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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의 '엔터'로 얼마나 많은 것을 잃고 마는가!
  • 전순란
  • 등록 2015-06-07 16:07:47
  • 수정 2015-06-07 16: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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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5일 금요일, 흐림 오전에는 가랑비


어제 미루씨네가 고쳐놓고 간 테라스 식탁에 툭툭 빗방울 지는 소리가 들린다. 얼른 나가서 비닐 식탁보를 덮고 돌로 눌러놓는다. 오래 기다리던 비인데 먼지 날리는 것만 잠재운 ‘먼잠비’다. 하지만 가엾은 화초는 한두 방울에도 목을 축이고 생기를 되찾은 듯 사방이 더 푸르다.


보스코가 비료 부대에 흙은 채우고 심어준 우엉을 솎아서 밭에 옮겨 심을까 하고 내려갔더니만 배나무 밑이어서 흙은커녕 잎도 젖지 않았다. “안 되면 기다리구, 담에 하자.” 검푸르게 웃자라는 상추만 몇 잎 따들고 올라왔다.


유영감님이 나더러 “와 시커먼 상출 심었노? 상춘 파래야지 먹고 싶은 벱여.” 하신다. 난 파랗기만 한 상추는 빈혈상추 같아서 먹고 싶은 생각이 안 나는데... 텃밭의 온갖 남새들이 각기 제 모양과 색깔과 맛으로 크고 있다.



며칠 째 ‘드롭박스’로 내 핸드폰 사진들이 옮겨가지 않는 까닭이 드롭박스에 너무 많은 자료가 실려 있어서인 듯하다면서 보스코가 어젯밤 한참이나 사진을 지웠다. 그리고선 ‘휴지통’도 비우고서 잠자러 갔었다. 그러고서는 오늘 아침의 한숨과 통탄이라니! 바탕화면에 깔아놓은 작업 폴더들이 여럿 온데간데 없단다!


아~아~ 한 번의 엔터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일시에 잃고 마는가! 몇 년 몇 달치의 컴퓨터 작업도, 금융사기에 걸려 그 큰 은행돈도 엔터 하나로 잃고, 악의로 작성한 유언비어와 타인모욕의 범죄성 글도 엔터 하나로 만천하에 띄워버리지 않은가?


우리 인생의 그 많은 고비도 일시적 흥분으로 내리는 ‘엔터’ 하나로 잃고 망치고서 평생을 후회하지 않던가? 헤어짐, 사표제출, 가출과 이혼, 욱 하는 폭행과 낙태와 살인....이 모두가 순간에 날린 엔터다.


아날로그 방식으로 노트나 원고지에 쓴 것은 태우거나 내다버려야 없어지니 결별이 쉽지 않다. 엔터 한 번으로 모든 게 날아가는 디지털 시대에 우린 살고 있어 되레 비극이다. 결혼도 아날로그로 하고, “헤어진들 무슨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인생이 불쌍해서”, 그제 독서회 아우님들의 말마따나 “의리상” 살아오던 아날로그 부부들이 황혼녘에 디지털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을 배워 젊은이들보다 율이 높은 ‘황혼이혼’이라는 엔터를 치고 마는데...




이래저래 사고가 많은 보스코의 노트북을 들고 함양읍으로 나갔다. 우리 단골 ‘컴천지’에 가져가 포맷을 해 달라니 네 시간 정도 걸린단다. 아리땁고 귀여운 우크라이나 색시와 엄마를 닮아 눈이 예쁘고 포동포동한 두 따님에게 초코파이를 두 상자 사들고 갔다.


컴퓨터를 쓰다 모르는 게 있으면 시도 때도 없이 무작정 컴천지 사장님에게 전화를 해서 문의를 하는 보스코다. 읍내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상림에서 읽다가 시간이 되어 전화를 하니까 컴퓨터 창고에 엄청나게 많은 자료가 얼키설키 쌓여 있어 그걸 정리하느라 포맷은커녕 고치는 일도 시작 못했다면서 내일 찾으러 오란다. 역시 보스코는 ‘기계 파괴의 은사’를 성령께 받았음에 틀림없다.


발바닥 치료로 병원에 들러도 시장을 둘러보아도 메르스 사태로 손님이 없고 모두들 수군수군 겁에 질려 있다. 오늘 날짜로 정부가 평택을 ‘메르스의 메카’로 발표하였기에 송탄 사는 막내동서에게 문안전화를 했다.


“자기 혹시 평택 성모병원 안 갔어?” “형님, 새로 개원한 병원이어서 한번 가볼까 하다가 ‘에이 그냥 다니던 병원에 가자’ 하고서 건강검진을 했지 뭐에요?” “자네가 거길 갔더라면 경상도에도 함양에도 확진환자 두 명쯤 등장시켰을 텐데...”


이러다가는 모든 학교가 휴교하고 모든 병원이 폐쇄되고 모든 가게가 문을 닫을 판에 “국민 여러분, 길거리에서 낙타를 멀리 하세요. 하지만 공기론 전염 안 돼요.”가 보건복지부 대책이고, “낙타도 없는 나라에 무슨 환자가 퍼져요?”가 대통령의 요담이고, “서울시장 박원순이가 메르스(공포)를 퍼뜨리는 주범이다! ”가 여당의 정책이라니...


그래서 일본과 주변국가들은 한국정부 대응방식을 반면교사 삼아 메르스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니... “노짱(의 사스 대책)을 입에 올리는 자들은 모조리 종북이다! 역시 야당으론 안돼!”가 매춘언론의 메르스 대책 좌담회라니... 야당 지지자 90%, 여야에 중립인 국민은 80%가 정부를 불신한다는데 새누리당 지지자는 여전히 60%가 정부에 갈채를 보낸다니 정신이 있는 인간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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