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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복) 부활 제5주일 독서·복음 묵상
  • 김수복
  • 등록 2018-04-27 18:09:00
  • 수정 2018-04-28 18: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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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사도 9,26-31) 해설

<교회가 자기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받은 특은들은 다양하지만 유일한 한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다가 오히려 그리스도를 선포하게 된 바오로는 유다인들로부터 미움과 박해를 받는다.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주님을 뵙고 주님의 음성을 들은 바오로는 다마스쿠스에서 대담하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전도했다. 그렇지만 바오로는 자기가 진정으로 회개했고, 죽임을 당하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선포할 사명을 받았음을 인정받기 위해 예루살렘 교회로 가서 베드로 및 다른 사도들과 친교를 맺는다.


31절에서는 교회가 벌이는 선교 활동의 중요한 단계를 가리키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유다와 갈릴래아와 사마리아 온 지방에서 터전을 튼튼히 잡고 주를 두려워하며 성령의 격려를 받아 그 수효가 차츰 늘어났다고 말한다.


시편(21) 해설

<큰 모임에서 나의 찬미도 </span>주님으로부터 오나이다>


이 시편(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은 간구하고 탄원하는 시편이다. 그러나 오늘 화답송에 인용된 구절들을 이 시편 후반부에 속하며 그 말투가 사뭇 다르다. 후반부에 들어서 이 시편은 감사하는 노래가 되고, 하느님을 찬미하라는 초대가 된다. 그리고 그 초대는 모든 이스라엘과 특히 가난한 사람들과 천대받는 사람들과 의로운 사람들에게 보내는 초대가 된다. 또한 그 초대는 보편적인 성격을 띤다. 모든 민족과 모든 사람과 모든 백성이 주님께로 돌아오게 되고, 충실한 모든 사람들이 장차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제2독서(1요한 3,18-24) 해설

<행동으로 진실하게 사랑합시다>


‘양심과 사랑.’ 요한이 사용하는 어법에서, ‘마음’, ‘진심’이란 우리 행동을 심판해 주는 올바른 우리 ‘양심’을 가리킨다.


그러나 ‘마음, 양심, 진심’ 이란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신 사랑에 인도되어야 올바르게 된다.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 사랑을 실천하라.” 사랑이란 다른 사람들의 필요와 결핍과 고통과 초대에 자기 자신을 개방하여 자기 가진 바를 나누어 주고 자기 능력과 자기 자신을 나누어 주는 것을 뜻한다. ‘나눔’만이 진정한 사랑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 생명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셨듯이, 나누어 받은 예수님의 생명 곧 우리 생명이 된 그 생명을 가난하고 무거운 짐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만이 진정한 사랑이다. 서로 사랑하는 것은 모든 것을 서로 나누는 것을 뜻한다. ‘나누는 실천’을 행하는 자만이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이고, 그런 사람은 자기 안에 계시는 성령을 분명히 만나 뵐 수 있게 된다.


복음(요한 15,1-8) 해설

<우리는 하느님의 새로운 포도밭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 있어야만 성장할 수 있고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옛 포도밭과 새 포도밭.’ 이스라엘 사람들은 파스카 잔치가 끝나면, 포도주 잔을 들고서 포도밭의 수확을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이집트 종살이에서 약속된 땅으로 불러내 인도해 주신 ‘하느님의 포도밭’인 이스라엘 백성이 회복되고 성장하게 해 주십사고 기도했다.


요한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파스카 잔치로부터 새로운 포도밭이 생겨난다고 말한다. 그 새 포도밭은 온 세상을 뒤덮을 포도밭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은 그 포도밭에 속하게 된다.


‘내게 붙어 있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포도나무이고 그리스도의 말씀을 실천하면서 그리스도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 가지들이다. 그리스도처럼 살기를 게을리 하거나 포기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에게 속하지 않게 되고, 그의 일생은 헛된 수고가 되고 말 것이다. 그리스도처럼 산다는 것은 더 이상 자기 욕심을 채우거나 자기를 자랑하기 위해 살지 않고, 어디까지나 내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처럼 모든 사람과 모든 백성의 아버지 하느님을 섬기고 인간을 한없이 고귀한 하느님의 자녀로 알아 사랑하는 것이다. 


