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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태양은 마주 볼 수 없다"
  • 전순란
  • 등록 2015-05-14 10:09:25
  • 수정 2015-05-14 10: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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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13일 수요일, 맑음


엽이가 함양에 내려가 있단다. 그동안 아팠던 막내숙모가 세상을 떠나 상가에 가 있단다. 광주 요안나에게 전화를 해서 그니 작은오빠의 근황을 물었다. 일주일 정도밖에 시간이 안 남았다고, 옆방 환자도 일주일을 선고받고서 그날 밤으로 운명했다고, “오빠가 너무 고통스럽다면서 차라리 죽게 해 달라는데 그게 가장 힘들어요. ‘차라리 죽는 게 나을까?’ ‘그래도 조금이라도 더 보았으면...' 하는 마음이 엇갈려요.”라고 호소한다.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이 죽어가는데도 아무런 손을 쓰지 못하고 지켜만 봐야 하는 데서, 죽은 후 시체를 두고 통곡해야 하는 데서 인간은 유한함을 절감한다.


죽음은 서럽다. 더구나 젊은 배우자와 어린 자녀들을 두고 가는 사람들의 죽음은 더 서럽다. 고인이 남겨 두고 가는 사람들은 평생을 두고 그리움을 견디며 살아가야 하고 더구나 생존을 위해 얼마나 몸부림쳐야 하는가! 더구나 어린 자식이면 그를 묻은 무덤이나 납골당이야 집에서 멀지만 가슴에 쓰인 무덤은 여생을 두고 부모의 가슴을 짓누를 것이다.


어제 쓰러진 북나무 자리를 보스코가 능소화 가지로 가려놓았다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구순의 아버님 어머님이 도우미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살아오셨는데 어머님이 용변을 못 가리자 도우미가 더는 못 하겠다 하고, 평생 대접만 받아온 아버님은 어머님을 보살펴드릴 능력도 없어 두 분이 양로원행을 결심하셨단다.


내가 아는 곳으로 몇 군데 전화를 해서 알아봤더니만, 기왕에 양로원에 들어와 계시던 분이라면 그 처지에서도 계속해서 모시지만 이미 치매 상태에 계시는 분이라면 못 받아들인다면서 요양병원으로 모시라는 답변이었다.


실버타운에서 양로원으로, 그 다음엔 요양병원으로 내려갈수록 사람다운 대접을 받기 힘드나 보다. 함양의 어느 요양병원은 아예 가족과 외부인에게는 폐쇄된 공간을 만들어 놓고, 음식마저도 믹서기에 한꺼번에 갈아서 컵으로 들려주면서 빨대로 빨아 잡숫게 해 드리더란다. 그 점을 불평하는 딸이나 며느리가 그렇다고 집에서 손수 모실 생각은 아예 없으니 치매 들어서도 목숨을 부지한다는 비애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우리 외할머니가 106세에 체중 30kg으로 가죽만 남아 링거를 꽂은 채로 죽음 저편을 응시하시던 텅 빈 시선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병들고 늙어서 인간이 죽는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죽을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큰 저주인지!


그리고 이것은 머지않아 우리 부부에게 다가올 앞날이다. 엄마가 계시는 실버타운의 ‘외로움’과 ‘단절’과 ‘무기력’을 두 눈으로 보아왔으므로 “나는 보스코를 거기 안 보내겠다.”고 단단히 마음먹었지만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 마지막을 떠넘길 생각은 더욱 없다. 건강이 허락하지 않으면 지리산 휴천재를 접고 우이동으로 오겠지. 남의 손길이 필요한 처지가 되면 실버타운으로 가겠지. 그 다음은?


끝까지 이 노인들처럼 걸어가고 싶고...


어제 뵈온 문동환 박사님 부부의 모습이 참 부러웠다


“여보, 스코트 니어링처럼, 당신에게 주어진 인생의 짐을 내려놓을 시간이 되면 스스로 곡기를 끊고 죽음을 맞을 수 있어?” “있어!” “그게 자살은 아닐까?” “죽음을 맞는 것과 죽음을 단행하는 건 다르겠지.그리고 헬렌 니어링 처럼 내가 그가 그리 할 수 있도록 바라만 볼 자신이 있을까? ”


“과연 당신이 밥을 안 먹고 굶을 수 있을가? 하루 다섯 끼를 먹고서도 못 견디는 사람이?” 여기서 둘은 깔깔 웃고 말았다. 철학교수이자 ‘호스피스’ 연수회에 “죽음의 철학적 의미“를 강연하러 다니는 그에게 “당신, 배고픔에 딱 걸렸어!”


“죽음과 태양은 마주 볼 수 없다.”는 철학적 교훈이 있으니 죽음은 그때 가서 마중하기로 하자. 태어남과 죽음만은 하느님이 우리에게 묻지 않으시고 아예 당신께서 알아서 처리하시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빵기와 빵고가 우리를 안심시키느라 카톡을 보내고 사진도 띄워서 네팔의 참혹한 상황을 가려준다. 오후에는 치과에 다녀오고 저녁에는 내일 손님맞이를 준비하느라 한참이나 일했더니 눈꺼풀이 천근이다. 지금 할 일은 잠자는 것! 잠 또한 한 조각 죽음이니 포근히 자고서 내일 눈을 떠야지. 죽음으로 잠들더라도 하느님은 밝고 아름다운 ‘영원’에서 눈뜨게 장만해 놓으셨으리라는 믿음 또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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