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인터뷰:섬김] “나는 봉사자가 아니다”
  • 최진 / 곽찬
  • 등록 2017-01-26 17:45:52
  • 수정 2017-02-09 18:55:41

기사수정


인천 동구 화수동 골목에 있는 민들레진료소는 2010년 8월 21일 문을 열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무료 진료에 인하대 병원 의사들이 뜻을 모으면서 활동이 시작됐다. 아름다운 뜻이었지만, 모두가 처음 뜻을 이어가진 못했다. 7년이란 시간 동안 여러 사람들이 떠나고 또 도착했다. 인하대병원 소화기내과 김형길 교수는 그 세월을 묵묵히 보낸 의사 중 한명이다.


토요일 오후 1시 30분경 진료소에 도착하니 진료 준비가 한창이었다. 일찍 온 환자들은 의자에 앉아 오후 진료 시작을 기다렸다. 본격적인 진료 시간이 가까워오니 더 많은 환자들이 진료소 문을 열었다.


▲ 김형길 교수는 7년동안 묵묵히 민들레진료소를 찾는 사람들을 진료했다. ⓒ 최진


나는 특별히 봉사라고 할 만한 일을 하고 있지 않다. 따뜻한 곳에 앉아서 오는 환자들을 진료하는 것이 어떻게 봉사라고 하겠는가. 나보다 더 고생하는 숨은 봉사자들이 많다.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봉사자에 낄 수 있나

김 교수는 자신이 7년간 민들레진료소에 나와 가난한 이들을 진료했던 일을 두고 ‘봉사가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봉사란 힘들고 어려운 환경에서 나를 희생하는 것’이라 생각한다는 말을 덧붙이며 다시 한 번 자신의 활동은 대단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민들레진료소에서 활동을 시작하기 전, 영등포역에서 1년간 노숙인들을 위한 급식소에서 봉사를 했다. 새벽 6시부터 400여명이 먹을 아침식사를 준비하며 밥통과 국통을 날랐다. 몸은 힘들었지만, 그는 그때의 활동을 기억하며 ‘봉사’라고 말했다. 


그는 “30년간 의사로 살았던 나에게 진료는 힘든 일이 아니다. 힘들게 희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봉사를 했다고 말하기 힘들다”고 고집을 부렸다. 7년 동안 가난한 이들을 위해 주말을 내어놓았다는 사실이 김 교수에게는 대단하고 자랑할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 시작은 언제부터였을까. 김 교수는 대수롭지 않은 듯 아프리카 의료봉사 이야기를 꺼냈다. 


비정기적이었지만 아프리카 의료봉사에 참여했던 그는 기초적인 약품조차 구하지 못해 고통 받는 아프리카 사람들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 최첨단 의료기가 집중돼 있는 대학병원 의사로서는 접하기 힘든 모습이었다. 그러나 최첨단 의료기술의 발전이 거듭되는 시대에도 가난한 이들이 받을 수 있는 혜택은 많지 않았다. 


▲ 김 교수는 ‘봉사란 힘들고 어려운 환경에서 나를 희생하는 것’이라 생각한다는 말을 덧붙이며 자신의 활동은 대단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 최진


가난으로 소외된 사람들은 아프리카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 한국의 노숙인들은 몸의 고통뿐 아니라 사회로부터 외면당하는 마음의 상처도 컸다.


가난으로 소외된 사람들은 아프리카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고 생각했던 대한민국의 길거리에서도 아프리카의 아픔이 보였다. 특히 한국의 노숙인들은 몸의 고통뿐 아니라 사회로부터 외면당하는 마음의 상처도 컸다.


의사는 상처받은 사람을 치료해주는 사람이다. 이 단순한 논리가 그를 움직였고 새벽에 밥통과 국통을 나르는 봉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노숙인 급식소 봉사는 오래가지 못했다. 급식소는 오전 6시부터 시작됐는데, 7시부터 시작되는 영등포역 출퇴근 시간과 겹쳤다. 서울시는 사람들이 몰리는 출퇴근 시간에 진행되는 노숙인 무료 급식소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급식소 운영이 중단됐다. 그때 마침 KBS 인생극장에 방영된 서영남 씨의 민들레국수집 이야기를 동료 의사로부터 전해 들었다.


▲ 김형길 교수의 아내 오혜정 씨. 함께 민들레진료소에서 활동하고 있다. ⓒ 최진


김 교수는 “노숙인들이 국수를 먹으러 왔을 때 식당 옆에서 진료를 하면 노숙인들에게 기쁨이 되지 않을까라는 소박한 뜻에 6명의 의사들이 동참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가난한 사람이나 노숙인들이 대학병원을 찾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내가 직접 그 분들을 찾지 않으면 진료 현장에서 접하긴 어렵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민들레진료소 이야기를 서영남 씨에게 전했다. 다행히 뜻이 맞아 진료소를 열 수 있었다”고 말했다.


노숙인들에게 먹고 자는 것 다음으로 필요했던 것이 의사를 만나는 일이었다.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노숙인들은 한번만이라도 의사를 만나 자신의 상태를 점검받고 싶어 했다. 의사를 만나 아픔을 호소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일 것이다. 


