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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자궁에 새겨진 역사
  • 문미정
  • 등록 2018-07-20 17:54:05
  • 수정 2018-07-20 18:3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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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사회·심리·종교·의학적 압력이 자궁에 가해졌는지를 사람들에게, 특히 여자들에게 알리기 위해 이 책을 썼다.


크기 약 6~8cm. 조롱박 또는 서양배를 닮은 모양. 골반 안쪽에 위치해 있는 ‘자궁’에 대한 설명이다. 자궁이라고 하면 어딘지 모르게 은밀하면서 신비스러운 이미지가 떠오른다. 과연 자궁은 언제부터 사람들에게 인식되기 시작했을까.


고대부터 포스트모던 시기에 이르기까지 겨우 주먹만 한 크기의 자궁이 겪은 수난이 『자궁의 역사』에 총망라되어 있다. 


고대에는 여자의 신체적·정신적인 질환의 원인을 자궁과 연결 지었다. 고대 이집트의 한 산파가 임신부의 자궁이 밖으로 밀려나온 것을 보고 ‘자궁이 빠졌다’고 말하자, 사람들은 자궁이 제자리를 이탈해 밑으로 나왔다면 어디로든 돌아다닐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돌아다니는 자궁은 다른 장기에 부딪혀 통증을 유발하고 폐를 압박해 호흡곤란을 일으킨다고 믿었다. 고대 치료사들은 질식 증상을 보이는 여성의 자궁을 밑으로 밀어내기 위해 머리 쪽에 고약한 냄새가 나는 연기를 피우고, 하체 쪽에는 향기로운 연기를 피웠다. 


▲ 자궁이 몸속을 돌아다닌다고 믿어 행해진 치료법. (사진출처=『자궁의 역사』)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자궁은 아이를 생산하고 싶어 하는 짐승이며 오랫동안 자궁을 방치하면 자궁이 몸속을 돌아다니다가 호흡을 막아 고통을 가져오고 그밖에도 온갖 종류의 질환을 일으킨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러한 ‘히스테리’는 여자들의 다양한 질환을 설명하는 편리한 용어가 됐다고 라나 톰슨은 설명했다. 


자궁에 대한 편견은 오랫동안 이어졌다. 르네상스 시대에도 여성의 몸은 남성의 몸을 뒤집어놓은 것이라고 생각했고 자궁은 음경(陰莖)을 닮은 모습으로 묘사됐다. 


빅토리아 시대에는 교육을 받은 여성들이 임신을 늦게 하고 자녀를 적게 낳는다는 사실을 걱정했는데, 토머스 케이 박사가 1891년 2월 7일자 『미국의사협회지』에 기고한 바에 따르면, 두뇌활동이 종족번식 기관 발달을 억제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켈로그란 의사는 어린 여학생들이 월경 기간에 두뇌 활동을 심하게 하는 바람에 회복 불가능한 손상을 입었다고 말했다. 


더욱 놀라운 일은 지난 2017년 2월 보건사회연구원 인구영향평가센터장은 여성들의 고학력이 저출산의 원인이며, 여성들이 눈을 낮춰 소득·학력 수준이 낮은 남성과 결혼하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는 사실이다. ‘교육 받은 여성’에 대한 걱정은 100년이 흐른 지금에도 여전했다. 


▲ (사진출처=pixabay)


라나 톰슨은 19세기 ‘진정한 여성’은 섬세하고, 나약하고, 보호받아야 할 존재였다고 말한다. 여자가 남편이나 사회의 기대에 불응하지 못하면 정신병이나 신경증이란 진단을 받았고, 성적 쾌감을 경험하거나 적극적인 성욕을 보이면 ‘남자밝힘증’이란 진단이 나왔다. 


1851년 『보스턴 내외과 저널』에서 자비스 박사는 여성 정신병의 일차적 원인으로 지나친 공부, 실망, 슬픔을 꼽았으며, 정신병의 신체적 원인은 난소와 자궁의 결함이라고 봤다. 19세기 의학자들은 비여성적 행위가 자궁 이상을 불러와 정신 질환을 일으킨다고 본 것이다.


포스트모던 시기에 이르러, 라나 톰슨은 “옛날에는 5개월 무렵 일어나는 태동을 생명의 시작으로 생각했는데, 태아 심음을 증폭시켜 들려주는 청진기 덕분에 임신 4~8주경이 생명의 시작으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이제는 태아의 초음파 사진을 보며 생명이 시작되는 때를 앞당겨서 생각하고, 초음파 영상을 인간 개체와 동일시하게 된다는 것이다. 

 

초음파 기술은 점점 더 발전해 이제 “생명의 시작은 처음 몇 주의 배(胚) 단계까지 거슬러 올라가 생명의 도덕적 의미는 영혼이 언제 몸속에 들어가는가에 대한 중세의 논쟁보다 훨씬 복잡한 것이 됐다”고 설명했다.


1999년 라나 톰슨은 『자궁의 역사』를 펴내면서, “얼마나 사회·심리·종교·의학적 압력이 자궁에 가해졌는지를 사람들에게, 특히 여자들에게 알리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저자는 서구 중심으로 책을 썼지만 거의 20년이 흐른 지금, 대한민국의 상황은 어떠할까. 


여전히 임신중절을 두고 첨예한 대립이 이뤄지고 있으며, 2016년 12월에는 행정자치부가 저출산 극복 프로젝트로 ‘대한민국 출산지도’를 공개했다. 출산지도에는 지역별 가임기 여성수를 표기하고 순위까지 매겨 여성을 애 낳는 기계 취급한다는 강한 비판을 받았다. 


▲ 2016년 12월 29일 행정자치부는 지역별 가임 여성수와 그 순위를 표기한 ‘대한민국 출산지도’를 발표했다. 이에 지난해 1월 6일 “여성을 출산도구로 취급했다”며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사진은 ‘아기 자판기’ 퍼포먼스. ⓒ 곽찬


마지막으로 라나 톰슨은 이러한 화두를 던진다. 


만약 아담이 이브의 갈비뼈로 만들어졌으며 아담이 이브를 금지된 과실로 유혹해 인류가 낙원에서 쫓겨났고, 아담은 기형적이라고 말한다면 여자들의 역사가 얼마나 달라졌을지를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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