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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기고] 명동성당 방문기
  • 유승모
  • 등록 2015-06-12 09:49:33
  • 수정 2016-01-04 11:4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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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프레스 [기고]에는 독자로부터 기고된 글을 게시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반론 등을 제기할 경우 언제든 게재할 방침입니다.



오랜만에 만난 스테파노는 영세한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걷는 모습도 거룩하게 보일만큼 반듯한 형제다. 또한 타고난 게 긍정적이어서 그를 만나서 얘기하다보면 치유를 받는 느낌이다.


그런 그가 오늘은 언짢은 모습이다. “요한씨! 내가 주일에 명동성당엘 갖다 왔는데, 너무 실망했어!” “왜요?”


나는 그 근처에 볼 일이 있어 일 년에 너 댓 번은 명동성당에 가볼 기회가 있지만, 근래에는 한 번도 갈 기회가 없었다. 아마 작년 여름부터일 것이다.


말이 나온 김에 얼마 전 토요일, 시간을 내서 명동성당엘 들렀다.


지하에 차를 주차하고 연결된 통로를 따라 들어간 곳은 쇼핑몰? 기념품 가게, 서점, 커피숍, 빵가게. 어안이 벙벙했다. 아니 이곳에 왜 이런 가게들이?......


몇 년 전 명동에서 정평사제단이 주축이 된 시국미사 때(4대강 반대 시국미사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단식하던 신부님(그 신부님은 우리성당 출신 신부님이셨다) 옆을 지나던 명동성당 고위 관계자가 “신부들이 골방에서 기도나 할 것이지 왜 이렇게 난리야!”라고 비아냥댔다는 후문을 들으면서 가슴이 미어지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순간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망했구나!”


우리나라 신앙의 텃밭이자 민주화의 성지를 물신주의의 상징인 쇼핑몰로 만들어 놓다니... 어떻게 이럴수가... 도대체 화려한 이 모습이 꼭 필요했던 것인가?


겉은 화려한데 속은 편치 않은 이 모습, 아이러니컬하게도 오늘날 한국교회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한 절묘한 조화다. 좀 허술한 듯하지만, 편안히 쉬어 갈수 있었던 그 옛날 그 모습이 그립다.


예수님은 보시고 뭐라 하실까? 명동일대 개발과 관련된 일로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성당 주변 상인들에게 신자의 한사람으로서 괜시리 미안한 마음이 들었었는데....


“이건 무슨 시추에이션”


얼마 전 로마를 방문하신 교회 어르신들께서 교황님께 가난하게 살도록 노력 하겠다고 말씀하셨다고 하기에 일말 교회에 희망을 걸었으나, 그 후 전해 듣는 이야기로는 그때 그 말씀들은 립 서비스였던 모양이다.


한편으론 이런 판단과 실망을 하는 것은 결과를 빠르게 보고 싶어 하는 나의 조급한 성격일거야, 라고 탓하며 “더 기다려 보자” 라고 애써 위안을 삼지만, 가슴 저 깊숙한 곳에서는 이런 탄식이 흘러나왔다.


주님! 제발 정신 차리게 해 주십시오..


돌아가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생전에 전 세계 사제들에게 가끔 서한문을 보내신 것으로 기억되는데, 그 내용 중 특별히 이런 구절이 생각이 나는 날이다.


“부자들과 함께하면 가난한 이들은 교회를 떠날 것입니다.

그러나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면 부자들도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 구절을 읽으면서 얼마나 감격했던지.....


쇼핑몰을 벗어나 성당에서 잠시 조배를 하고, 가톨릭회관 3층에서 토요 성모신심 미사에 참석했다. 미사를 마치고 그곳에 계시던 수녀님께 무엇을 여쭤보려 했는데, 귀찮아하시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미사 준비 하시느라 피곤 하셨겠지, 라고 생각하면서 “바쁘시죠?” 라고 여쭤보니 “네” 하곤 조금도 곁을 주지 않고 쌩~ 사라져 버린다.


정말 그 순간의 찝찝함이란... 나의 언짢음이 그 수녀님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나 보다 하고 스스로 반성해 보았지만, 아무튼 엄청 착잡하다.


이날의 명동성당 방문은 최악이다. 앞으로도 일부러 갈 일이 별로 없을 듯하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성당을 나와 주차비 정산을 하려고 주차권을 정산기에 넣자, 주차비가 4만 5천 원!


“워매! 이렇게 아까울 수가...”


스테파노가 했던 실망을 나도 그대로 체험한 명동성당 방문이었다.


명동을 뒤로하고 남산 터널을 지나는데, 이런 기도가 또다시 입에서 흘러나왔다.

주님! 제발 저들이 정신 차리게 해 주십시오.



-덧붙이는 글


사람마다 똑같은걸 보고도 느끼는 감정이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굉장히 긍정적이고 밝아서, 뭐가 어떤가? 좋기만 한데, 라고 하실지 모릅니다. 이글을 읽고 불편한 분이 계셨다면 용서해 주셨으면 합니다.


명동성당 개발에 대한 저와는 다른 마음이 계셨던 분들은 글을 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면 저의 부정적인 사고방식도 수정할 수 있을 듯 싶습니다. 저도 행복한 마음으로 살고 싶어요. 이런 생각을 계속 하니까 정신건강에도 악 영향이 있습니다.


내가 어느 정도 부정적이냐 하면, 가톨릭교회의 제도가 개신교 같았으면 벌써 교회를 옮겨도 열 번은 옮겼으리라고 공공연히 말하곤 하니까 말입니다.


덧붙이는 글

유승모 : 인천교구 소속 평신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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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1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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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mem2016-03-01 11:23:10

    니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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