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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원’ 특집-2 : 종교기관 노동조합, 독일까 약일까
  • 특별보도팀 저스티스
  • 등록 2016-12-26 15:36:28
  • 수정 2016-12-30 11:3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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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원’ 특집 1부 보기 




앞서 저스티스 보도팀은 교회에 독이 될 수도 있는 가톨릭 고위공직자 모임에 대해 살펴봤다. 교회의 문제만 보면 무조건 축소하거나 은폐하려는 태도에 대한 의혹과 그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그렇다면 이번엔 교회가 왜 이토록 희망원 사태를 키웠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지난 9월 27일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이하 국감)에서 희망원 측 증인으로 출석한 김구노 원장신부는 희망원 사태에 대해 사과했고 향후 조사에서 의혹으로 제기된 내용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책임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국정감사에서 다뤄진 사건들은 김 신부가 희망원 원장신부로 부임하기 이전에 발생했다. 그러나 이날 김구노 신부가 희망원 책임자로 자리에 참석했다는 점에는 다양한 의미가 담겨있다. 


김구노 신부를 포함해 3명의 희망원 원장신부들은 올해 1월 29일 희망원에 부임했다. 이들은 과거 전임 희망원 원장신부들이 벌여놓은 문제를 수습하고, 희망원 운영이 복음적인 사회복지 시설이 되도록 파견된 ‘해결사’였다. 그러나 그 노력은 실패했고 8월부터 언론과 국가기관 등에서 희망원 문제를 집중적으로 질타했다. 사제들은 왜 해결사 역할을 하지 못했을까?


▲ 지난 9월 2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보건복지부 국정감사. 이날 대구시립희망원 사태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 최진


“희망원에 걸림돌이 되면 제거하겠다”


익명을 요구한 희망원 신자 직원은 새로 부임한 3명의 원장신부들이 전임 신부들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기보다,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요구하는 희망원 노조를 억압했다고 말했다. 새 원장신부들은 희망원 문제가 희망원 노조 때문에 발생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제보자는 “신부님들은 노조만 없어지면 희망원 사태가 해결될 것이라고 여겼다. 노조 때문에 희망원 문제가 사회적으로 커진 것으로 생각했다”며 “희망원의 각종 비리와 사건들은 직원보다 고위 간부들의 문제가 큰데, 신부님들이 간부들과 친하게 지내며 노조를 멀리하니 희망원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희망원에서 근무하기 전, 제보자는 가톨릭 운영 기관이니 노동자의 권리도 잘 지켜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상 자신이 경험한 가톨릭 사업장은 일반 사업장보다 노동자에 대한 법적인 보호와 권리가 더 열악하다고 말했다. 


그는 “한 신부님은 직원들 전체회의에서 ‘노조든 노조가 아니든 희망원 앞길에 걸림돌이 되는 사람은 제거하겠다’고 말해 무서웠던 적이 있다. 사실상 노조에 가입하면 안 된다는 경고였기 때문에 노조 가입은 생각도 못했다”라며 “희망원에서는 한 달에 한번 직원미사가 있는데, 최근 한 노조원이 국회에서 말한 장면을 찍은 영상을 미사에 참석한 직원들 앞에서 틀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는 “분위기가 이렇다보니 노조에 가입한 직원이라고 하면 만나기도 껄끄럽다. 만나서 이야기만 해도 눈치가 보인다”라며 “노조 직원에 대해 암암리에 험담을 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문제가 없어보이려면 거기에 함께 해야 한다. 어떻게 보면 교회가 운영하는 사업장에서 신부님들이 일진이고 노조가 왕따 학생처럼 된다”고 털어놨다.


“교회, 노조 와해하려다 희망원 사태 만들었다”


언론을 통해 드러난 희망원 주요 문제 가운데 하나는 생활인에 대한 관리소홀이다. 직원들의 퇴근시간 때문에 저녁 식사 후 복용해야 할 약을 미리 먹였다. 기본적인 응급처치만 했다면 살 수 있었던 상황도 죽음으로 이어졌다. 폐렴은 8시간 안에 약만 복용하면 생존확률이 100%이지만 희망원 사망원인 1위를 차지했다.


황성원 희망원노조 지부장은 이러한 생활인의 죽음에는 희망원 원장신부들이 깊게 연관돼 있다고 말했다. 노조를 와해할 목적으로 직원 근무시스템을 변경해 생활인들의 죽음을 방치했다는 것이다. 


