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도시설계전문가 정석 교수 인터뷰 : 도시는 연인, 도시설계는 사랑
  • 김근수
  • 등록 2016-02-10 12:09:20
  • 수정 2016-02-10 12:37:47

기사수정




- (김근수 편집장) 오늘은 도시설계전문가로 유명하신 정석 교수님을 만나고 있습니다. 교수님은 평생 도시와 함께 사신 것 같은데 도시는 교수님에게 어떤 존재입니까? 


▶ (정석 교수) 저에게 도시는 저 자신과 가족과 이웃들의 ‘삶터’입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여 인간에게 맡기셨듯이, 도시도 우리가 잘 돌보고 지키고 가꿔야 합니다. 그리고 미래 세대까지 잘 살 수 있도록 지속가능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다 먹어버리면 미래에 우리 자식들이 먹을 게 없겠지요. 미래세대들이 먹을 걸 남겨 놓은 것, 그게 ‘지속가능성’이고 요즘 세계 모든 도시들이 고민하고 있는 숙제입니다.  


- 북촌한옥마을을 계획하셨는데, 거기서 북촌을 어떻게 가꾸고 싶으셨습니까? 


▶ 당시에 북촌에 있던 많은 한옥은 재개발로 전부 철거될지 모를 상황이었습니다. 1930년대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북촌 한옥들이 1990년대 사람들에게는 불편했던 것이죠. 주민들은 한옥을 헐고 다가구·다세대 주택을 짓게 해달라는 의견과 한옥에서 잘 살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의견으로 나뉘었습니다. 결국, 주민들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한옥 등록제’를 서울시에 제안했습니다. 한옥을 유지하길 원한다면 서울시가 수리비 일부를 지원하는 것이 ‘한옥 등록제’의 핵심입니다. 


결과적으로 많은 주민들이 한옥 등록을 신청했고 한옥마을은 지켜졌습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전면 철거를 앞세운 재개발이 대세였는데, 북촌한옥마을은 아주 예외적인 실험이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마을 만들기’라고 부릅니다. 집과 마을, 도시를 전부 부수고 새로 짓는 대신 집도 고치고 길도 고치고 마을도 고치는 ‘마을 만들기’ 운동이 북촌에서 시작되어 여러 지역으로 확산되어 갔습니다.  


- 교수님의 고향인 전주에 있는 한옥마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북촌한옥마을과 비슷한 시기에 전주시도 한옥을 보존하는 정책을 펼쳤습니다. 오래된 한옥을 고쳐 살리는 일은 잘 진행됐지만, 지금은 너무 관광지화 되어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가라앉고 쳐지는 ‘울증’도 문제지만 너무 들뜨는 ‘조증’도 문제라는 것입니다. 


전주의 경우 관광에 너무 들떠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느 장소가 뜨면 사람들이 몰려옵니다. 전주 한옥마을에 1년에 500만 명이 왔다고 해서 500만 명의 관광객을 위한 편의시설을 만들어야 할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50만 명이든 10만 명이든, 아니 몇 만 명이든 한옥마을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찾아올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극단적인 관광지화는 지양해야 합니다. 발 디딜 틈 없는 관광지가 되면 주민들의 삶도 고달파지고 한옥을 좋아해서 찾아오는 사람들도 힘들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북촌마을 계획을 세울 때 북촌이 ‘주거지’라는 것을 중요하게 강조했고, 관광은 그다음이었습니다.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이 행복해야 그곳을 보러오는 사람도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지금 북촌이나 전주는 관광객들이 너무 많아서 걱정입니다. 


- 교수님의 베스트셀러인 「나는 튀는 도시보다 참한 도시가 좋다」가 화제를 불러일으켰는데 이 책의 주요 내용을 독자들에게 소개 좀 해주십시오. 


▶ 네. 이 책에서 저는 ‘도시는 우리들 삶을 품어주는 귀한 삶터고 생명체 같은 것’이라는 얘길 하고 싶었습니다. 이 책을 쓸 무렵 우리나라에는 ‘튀는 도시’가 최고라는 생각들이 팽배했습니다. 겉멋과 화려함, 명품으로 치장된 도시들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도시들을 보면 거의 다 수수하게 예쁜 도시들입니다. 자연이 아름답고, 역사도 오래됐기 때문에 그 자체로도 그윽한 매력이 있는 것이죠. 그런 것을 다 가치가 없는 것으로 여겨 부수고 철거하는 상황이 만연했습니다. 서양의 도시를 흉내 내는 것이 좋은 것이라는 인식과 문화가 지배적이었습니다. 