▲ 민들레진료소 다른 봉사자들이 함께 몸이 아픈 분들을 진료하고 있다. ⓒ 최진


봉사를 통해 얻게 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김 교수는 할 말이 많아졌다. “진료를 하면 스스로 정화되는 느낌을 받는다. 민들레진료소에는 진실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믿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일반 사회보다 훨씬 많다.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만남을 기쁘게 여긴다. 나는 그들처럼 살지 못한다. 그래도 그런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면 삶을 배우게 되고 스스로 정화되는 느낌을 받는다. 환자든 봉사자든 배울 점이 많다”고 말하며 수줍게 웃어보였다. 


김 교수는 민들레진료소에서 활동할 수 있다는 사실에 신앙인으로서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말하는 중간에도 끊임없이 자신은 좋은 사람이 아니라 그들을 보고 배움을 얻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어떤 사람들이 민들레진료소를 찾는지 묻자, 김 교수는 “이곳을 찾는 분들은 평균 70~80대 노인분들이다. 또한 실내보다는 실외에서 활동하셨던 분들이 많다. 몸을 계속 쓰셨던 분들이기 때문에 건강한 것처럼 보이지만, 여러 가지 통증을 늘 달고 다니신다. 팔, 다리, 허리 등 관절 통증이나 염증이 많다. 정형외과적인 질환이 많다”고 말했다.


또한 “정형외과 질환이 많지만 감기나 기관지염도 많다. 이것은 생활환경이 열악하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나타내주기도 한다. 겨울철에 감기환자가 많은 것은 당연하지만, 민들레진료소기 때문에 더 그것이 아프게 다가온다”고 말했다.


▲ 민들레진료소의 봉사자가 진료소를 찾은 어르신의 혈압을 체크하고 있다. ⓒ 최진


알콜중독인 한 환자는 진료소에 올 때마다 의사들한테 싫은 소리를 듣는다. 술을 끊어야 나아지는 질환인데, 진료 받는 날에도 술을 마시고 온다. 안타까워서 싫은 소리를 계속했다. 그런데 오랜 시간 지켜보니, 그분은 의사한테 듣는 야단이 좋아서 계속 진료소를 찾는 것이었다. 자신을 걱정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보니, 일주일에 하루 진료소를 찾아와 그 소리를 듣는 것이다. 자신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그렇게 찾아간다. 음주를 심하게 야단치는 담당의사가 안 나오면 그 의사가 언제 오느냐고 물어본다.

“진료소를 찾는 분들은 기본적으로 고마워하는 마음이 커서 무엇을 더해달라는 요구를 잘 안하신다. 그래서 더욱 세심한 관찰이 필요하다. 하지만 함부로 마음을 열고 불쑥 다가가면 그 분들에게는 폭력이 될 수 있다. 그래서 환자분들이 스스로 마음을 열기를 기다린다. 사는 이야기를 해주실 때까지 기다린다. 그러다보면 기회를 놓치는 경우도 있지만 더 고민 해봐야할 문제라고 생각 한다” 


민들레진료소는 단순히 진료와 약 처방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환자에 대해 김 교수는 할 말이 많았다. 그는 민들레진료소가 단순히 진료와 약 처방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고 말했다. 관심을 받지 못하는 이들에게 관심을 전하고 야단과 걱정을 통해 애정을 표현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깨달음 때문에 민들레진료소 활동을 하면 할수록 노숙인들과 가난한 이들에 대한 애정이 더욱 커진다고 말했다. 7년이지만, 그에게는 아직 숙제가 수두룩했다.


7년차 의료봉사자인 그에게 8년차, 9년차의 계획도 있냐고 물었다. 김 교수는 역시나, 이번에도 자신의 봉사가 미약하다고 말하며 희생이 부족하다고 부끄러워했다. 


▲ 민들레진료소의 다른 봉사자가 진료소를 찾은 어르신을 진료하고 있다. ⓒ 최진


그는 “봉사는 계속 해야 한다. 그런데 민들레진료소는 상황적인 제약이 있다. 공식적인 병원도 아니고 등록된 의료기관도 아니다. 진료를 확대할 수 없는데, 그러면 정말 길거리 분들을 더 많이 진료할 수 없다. 이곳을 몰라서도 못 오는 노숙인들도 많다. 그래서 이곳 진료와 더불어 새로운 봉사도 신중하게 찾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자신을 대단한 봉사자처럼 적지 말아달라고 연신 부탁하며 “나는 좋은 사람들이 좋은 뜻을 세웠던 것에 끼어들었다. 사실 이곳에서 얻어가는 것이 더 많은 사람이다. 봉사자들과 환자들에게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배워갈 뿐이다. 그저 좋은 곳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오가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상처가 없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모두가 상처를 치료받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은 상처가 나도 갈 곳이 없다. 몸의 상처는 마음으로, 마음의 상처는 다시 몸으로 퍼진다. 민들레 진료소는 그렇게 ‘아픈 사람들’을 위한 ‘치유의 공간’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의사 김형길 씨가 늘 있는 사람처럼 함께 하고 있었다.  


▲ 이날 민들레진료소를 찾은 봉사자들이 모여 기념사진을 남겼다. ⓒ 최진


TAG
키워드관련기사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가스펠툰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