▲ 지난 11월 3일 희망원 전국대책위는 대구 계산성당 앞에서 천주교 대구대교구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사진제공=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황 지부장은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의 근무형태나 임금협상을 중심으로 하는 단체다. 그런데 희망원은 이윤을 내는 기업이 아니기 때문에 임금협상이 큰 문제가 되진 않는다. 그래서 생활인의 인권과 생활을 보호하면서 직원들의 근무형태를 개선하는 것이 희망원 노조의 정체성이다. 그런데 이를 와해하기 위해 류 모 신부는 근무조건을 아예 직원들이 알아서 짜라고 해버렸다”고 설명했다.


그는 “회사가 노동자들에게 근무조건을 알아서 하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매우 이상적으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희망원에는 생활인이 살고 있다. 직원들 마음대로 근로를 정하면 생활인들은 어떻게 되겠는가”라며 “이러다보니 주말이나 야간에 천명이 넘는 생활인을 관리하고 보호해줄 직원이 없게 된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당직을 맡은 직원들도 환자들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모니터로 생활인들을 보는 것밖에 할 수 없다. 건물만 15개인데 어떻게 돌아보겠는가. 응급대기를 하는 간호사도 한명이다”라며 “이런 상황에서 빵에 의한 기도폐쇄 사망이나 폐렴에 의한 사망, 환자 투약시간 문제 등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황 지부장은 “노조는 이러한 근무형태로 생활인들의 생명과 인권이 위험해질 수 있다고 신부님들에게 수차례 말했다. 그런데 원장신부님들은 생활인들이 죽어나가도 우리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지 않았다”며 “신부님들이 노조를 와해하기 위해 위험한 근무형태를 방치하다가 사단이 난 것이다”고 정리했다.


2014년 10월 전체 120명의 직원들 가운데 60여명이 노조원으로 활동했던 희망원 노조는 2015년 2월 류 모 신부가 부임하고 직원들에 의한 근무 자율 시스템이 적용된 후 절반 이하로 줄었다. 현재는 16명의 노조원만이 남아있는 상태다. 


황 지부장은 “원장신부님들은 언론 앞에서 책임을 통감한다며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직원 전용 메신저에서는 희망원 사태의 진상규명을 외쳤던 사무국장의 발언 영상을 가지고 조롱했다”며 “가톨릭이 말로만 생활인들을 최우선으로 한다고 홍보할 것이 아니라, 진정 사람을 위해 고민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희망원 문제는 사람이 죽어가고 인권이 유린당하는 상황이 핵심이다”라며 “신부님들이 노조를 탄압해 언론에 드러나는 희망원 사태를 줄이고 은폐하려고 노력할 것이 아니라, 진짜 문제가 되는 희망원의 잘못에 집중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노조, 비리집단에게는 적이다”


한국천주교가 교회 운영기관에서 노조를 탄압한 경우는 앞서 인천·국제 성모병원 사태에서도 있었다. 2015년 3월 국제성모병원 의료급여 부당청구 사건이 언론을 통해 드러나자, 국제성모병원은 홍명옥 인천성모병원 노조지부장을 내부고발자로 지목하고 병원 노조 탄압을 본격화했다.


부당한 의료급여를 청구한 잘못을 반성하기 보다는 마녀사냥을 통해 본격적인 노조 죽이기에 나선 것이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사진 자료에 따르면 병원 측은 노조 사무실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하고 병원 복도 감시카메라는 핸드폰 문자까지 확인할 수 있는 최첨단 장비로 설치했다. 용역업체를 동원해 노조 활동을 막는 것은 물론, 병원 간부들을 동원해 노조원을 집단으로 괴롭혔다.


결국 홍명옥 지부장은 정신과 치료를 받을 정도로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다 쓰러져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그리고 결국 해고당했다. 노동자 주일을 지내며 노동자들의 노동권과 인권을 부르짖던 인천교구 정의구현사제단은 성모병원 문제 앞에서 만큼은 침묵했다. 그리고 그 침묵은 아직까지 깨지지 않았다.


임성무 전 대구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사무국장은 희망원 사태를 통해 교회가 노조를 적으로 여길 것이 아니라 교회 쇄신의 동반자로 삼아야 함을 깨달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교회의 잘못을 알려주고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를 알려준다는 것이다.


임 전 사무국장은 “인천성모병원도 그렇고 이번 희망원도 그렇지만 교회의 고름을 짜냈던 것은 교회 성직자가 아니라 노조다. 교회가 운영하는 시설이 가톨릭 정신에 부합하도록 임무를 부여받고 파견된 성직자는 오히려 비리와 연루가 됐다”라며 “복음정신을 사회로 구현하고자 할 때 교회는 과연 이런 상황에서 누구의 도움을 더 많이 받은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또한 “병원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지 말자는 것이 노조의 주장이고 교회는 이를 침묵하고 있다. 가난한 사람의 밥그릇을 훔쳐 돈을 벌지 말자는 것이 노조의 주장이고 이를 탄압한 것이 교회다”라며 “과연 교회와 노조 중에 누가 더 복음정신에 가까운가”라고 물었다. 


