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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확실히 정치가 삶을 좌우한다!
  • 전순란
  • 등록 2017-05-29 09:58:15
  • 수정 2017-05-29 09:5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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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28일 일요일, 맑음


보스코가 로마에서 갖다 준 선물 보따리 빨래는 남편이 돌아왔다는 신호다. 꼬질꼬질한 빨래가 혼자 보낸 시간이 별로였다고 말한다. 흰 빨래를 삶으며 아마 그도 아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절감했으리라 여기며 은근히 뻐겨본다. 실은 그가 없기에 할 일이 적었는데도 왜 내 생활은 더 편하거나 더 신나는 일이 없었을까? 많은 여자들이 ‘전업주부’라는 직장에서 휴가를 얻어 여행도 떠나고,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일도 하고, 자유를 만끽한다던데 왜 내겐 그런 기능이 사라졌을까? 곰곰이 헤아려 봐도 생각이 안 난다.



한국염 목사한테 전화를 했다, 그 이유가 뭔지 물어 보려고. 신호는 가는데 안 받는다. 그 친구는 야행성이라 아직 잘 시간도 아닌데? 나중에 연락을 한 그니는 새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자가 아베 건으로 사고를 쳐 놔서 정대협 차원의 대책을 세워야 한단다. 박근혜가 저지른, ‘10·28 정신대 합의’를 유엔사무총장이 지지했다나. 역시 큰 사람의 고민은 전업주부의 것과 사뭇 다르다.


서울 거리를 헤매는 한복패션도 참 이쁘다 


모처럼 낮잠도 자고, 침대에 누워 엎치락뒤치락하다 세탁기가 이불 빨래 끝내는 소리에 나와 커다란 이불을 꺼내서 혼자 널려니 쉽지 않다. “여보, 이불 끝 좀 잡아줘요, 널게” 내일 혹시 있을 면담을 위해 ‘특사 경과보고서’를 쓰다가 일어나 일손을 도와주고는 말없이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앉는 그를 보며, “아~ 남편이 있다는 게 편리하구나” 실감하고 “그래서 그가 없는 한 주간이 재미없었구나!” 깨달았다. 그간 혼자서 성무일도를 드려도 티벳 요가를 해도 하나도 재미가 없었다.


“음~ 그가 오면 잔소리하지 말고 잘해줘야지” 했는데, 그를 만난 지 하루가 못 됐는데 그 결심은 일단 보류다. 아니, 무효다. 7일간의 여행에 옷이 빡빡해진 게 눈에 띄어 당장 저울에 올라서게 한 다음, 1킬로는 족히 더 늘어난 그의 체중을 확인하고서 벌써 협박을 시작했다.


“당분간 아침에 떡, 계란, 설탕 넣은 커피우유는 없어요” “나 머리 많이 써야 하는데…” “당신, 정 그러면 미루한테 보내버릴 거야! 9일간의 효소단식!” 아침상에서 양파즙 한 잔, 홍삼액 한 잔, 블루베리 넣은 요쿠르트, 그리고 내가 깎아 나눠주는 사과, 바나나, 키위, 파프리카 한 조각씩을 말없이 먹던 그에게 한 마디 더 한다. “어쩌면 미루보다 더 무서운 벌을 줄 수도 있어요, 굶는 벌!” (아하! 바로 이거다. 이렇게 앞에 두고서 실컷 잔소리할 대상이 없어서 재미가 없었구나. 한 여자가 한 남자와 목매고 결혼하는 이유가 ‘딴 여자한테 못 가게 붙잡아 두고서 평생 잔소릴 하고 할퀴어주기 위해서’(콰레스키 소설 「돈까밀로」에서)라던가?



상도동 함신부님의 미사에 갔다. 그분을 좋아하는 분들이 각자 찾아와 미사를 드리나 보다. 미사시간만 주일 11시로 정해놓고 오는 사람은 정해져 있지 않단다. 다만 인사차 찾아뵙고 미사를 함께 드리는 만남은 참으로 뜻있고 성스럽다.


제1독서, 제2독서를 함께 읽고, 참석자가 한 구절씩 꼽아가며 자기 생각을 말하는 성서 나누기는 니카라과의 솔렌티나메 공동체에서 에르네스토 카르디날레 신부님이 말씀나누기로 어려운 삶을 사는 그들을 의식화하고 사회적 책무에 눈뜨게 만들던 모습을 떠올리게도 했다. 보스코가 40여 년 전 간추려 한 권으로 번역한 「말씀이 우리와 함께」(분도출판사)라는 책이다.



돌아오는 길에 4·19탑에서 안셀모를 만나 로마에서의 이야기를 나눴다. 많은 사람들이 새 정부에 거는 기대가 크고 거기서 오는 희망이 삶을 행복하게 한다.


법원이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라인 노동자의 희귀질환(다발성경화증)을 산업재해로 처음 인정했다는 뉴스가 뜬다. 10년 넘게 끌어온 일이고 2015년에 시작한 사망자 가족의 노숙 농성이 오늘로 꼭 600일째 되는 날이기도 하다. 이렇게 풀릴 일을 왜 그리도 질기게 끌어왔는지?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자리 잡는다는 뉴스도 뜬다. 누가 정권을 잡는가가 중요하고, 정치가 이처럼 국민의 삶에 직접 영향을 준다는 걸 요즘 눈앞에서 새삼 확인하는 나날이다. 확실히 정치가 삶을 좌우한다.


들어 사는 사람이 바뀌니 청와대도 사랑스럽고 


무슨 파충류 같아보이는 서울시청도 박원순 시장이 있어 쳐다볼만하고…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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