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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강론 6월 9일
  • 국방그라시아 수녀
  • 등록 2015-06-16 11:56:46
  • 수정 2015-06-16 15:2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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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 우리 정체성의 언어!”


[...]

우리는 어떤 철학의 뒤를 따라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이라고 하는 하나의 선물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에요. 곧 우리는 기름 발린(도유된) 사람들이고 우리는 우리 안에 인장을 박아 놓았으며 우리 안에 보증을, 성령의 보증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하늘은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그것은 증거 안에서 보이는 아름다운 정체성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러나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하고 말씀하실 때 그분은 우리에게 증거를 우리의 그리스도적 정체성의 언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인들이기 때문에 물론 그리스도적 정체성은 유혹을 받기도 하고 - 유혹은 항상 오지요 - 뒤로 물러설 수도 있고 약해질 수도 있으며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그리 될 수 있을까요? 저는 주로 두 가지의 길을 통해 뒤로 물러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증거에서 관념으로 건너가는 것, 증거를 희석시키는 것입니다.


“뭐, 그래, 난 그리스도교 신자야. 그리스도교는 멋진 관념이지. 난 하느님께 기도한다구.” 그렇게 구체적 그리스도에게서 - 그리스도적 정체성은 구체적이니까요. 참 행복 구절에 있잖아요. 이 구체성은 또한 마태 25장에도 있어요. 그리스도적 정체성은 구체적이에요. - 약간 부드러운 이 종교로 건너가는 거예요. 공기를 타고, 영지주의적 길을 타고요.


그리스도적 정체성 뒤에는 걸림돌이 있지요. [...] 십자가는 걸림돌입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또 다른 걸림돌이어서 옆으로 제쳐 놓아지지요. 곧 좀 어떤 정기(精氣) 같고 공기 같은 이런 그리스도교적 영성을 가지고 하느님을 찾는 겁니다. 실제로 현대적 영지주의자들이 있어서 여러분에게 이런 것들을 내놓지요. 아닙니다. 하느님의 마지막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아시며, 다른 것은 없습니다!


이 길로 가는 사람들로는 또한 항상 그리스도적 정체성의 새로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선택되었고 기름 발렸다는 것을, 성령의 보증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잊어 버렸고 “성모님이 오후 네 시에 우리에게 보내실 편지를 오늘 우리에게 말해 줄 환시자들은 어디 있지?” 하고 찾는 겁니다. 예를 들자면요. 아닌가요? 그들은 이런 걸 살아간다고요. 이건 그리스도적 정체성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마지막 말씀은 “예수”이고 그 이상은 아무것도 없어요.


그리스도적 정체성에서 뒤로 물러서는 다른 길은 세속성입니다. 곧 양심을 너무 확장하여 그 안으로 모든 것이 들어가는 거예요. “그래, 우린 그리스도교 신자야. 하지만 이건 해도 되지…” 단지 윤리적으로만이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그래요. 세속성은 인간적입니다. 그렇게 해서 소금은 짠 맛을 잃게 되죠.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증거를 제공할 수도 없고 제공할 줄도 모르는 그리스도교 공동체들과 신자들을 봅니다. 그렇게 정체성은 뒤로, 뒤로 물러나서 사라지는 거죠. 이것이 우리가 매일 보는 세속적 유명론입니다. 구원사 안에서 하느님께서는 아버지로서의 인내를 가지고 우리를 모호함에서 확실성으로, 육화의 구체성으로, 그리고 당신 아들의 구원적 죽음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바오로가 자랑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곧 사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사람이 되시어 순종으로 죽으신 하느님이요 하느님의 아들이신 분이에요. [...]



덧붙이는 글

국방그라시아 수녀 : 성심의딸 수녀회 수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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