묵상


참된 생명이신 그리스도


이번 주일의 제1독서와 제2독서는 복음에 비추어서 그 뜻을 풀이할 수 있다. 오늘 복음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신비 속에 얼마나 깊이 또 근본적으로 참여해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다.


사도행전에서 바오로는 확신을 가지고 죽임을 당하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 대한 자기의 신앙을 증거한다. 그 확신은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주님과 직접 만난 생생한 체험에서 우러난 확신이다.


요한 1서에서는, 우리가 우리 속에서 신비스런 방법으로 성령의 증거를 받고 있다고 말한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들이고 우리 안에 살고 계신다.”는 확신을 갖게 해 주신다고 말한다(24절). 그런 증거가 우리 안에서 믿음을 생겨나게 한다. 우리 인식 능력을 온전히 뛰어넘는 실재를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을 생겨나게 한다. 우리 자신의 능력으로는 도무지 설명하거나 증명할 수 없는 신비에 우리 전 존재를 내걸 수 있는 힘을 생겨나게 한다. 


생명을 주고 살아 움직이게 하시는 성령으로부터 생겨난 그 같은 믿음과 확신은 우리를 주 예수와 하나가 되게 하고, 그리스도의 계명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우리에게 준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2)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사랑하신 것처럼 인간을 사랑하는 힘은 우리 자연 본성으로부터 저절로 우러나오지 않는다. 그리스도다운 인간 사랑의 충동이 아니고서 어느 누가 자기 것을 남에게 흔연히 나누어 주고 나누어 쓰며, 다른 사람의 궁핍과 병고와 어려운 처지를 해결해 주려고 뛰어다니고 애쓰고 할 수 있겠는가? 무릇 자기 자신을 바치는 헌신적인 봉사는 모두 그리스도다운 인간 사랑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의 인간 사랑이 어떠한 것인지는 예수님의 일생과 십자가와 죽음과 부활로 우리 앞에 명백히 계시되었다. 우리가 그리스도처럼 인간에게 애정을 품고 애착하는 사랑도 입에 발린 말이나 시늉이 아닌 구체적인 행동으로 드러나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인간과 인류 해방과 구원을 위하여 말이나 시늉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헌신하고 투쟁하신 것처럼, 우리도 우리 주변으로부터 우리나라와 온 세계 모든 사람들의 ‘나눔과 한마음’을 위해 목숨을 내놓고 투쟁해야 한다.


끊임없이 새로이 순수하게 

그리스도를 선택하는 일


인간 개개인들이 타인들과 맺는 관계와 사회생활(가정・직장・단체・국민・인류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그리고 흑인과 황인과 백인 사이의 관계, 나라와 나라, 종족과 종족, 국민과 국민 사이의 관계에서, 역사 현실 속에서, ‘해방과 구원’ 곧 ‘나눔과 섬김, 화해와 일치’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취해야 할 행동양식은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가? 그리스도께서 취하신 방식을 그대로 순수하게 따라야 한다. 포도나무이신 그리스도께 붙어 있는 가지들이라야 인류 안에 ‘나눔과 일치’라는 결실을 풍성하게 맺을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왕국인 하느님의 나라 안으로 온 인류를 끌어들이시기 위하여 결코 지상의 특정한 체제나 권력과 결탁하거나 편승하시지 않고, 당신의 독자적인 독특한 방법을 사용하셨다.


