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계 종교단체가 공동으로 시국선언을 발표하며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했다. 박 대통령이 천주교·개신교 원로들과 만남을 가진지 하루 만에 시국선언이 나오면서 종교계의 협조를 구하려던 행보가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왔다는 평가가 나왔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회사목국 빈민사목위원회, 대한성공회 정의평화사제단·나눔의집협의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인권센터 등 7개 종교단체는 8일 ‘현장과 함께하는 그리스도교 공동 시국선언문’을 통해 현 정부를 비판하고 친정권 성향의 교회 지도자들에게 조언자 역할을 그만두라고 요청했다.
먼저 종교단체들은 그간 ‘비정상의 정상화’를 외친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 정권이 오히려 국가를 비정상적으로 운영한 범인이며 재벌과 언론이 국기문란의 공범이라고 평가했다. 정권이 선전했던 ‘통일 대박’은 쪽박이 났고, 언론과 교육 시스템은 공공성을 잃었으며, 불공정 경쟁이 만연한 사회가 됐다고 지적했다.
또한 “현 정권과 부역자들의 무능으로 가족이 수장된 세월호참사 유가족들의 슬픔과 분노가 계속되고 있고, 장기투쟁 사업장 노동자들의 고통이 쌓이고 있다”며 “그 사이에 국가부채와 가계부채는 끔찍할 정도로 늘었고, 국가 신뢰도와 언론 자유 그리고 사회적 소수자들의 인권은 심각할 정도로 낮아졌다”고 규탄했다.
이들은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부터 ‘헬조선, 각자도생’의 시대에 동조하고 있었다. 우리는 예수의 물음과 정신 그리고 삶을 따라가는 척만 하고 있었음을 반성하고 회개 한다”며 “헬조선, 각자도생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불공정 무한경쟁체제와 작동방식의 변화를 위해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싸워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또한 “미친 운전사와 같은 그들에게 한순간이라도 더 국가를 맡길 수 없다”며, 박근혜·새누리당 정권 퇴진과 법적인 처벌, 현 정권에 동조하고 침묵한 재벌과 언론의 민주화 등을 행동강령으로 제시했다. 야당에는 단순한 정권교체가 아닌, 선거제도와 정치 구조 개혁에 앞장서 줄 것을 요청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이 시대의 요청에 연대하고 민중과 함께 행동해야 한다며, “교회 지도자들은 그럴듯한 곳에서 권력자들을 만나 조언자로 행세하는 광대 짓을 멈추라”고 지적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는 작금의 사태가 골방의 기도로 해결될 문제가 아님을 인식하자”며 “우리의 기도가 ‘정의에 입각한 평등과 평화’를 편드시는 주님과 일치되도록 행동하는 기도를 하자”고 호소했다.
앞서 박 대통령은 7일 오전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을 청와대로 초청해 의견을 나눈 데 이어 오후에는 개신교 김장환·김삼환 목사와 간담회를 했다.
비상시국이 아니더라도 대통령이 종교계 원로와 만나 조언을 구하는 일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종교계의 정권비판 시국선언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청와대가 보수 성향의 종교인을 초청해 ‘종교계 민심 청취’를 하겠다는 것은 취지부터가 잘못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염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이 무사히 마무리된 것에 대해 소회를 밝히는 기자회견 자리에서 ‘세월호 문제로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자’, ‘유가족들도 어느 정도 양보해야 한다’는 등의 발언을 해 논란이 됐던 바 있다. 교황이 4박 5일 내내 세월호 문제를 챙긴 것과는 사뭇 다른 태도였다.
과거 염 추기경은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국가정보원 대선개입을 비판하며 ‘대통령 사퇴촉구 미사’를 진행할 때도 “가톨릭교회 교리서에서는 사제가 직접 정치적이고 사회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정치구조나 사회생활 조직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사목자가 할 일이 아니다”라며 현 정권을 옹호하는 취지의 발언을 해 보수 언론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개신교 김삼환 목사는 세월호참사 당시 “하느님이 공연히 세월호를 침몰시킨 게 아니다. 하나님께서 꽃다운 애들을 침몰시키면서 국민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말해 ‘세월호 망언 목사’로 불렸으며, 김장환 목사는 독재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에 부역한 대표적인 목사로 평가되고 있다.
그리스도교계 종교단체들은 민중총궐기가 열리는 12일 오후 1시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현장과 함께 하는 그리스도교 공동 시국 기도회’를 연 뒤 ‘박근혜 퇴진 촉구 시민 대행진’에 참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