좋은 예가 ‘두바이’입니다. 우리나라 시장, 군수 같은 단체장들이 해외출장을 갈 땐 다들 두바이를 찾아가곤 했습니다. 성공한 세계도시 두바이를 배우고 따라가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저는 그걸 보고 아주 기겁을 했습니다. 한국과 두바이는 여러 면에서 전혀 다른 도시입니다. 두바이는 사막 한가운데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곳에 세운 도시라서 다른 도시에 없는 뭔가 특별한 것을 해야만 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을 짓거나, 사막에 스키장을 만들거나, 엄청난 매립을 해서 달에서도 보일만큼 큰 섬을 만들거나 해야 합니다. 두바이는 자연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거의 없어서 그런 전략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도시들은 자연과 역사의 혜택으로 그렇게 억지를 부리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답고 조화로울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부수고 두바이를 배우자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죠. 마치 자신의 소중한 가치를 모르고 남을 따라 하다 그 가치마저 잃어버린 어리석은 사람 꼴이지요.



어떤 사람들은 살벌한 경쟁시대에 튀지 않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우려를 합니다. 그러나 저는 ‘사람이든 도시든 우선은 참해야 하고 그 다음에 튀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참하다는 것은 기본을 튼튼히 갖추는 것으로, 사람으로 말하면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은 진실 된 사람입니다. 화려하게 치장하지 않아도 그 사람만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우리는 참하다고 말합니다. 저는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들이 얼마나 참하게 아름다운지, 오래된 우리 마을들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참한 도시 책을 쓴 또 하나 이유가 있습니다. 도시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시장도, 공무원도, 전문가도 아닙니다. 오직 시민들만이 도시를 바꿀 수 있습니다. 지자체장들도 선거라는 한계가 있고 전문가와 공무원들도 도시를 참하게 바꾸는 일을 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기업과 자본이 있기 때문입니다. 기업과 자본은 사람들이 살기 좋은 도시보다는 ‘팔기 좋은’ 도시, ‘이익이 되는’ 도시를 만들고 싶어 합니다. 시민들이 선거를 통해 좋은 단체장을 뽑는다 해도 결국 그들은 기업과 자본의 힘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 책에서 가장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좋은 도시를 원한다면 그 도시의 주인 노릇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인 노릇은 투표로 단체장을 뽑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우리 마을의 문제점을 찾아 고치고, 민원을 올리고, 전화하고, 재개발을 막고, 자신이 원하는 동네와 도시에 대해 의견을 표현해야 합니다. 


북촌 주민의 절반은 한옥을 철거하고 싶어 했고 절반은 한옥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주민들은 서로 생각이 다릅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자신들의 생각을 드러내야 합니다. 소통과 합의에 이르면 문제를 해결하고, 마찰이나 엇갈린 생각이 나오면 대안을 찾거나 대화를 더 해나가야 합니다. 그래야 마을과 도시가 나아질 수 있고 세상이 좋아질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내가 우리 마을의 주인인 ‘주민’이 되고, 우리 도시의 주인인 ‘시민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세상이 내가 바라는 대로 바뀔 수 있습니다. 그래서 책을 썼고 이러한 내용을 담았습니다. 


- 시민의 참여의식을 격려하고 도시의 기본을 지키자는 의도로 책을 쓰셨군요. 참한 도시라는 아름다운 문학적 표현을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설명 부탁드리겠습니다. 도시의 기본을 지키자고 말씀하셨는데 어떤 것을 지켜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십시오. 


