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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내 놓은 저항, “촛불이 승리하기를”
  • 최진
  • 등록 2017-01-09 14:42:17
  • 수정 2017-01-09 17:2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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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일, 정원 스님은 박영수 특검 사무실 앞에서 박근혜 국정농단 사태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했다. (사진출처=정원비구)


제11차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정원 스님이 7일 오후 10시 30분경 서울 경복궁 앞 광화문시민열린마당에서 소신공양(燒身供養)했다. 소신공양이란 부처에게 공양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불사르는 것으로 스님은 박근혜 정권의 처벌을 촉구하고 민중의 행복을 바라며 자신의 몸을 공양했다. 


스님은 분신 직후 전신에 2~3도 화상을 입고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으로 후송돼 치료를 받고 있지만 9일 오전 현재까지 위독한 상태다. 가족들은 스님의 뜻을 존중해 생명을 유지하는 연명 치료를 원치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님이 분신한 곳에는 “일체 민중들이 행복한 그 날까지 나의 발원은 끝이 없사오며, 세세생생 보살도를 떠나지 않게 하옵소서”, “박근혜는 내란 사범, 한일 협정 매국 짓, 즉각 손 떼고 물러나라”, “경찰은 내란 사범 박근혜 대통령을 체포하라” 등의 글이 적힌 스케치북이 발견됐다. 


▲ (사진출처=박근혜 즉각구속 정원스님 분신항거 비대위)


또한 “나의 죽음이 어떤 집단의 이익이 아닌 민중의 승리가 되어야 한다”며 “나는 우주의 원소로 돌아가니 어떤 흔적도 남기지 마라”는 당부도 있었다. 


스님은 이날 분신에 앞서 페이스북을 통해 “벗들이여 그동안 행복했소, 고마웠소, 고마운 마음 개별적으로 하지 못하오, 사랑하오, 민중이 승리하는, 촛불이 기필코 승리하기를 바라오”라며 “박근혜와 그 일당들을 반드시 몰아내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 땅에 정의가 바로 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라는 글을 올려 분신을 암시했다. 


분신 하루 전인 6일에는 “문수 스님 이남종 열사의 분신은 죽음이 아닌 가장 강한 저항”이라며 “사람들은 자기 목숨이라도 내어놓고 이야기하지 않으면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전태일이 자살하지 않았다면, 그의 ‘근로기준법 준수’라는 외침이 어느 사람에게라도 전해졌겠느냐”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스님은 최근 박영수 특검 사무실 앞에서 박근혜 국정농단 사건의 진실규명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진행했으며, 박근혜 정부와 일본 정부가 체결한 한일 위안부 합의에 항의해 지난해 1월 6일 외교부 청사에 화염병을 던지려다가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세월호참사 때는 팽목항에서 보름간 식음을 전폐하며 기도를 봉행했다. 


정원 스님은 1977년 해인사로 출가해 종교인으로서 1980년대 민주화운동에 적극 참여했지만, 조계종 내부의 권력 다툼과 부패 승려들의 탐욕 등에 회의를 느껴 90년대부터 종단 없이 승려 생활을 했다. 스님이 마지막까지 몸담았던 곳은 ‘자주평화통일실천연대 산하 불교위원회’로 알려졌다. 


이번 소신공양은 지난 2013년 12월 고 이남종 씨가 ‘박근혜 특검 실시’를 외치며 분신한 이후, 박근혜 정권 때 일어난 두 번째 소신공양이다. 지난 2010년 이명박 정부 때는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야권의 단일화와 4대강 반대를 외치며 문수 스님이 소신공양했다. 


한편, ‘박근혜는 내란 사범’이라 규정하고 즉각 구속을 촉구한 정원 스님의 뜻을 이어가기 위한 비상대책위원회가 스님이 활동한 자주평화통일실천연대를 중심으로 구성됐다. 


‘정원 큰스님 분신항거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는 8일 기자회견문을 통해 정원 스님이 평소 주장하던 ▲박근혜 대통령 즉시 구속 ▲한일 위안부 협정 즉각 폐기 ▲세월호 즉각 인양을 재차 촉구하며 스님의 뜻을 잊지 않고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또한, 경찰이 정원 스님이 태블릿 PC와 휴대전화를 가족에게 돌려주지 않고 있다며 스님의 물품을 가족에게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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