雲 / 운 / 구름. 습기. 높음
구름은 저 멀리 있는 듯 했지만 높게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다. 심지어 비행기를 타는 날이면 늘 구름은 아래에 있었다. 하기는 미륵산에만 올라가도 구름은 발아래에서 흰 몸을 뒹굴려 검게 만들기도 했다. 구름은 참 개구졌지만 안개를 만나는 날이 오면 사색가가 되기도 했다.
운무雲霧
미륵산에서 바라본 세상은 짙은 운무였다
건너편 산등성은 길게 누운 채 일어서질 않았고
숲은 안개를 핑계로 자꾸만 뒤로 물러섰다
안개는 물방울이 되어 발등으로 떨어졌다
편백나무 숲은 짙은 향만큼이나 그리움으로 가득했다
숲 머리 위로는 낮은 구름이 내렸고
숲 옆구리로는 안개가 끊임없이 퍼졌다
발밑에 떨어진 물방울은 그리움을 품은 채 땅속으로 들어갔다
숲은 고요했다
잿빛 구름은 안개를 만들었고 안개는 구름을 떠받쳤다
숲은 홀로 적막했다
미륵산 운무는 무소의 뿔처럼 굳고 단단했다
그리움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짙은 운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