수 있는 풍경을 간절히 보고 싶다. 그것이 진정 잘 사는 나라, 바른 국가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덧붙이는 글

지요하 : 소설가이며 저서로는 『신화 잠들다』, 『인간의 늪』, 『회색정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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