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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이 편지 : 아빠와 저는 이렇게 79일을 살아 냈습니다.
  • 이아름
  • 등록 2015-05-13 10:3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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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12일 화요일 79일차.


세종시 소정면 대곡 삼거리에서 일정을 마무리 했습니다.

이제는 표지판에 수원이 보입니다.

전라도와 충청도를 지나 이제는 천안이 코 앞에 있습니다.


아빠와 함께 기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많이 아플 줄 알았는데 아프기는 커녕 철 없는 누나는 조금 더 단단해 지고 

가끔은 행복 하기도 합니다. 아빠와 저는 이렇게 79일을 살아 냈습니다.


79일을 이렇게 사는 동안 승현이 없이도 사는 법을 조금은 알았고, 

여전히 승현이 없이는 안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26년을 살면서 누군가를 이렇게 사무치게 그리워 하고, 보고 싶어 한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우리 승현이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이제는 고3이 됐을 우리 승현이.

어느 대학을 가야 할지, 군대는 언제 갈지,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우리 승현이는 생각이 아주 많았을 겁니다.


그런 승현이를 보면서 누나는 승현이에게 뭘 해줘야 할지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었을 겁니다.


승현이게 주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받고 싶은 것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승현이의 듬직하고 따뜻한 그 품이 가장 그립습니다.

무뚝뚝한 우리 동현이는 한번 안아 달라고 하면 절대로 안아 주지 않았지만

우리 승현이는 그런 누나를 안아 주고는 했습니다.


나중에 승현이에게 물어 보니 자기도 그런 거 정말 싫어 하는데 

나가 안아 달라고 하니 그냥 안아 주는 거라고 말했었습니다.

살갑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살가운 동생 이었습니다.

챙겨주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누나를 챙겨주는 듬직한 동생 이었습니다.


항상 자기 보다 모자라 보이는 누나를 걱정하는 철이 일찍 든 막내였습니다.

철 들지 않은 누나 때문인지 저는 오빠 같은 두 동생들과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지나가는 승현이 또래의 아이들을 보면 승현이가 너무나 사무치게 그리워서 미칠 것 같습니다.

그렇게 그리워 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세상에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을 저주 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모든 것 들을 저주 하다가 그게 너무 힘들어서 다시 또 승현이를 그리워 합니다.


그래도 제가 사는 것은, 제가 정신병자 라는 것을 인정하고 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오늘도 미치도록 사무치게 그립고, 보고 싶고, 사랑하는 우리 승현이.


꿈에 나와 달라고 비는 것도 이제는 힘들어서 그냥 나오지 말라고 

속 좁은 누나는 혼자 또 토라집니다.


그래도 친구들과 놀다가 또 누나가 보고 싶을 때, 우리 승현이가 저를 보러 와 줄 겁니다.



덧붙이는 글

이아름 : 세월호 희생자 승현군의 누나이자, 이호진씨의 딸이다. 아름양은 지난 2월 23일부터 진도 팽목항에서 광화문까지 삼보일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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