▲ 지난 22일, 시민대책위와 전국보건의료노조는 인천교구 신청사 앞에서 ‘보건의료노조 집중행동의 날’ 집회를 열고 인천‧국제성모병원 사태해결을 촉구했다. ⓒ 최진


이어 “분명한 것은 노조는 비리를 저지르는 집단에게는 해가 되지만, 투명한 운영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존재라는 것이다. 사회에서도 각종 비리들이 노조에 의해서 공개되고 개선된다”며 “교회가 말로만 하는 쇄신이 아니라 복음에 따른 진짜 쇄신을 하고 싶다면 노조를 동반자로 여겨야 한다. 노조는 교회에 반드시 필요한 존재다”고 강조했다.


그는 교회 시설의 고름을 드러내고 짜낼 수 있도록 용기를 냈던 희망원 노조에게 교회가 상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희망원 노조가 아니었으면 교회는 가난한 밥그릇을 뺏는 행위를 계속 했을 것이고, 그들의 죽음을 방치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임 전 사무국장은 “가톨릭이란 이름이 언론에 오르기까지는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의 고통이 숨어있다. 대구대교구장 조환길 대주교가 희망원 자금횡령 사실을 정말 몰랐다고 한다면 숨겨진 고름을 알려주고 치료하도록 소리쳐 준 희망원 노조에게 감사패를 주며 고마워해야 한다”며 “희망원 원장신부들과 대구대교구, 그리고 한국 가톨릭교회가 이러한 사람들의 노고에 감사하며 희망원 문제를 통해 참 종교다운 모습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교회, 노조를 동반자 삼아야


가톨릭교회 운영시설 꼭대기에는 성직자가 임명된다. 이들은 교회 운영기관이 일반 사업기관과 달리 영리추구보다는 복음정신에 입각한 운영을 목적으로 파견된다. 그리고 수많은 교회 운영 시설에서 이를 위해 많은 성직자들이 노력하고 있다. 작게는 운영시설의 복음적 관리에서 크게는 사회 복음화에 양분이 된다.


그러나 대다수의 교회 운영 시설은 최저임금과 적정 근무시간 준수, 4대 보험 가입의무 등 사회에서 요구하는 기본적인 노동권을 못 지키고 있다. 교회 노동자는 봉사자 개념과 뒤섞이게 되고, ‘세상의 기준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는 논리로 노동자의 권리를 침해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교회는 노조의 결성을 두려워하게 된다. 


해고노동자들을 위해 거리로 나서는 사제들은 많지만, 해고를 당하지 않기 위해 연봉을 줄여가며 성당 사무실을 지키고 있는 본당 사무장의 고통에는 큰 대책이 없다. 노조가 요구하는 정당한 ‘노동자의 권리’는 ‘세상의 눈’으로 전락해 교회 운영기관에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몰아간다. 그러다보니 노조 결성은 자연스럽게 교회의 뜻에 어긋나는 행동이 된다.


뿐만 아니라, 신학을 공부한 신부들에게 갑자기 사회복지시설의 센터장을 맡기는 것도 재고해봐야 할 부분이다. 실무경험이 거의 없는 사제가 사제서품 이후 속전속결로 관련 과목을 이수하고 학위를 받아 시설의 모든 결정을 하는 시설장이 된다. 실무를 모르는 사제는 운영 간부들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 시설 운영의 복음화를 점검하기 보다는 시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배우는 것도 벅차다. 


그러다보니 사제는 서류에 의존한 관료적인 자세가 되어간다. 이러한 문제는 희망원 사태를 통해 극명하게 드러난다. 세상 사람들이 희망원 사태에 경악을 금치 못했지만, 정작 문제의 당사자 격인 원장신부들은 성명을 통해 언론을 탓하기 바빴다. 희망원의 복음적 운영에 누구보다 책임이 큰 원장신부들이 의혹의 중심에서 범죄를 두둔하는 자세가 됐다.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는 노조, 이러한 노조를 억압하는 교회, 그리고 그 과정에서 관료주의적인 형태가 돼가는 사제들을 오늘날 우리는 무겁게 성찰해봐야 한다. 교회가 복음적 시설 운영의 동반자로 삼아야 할 대상은 사무실 서류와 고위 공직자가 아니라 현장에서 직접 문제를 체험하고 개선할 방향을 고민하는 노조, 노동자의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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