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프랑스에서는 수녀들을 상대로 한 성직자 성범죄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방영됐다.
전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아동을 상대로 한 성직자 성범죄에 이어 성인 여성인 수녀들을 상대로 한 성직자들의 성적 비위를 다룬 ‘교회의 또 다른 추문, 학대당한 수녀들(Religieuses abusées, l'autre scandale de l'Église)’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가 방영됐다.
보통 수녀들을 상대로 한 성직자들 성범죄의 경우, 수녀들을 ‘안전한 성관계’ 상대로 인식하는 아프리카 등지에서 벌어진다는 지역적 특성이 주로 언급되어왔다. 하지만 이번 다큐멘터리는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유럽 등지에도 퍼져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지난 21-24일 열린 전 세계 주교회의 의장단 회의 조직위원이자 교황청 미성년자보호위원회(Pontifical Commission for the Protection of minors, PCPM) 위원 한스 졸너(Hans Zollner) 예수회 신부도 제작진의 인터뷰에 응해 “교회구조는 남성들에게 절대적인 방식으로 권력을 부여하는 폐쇄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며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 문제를 확실히 인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전 세계적으로 성직자 성범죄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프랑스 내부에서도 이번 다큐멘터리에 대한 반응이 상당하다.
굴복(submission)이 순명(obedience)과 같다고 가르치는 순명의 그릇된 이해를 떨쳐내야 한다.
프랑스 남녀수도회장상연합회(Conférence des religieux et religieuses de France, Corref) 회장 베로니크 마르그롱(Véronique Margron) 수녀는 아동을 상대로 한 성직자 성범죄와 마찬가지로 “성직자중심주의와 성직자의 권력을 신성시하는 일이 문제의 핵심”이며 성직자를 절대자로 여기는 문화로 인해 “교회는 (이러한 사실을) 부정하는 일을 체계화시키고, 끔찍한 낙태 강요와 더불어 (이러한 사실을) 흔한 일로 여기고 심지어는 공모한 것”이 문제라고 비판했다.
특히 마르그롱 수녀는, 가해에 그대로 방치되고 마는 아이들과 달리 수녀들은 양성을 통해 대응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고 설명하며 “이것이 다는 아니지만 저항하기 위한 수단을 확보하고 적어도 제때에 소리라도 지를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수녀들의 지적 양성은 매우 중요한 화두”라고 제안했다.
마르그롱 수녀는 “가해 성직자가 수녀들에게 가하는 행동이 부도덕하며 범법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비판 정신”을 길러냄으로써 “굴복(submission)이 순명(obedience)과 같다고 가르치는 순명의 그릇된 이해를 떨쳐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관할 교구 주교나 사제에게 의존하지 않을 수 있는 재정적 독립과 범죄 사실이 공정한 절차에 따라 처리될 수 있도록 공동체 기능을 회복시키는 일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사제를 우선시하며 우월하고 신성한 존재로 여기는 신학 (…) 유혹하는 사람이 여성이라고 말하는 이런 낡은 신학 안에서는 주교는커녕 사제도 애초에 유죄일 수가 없는 것
가톨릭교회 아동성범죄 문제를 주로 연구해온 교황청립 그레고리오 대학 카를랭 드마쉬르(Karlijn Demasure) 교수는 “수녀들이 사제들과 성관계를 맺게끔 유도되는 메커니즘을 파악해야 한다”면서 수녀를 상대로 한 범죄가 발생하는 이유가 “사제를 우선시하며 우월하고 신성한 존재로 여기는 신학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드마쉬르 교수는 결국 “유혹하는 사람이 여성이라고 말하는 이런 낡은 신학 안에서는 주교는커녕 사제도 애초에 유죄일 수가 없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뿐만 아니라 동료 수녀나 장상들이 자신들보다 ‘우월한’ 사제가 그런 일을 저질렀다는 일을 믿지 않으려는 ‘거부반응’을 보이며 피해 수녀들의 말을 믿지 않는 이유도 위와 같은 성직자중심주의로 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잘못 이해된 순명은 다양한 형태의 학대를 조장할 수 있다.
한편, 프랑스 보베(Beauvais) 교구장 자크 브누아-고냉(Jacques Benoit-Gonnin) 주교는 교구민들에게 메시지를 발표해 일부 사제들의 ‘권력남용’을 규탄하고 ‘순명 서약’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브누아-고냉 주교는 먼저 사제들에게 피해를 입은 수녀들의 고통에 “침묵과 기도를 통해 동참하고자 한다”고 위로를 전했다. 이어, “수녀를 상대로 한 성직자 성범죄의 규모와 범죄 공모 사실, 수많은 사람들이 수십 년간 지켜온 침묵으로 인해 교회는 악마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며 이로 인해 “교회의 성덕은 상처를 입고, 교회의 이미지는 실추되었으며, 교회의 메시지는 믿지 못할 것이 되었다”고 규탄했다.
브누아-고냉 주교는 피해를 입은 수도자들에게 “우리(성직자)에게서 느꼈을 무관심과 무반응”에 대한 용서를 구하며 “잘못 이해된 순명은 다양한 형태의 학대를 조장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브누아-고냉 주교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께 순명한 것은 자기 식별이나 양심을 부정하거나 포기한 것이 절대 아니었다. 수도 생활에서 체험해야 할 순명이란 자유롭고, 책임 있으며, 인간의 침해할 수 없는 존엄성에 걸맞는 순명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