그것은 인간 개인들의 마음을 근본적으로 뒤바꿔 놓는 방법이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들의 마음을 성령께서 부어주시는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사랑하는 마음’, ‘인간을 귀중한 하느님의 자녀와 내 형제자매로 애착하는 마음’, ‘이웃과 온 인류의 처지를 자기 자신의 처지로 삼는 마음’으로 바꿔 놓는 방법이다. 그렇게 ‘새 마음’을 받고 그 새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들어가는 것이 새로운 사회・세계・인류를 만들어가는 방법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새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부당하게 가난해지고 억눌리고 빼앗기고 갇히고 학살당하는 제3, 4세계의 수많은 형제(사람)들의 처지를 결코 나 몰라라 할 수 없다. 그들을 바라보면서 그리스도와 함께 고민하고 고뇌하고 피땀을 흘리고 생명을 걸어 놓고 곧장 돌진할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처럼 경제적・군사적 침략주의자들과 그 앞잡이들에게 희생당하는 가난한 사람들과 소유와 의식주 소비생활에서 동류가 된 다음, 그들 마음속에 ‘하느님의 똑같은 자녀’로서 떳떳한 인권의식과 자존심을 일깨워나가지 않을 수 없다.


박해와 고문과 죽임을 당하신 예수를 닮은 사람들이 나서서 그들의 마음을 성령께서 부어 주시는 사랑(하느님사랑, 인간사랑)으로 가득 찬 ‘새 마음’으로 바꿔 놓으면, 나머지는 성령께서 그들을 통하여 당신 하실 일을 다 하실 것이다. 성령의 ‘새 마음’을 받은 그들도 또한 마찬가지로 다른 수많은 ‘새 마음’들을 그리스도의 방식과 성령의 능력으로 확보해갈 것이며, 그 대항할 수 없는 엄청난 하느님 나라의 세력 앞에 악마의 세력이 견뎌 내지 못하고 항복하고 말 것이다.



부활 제5주일 독서·복음


제1독서(사도 9,26-31)

<길에서 주님을 뵈온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사울은 예루살렘에 이르러 제자들과 어울리려고 하였지만 모두 그를 두려워하였다. 그가 제자라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바르나바는 사울을 받아들여 사도들에게 데려가서, 어떻게 그가 길에서 주님을 뵙게 되었고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는지, 또 어떻게 그가 다마스쿠스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담대히 설교하였는지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하여 사울은 사도들과 함께 예루살렘을 드나들며 주님의 이름으로 담대히 설교하였다. 그리고 그리스계 유다인들과 이야기도 하고 토론도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사울을 없애 버리려고 벼르고 있었다. 형제들은 그것을 알고 그를 카이사리아로 데리고 내려가 다시 타르수스로 보냈다. 이제 교회는 유다와 갈릴래아와 사마리아 온 지방에서 평화를 누리며 굳건히 세워지고, 주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면서 성령의 격려를 받아 그 수가 늘어났다. 


시편(21)

큰 모임에서 나의 찬미도 

주님으로부터 오나이다


제2독서(1요한 3,18-24)

<믿고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 그분의 계명이다>


자녀 여러분,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해 있음을 알게 되고, 또 그분 앞에서 마음을 편히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마음이 우리를 단죄하더라도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마음보다 크시고 또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마음이 우리를 단죄하지 않으면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청하는 것은 다 그분에게서 받게 됩니다. 우리가 그분의 계명을 지키고 그분 마음에 드는 것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계명은 이렇습니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알고 있습니다. 


복음(요한 15,1-8)

<내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쳐내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모두 깨끗이 손질하시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한 말로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잘린 가지처럼 밖에 던져져 말라 버린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런 가지들을 모아 불에 던져 태워 버린다.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청하여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너희가 많은 열매를 맺고 내 제자가 되면, 그것으로 내 아버지께서 영광스럽게 되실 것이다.  




[필진정보]
김수복 : 살레시오 수도회에서 10년 동안 수도생활을 하고, 그 동안 서울 가톨릭 신학대학 6년을 수료했다. 40년 동안 5개 언어에서 성서와 신학 관련 서적을 우리말로 옮기는 번역노동자였다. 현재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둘, 손자 넷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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