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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안에 성폭력, 주님 사랑으로 다 덮고 용서하라?
  • 문미정
  • 등록 2018-03-09 19:04:43
  • 수정 2018-03-12 11: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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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기억하며 꽃을 제대 위에 올려뒀다. ⓒ 문미정


이제 더 이상 침묵하지 않고 떨쳐 일어나겠습니다.


Me Too, 나도 그렇다! 오랜 침묵을 깨고 여성들이 말하기 시작했다. 서지현 검사, 그리고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피해 증언이 있었다. 


8일 세계 여성의 날,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성폭력으로 희생된 이들을 기억하는 촛불기도회’가 열렸다. 


채수지 기독교여성상담소 소장은 “미투 운동은 피해자들을 함께 연대하게 하고 서로를 위로하며 치유해나가는 성령의 바람이자 교회의 개혁운동”이라고 말했다. 피해자들은 교회와 목회자에게 실망해 교회를 떠나도 교회는 그들의 상처를 보지 못했고 오히려 교회를 분열시킨다고 손가락질 했다. 


피해자의 인권을 존중하지 않고 행하는 2차 가해는 교회의 의식 수준을 보여준다.


▲ 채수지 기독교여성상담소 소장 ⓒ 문미정


또한 가해자의 ‘말뿐인 회개’에 면죄부를 주고 피해자에게 ‘주님의 사랑으로 다 덮고 용서하라’는 말에 문제를 제기하며, “주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이지만 무분별한 사랑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판임 세종대학교 기독교학과 교수는 피해자에게 ‘잊어버려’, ‘용서해줘’라고 말하는 건 ‘기억을 억압하는 사회적인 태도’라고 철학자 수잔 브라이슨이 지적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힘들고 억울한 피해자들이 가해자를 고발하면 오히려 ‘꽃뱀’ ‘원인제공자’라며 명예훼손으로 공격당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성폭력은 가난하거나 우유부단한 사람들이 당한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선입견을 지적하면서, 이렇게 피해자들과 거리를 둘 때는 아무런 역사도 이룰 수 없다며 성폭력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우리의 동료이며 상사이고, 학부모, 교수, 목사, 장로, 신부도 있다. 심지어 우리 아버지도, 오빠도, 동생도, 친구도, 내 남편도 가해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피해자들을 어떻게든 위로하려고 하지마라. 그보다 가장 좋은 것은 피해자의 증언을 듣고 공감하며 함께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 김판임 세종대학교 기독교학과 교수 ⓒ 문미정


세 명의 성도들, 그리고 뒷이야기


기도회가 마무리 된 후, 각기 다른 교단의 개신교인들과 미투 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눴다. 


성폭력은 다양한 형태로 가까운 곳에 있어요. 저도 잊었던 과거가 엄청 생각나더라고

미투 운동이 벌어지면서 여자들이 모이기만 하면 자신들의 이야기를 해요.


교인들은 교회 내에서 피해자들이 고발을 해도 가해자들이 증거불충분으로 무죄판결을 받은 사례들을 이야기하면서, 순식간에 당하는데 증거자료를 어떻게 확보하느냐고 답답해했다. 아무리 똑똑하고 이성적인 사람이라도 성폭력을 당하는 그 순간에 거부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최근 권력형 성폭력이 큰 사회적 범죄로 다뤄지는 것이 인상적이라면서도, 가령 부부관계처럼 권력차이가 적은 경우는 사회적 이슈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가난한 사람들은 조직 안에서 잘 보호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성범죄가 아주 심각한 범죄란 것을 인식시키기 위해서는 법을 바꾸는 것부터 출발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사회 인식 변화는 법 개정과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남성들이 주도하는 세상에서, 여성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조직화 돼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채로 흩어진 것에 대한 아쉬움을 표하며, 조직이 없으니 폭력을 쉽게 당하는 것 같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세 명의 교인들 말처럼 미투 운동이 시작된 이후, 여자들은 모이기만 하면 가슴 한 켠에 묻어뒀던 기억을 하나둘씩 꺼내 공유한다. 하지만 기억을 공유한 집단 밖에서 말하기란 어렵다.


▲ ⓒ 문미정


이제 겨우 말하기 시작한 여성들, 갈 길이 멀다


앞서 기도회가 진행되고 있을 때 일어난 일이다. 중년 남성들로 이뤄진 한 무리가 기도회를 흘깃흘깃 보면서 지나갔다.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그 무리 중 한 남성이 외쳤다. “미투 얘기 하지 마!”


기도회에 난입해 패악을 부리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기도회 현장과 안전거리를 확보한 후 외치는 모습이 구차하다고 해야 할까. 


우리 사회는 미투 운동으로 여성들이 이제 겨우 용기 내어 말하는 분위기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러나 갈 길이 멀다. 왜 이렇게 피해자가 많은 것인지, 그동안 왜 말하지 못했는지, 건강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문화를 만들어 가야할지 아직도 해야 할 이야기가 많이 남았다. 


오늘도 촛불기도회에 함께 한 이들은 다음 일정을 약속하고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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