▶ ‘도시설계’의 숙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하나는 ‘도시의 기본을 튼튼히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도시만의 매력과 정체성을 살리는 것’입니다. 재해나 전쟁, 테러와 범죄·사고로부터 사람을 지키는 것이 도시의 기본에 해당합니다. 서울 광화문이나 강남이 종종 물에 잠기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재해로부터 사람들을 지켜주는 도시의 기본이 부족했다는 걸 드러낸 경우입니다. 우리나라는 범죄나 치안으로부터는 비교적 안전한 편이지만, 여성과 아이들을 노리는 범죄율은 높은 편입니다. 이것 역시 도시의 기본에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가장 심각한 것은 교통사고인데, 보행자 교통사고는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에 최고 수준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자동차를 규제해야 합니다. 자동차가 골목에서 빨리 못 달리게 하고 대중교통을 편리하게 해야 합니다. 걷는 것과 자전거를 이용하는 것이 차량을 이용하는 것보다 더 편하고 유리하도록 우선적으로 배려하고 보호해주어야 합니다. 우리 도시들은 차량에 대해서는 많은 편의를 제공하지만, 대중교통과 걷는 시민들은 홀대를 받는 실정입니다. 당사자들도 걸을 때 겪는 불편이나 불이익에 분노하기보다 관대하게 받아들입니다. 그러니 이런 불평등이 개선되지 않고 지속됩니다. 보행자 사고가 많은 것도 결국 도시운영에서 사람보다는 차를 더 배려하기 때문에 빚어진 일입니다. 


교통사고 피해자의 대부분은 노인들과 아이들인데, 특히 동네 골목길에서 많은 사고가 일어납니다. 선진국들은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길을 뜯어고칩니다. 차가 과속을 하지 못하게 하고 사고가 나면 모두 운전자 과실로 책임이 돌아갑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자동차 위주로 길이 만들어집니다. 동네 길들을 살펴보세요. 골목길이나 아파트단지 안에서조차 차들이 빠르게 달리고 있습니다. 마을 대부분 도로 공간은 보행자가 아니라 주차공간으로 내주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것들이 우리나라 도시들의 기본이 많이 부실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러나 도시의 기본을 튼튼히 하는 일은 눈에 띄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많은 단체장들은 가시적으로 보일만 한 일, 튀는 건축물 세우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습니다.  


- 도시에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면, 교회는 평신도가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느껴지는 말씀입니다. 까다로운 질문일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참한 도시와 튀는 도시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곳이 있으신가요? 혹시 튀는 도시를 말씀하기 어려우시면 참한 도시만 소개를 부탁합니다. 


▶ 참한 도시와 튀는 도시를 가르기보다는 한 도시 안에도 다양한 지역이 있다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서울 안에서도 참한 지역과 튀는 지역이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전주 같은 경우도 구시가지는 참한 도시라고 생각합니다. 한옥마을뿐만 아니라 노송동, 고사동 등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튀는 도시들은 대부분 신시가지입니다. 그런데 구시가지의 쇠락과 신시가지의 개발은 서로 맞물려 있습니다. 새로운 시가지가 만들어지면 기존 도시의 중산층들이 신시가지로 이동하게 되고 구시가지는 가난한 사람들과 노인만 남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래된 구시가지의 쇠락을 막기 위해서는 신시가지의 개발을 자제하고 구시가지를 잘 고쳐 쓸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기업과 자본의 입장에서는 새로 만든 신시가지로 중산층을 끌어내야 원하는 개발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신시가지 개발을 적극적으로 하려고 합니다. 


건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참한 건물보다 튀는 건물들이 훨씬 많아지고 있습니다. 건축에 있어서 미적인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건물을 조형물이나 조각품과 같은 것으로 볼 수는 없지요. 그런데 지금 대부분의 공공청사는 마치 조각품처럼 겉을 화려하게 장식합니다. 건물로 본다면 시청사, 도청사 등이 대표적인 튀는 건물들입니다. 설계경기를 거쳐 설계안을 결정하다보니 뽑히기 위해서 치장에 집중한 튀는 건물들이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 여러 도시에 보면 공공건물은 튀는데 시민들과 노숙자들의 삶은 계속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재정을 건물에 투자해야 하는지 가난한 사람한테 투자해야 하는지 정치인들이 고민이 참 많을 것 같습니다. 다른 질문입니다만, 유럽과 비교하면 한국은 사람들이 모이는 광장이 적은데 이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보십니까?


▶ 서양에 ‘광장’이 있다면 동양에는 ‘길’이 있다고 말합니다. 서양에도 길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동양에서의 길은 생활의 중요한 장소입니다. 동양이라고 해도 한·중·일 문화와 도시설계가 다르므로 우리나라만의 특색이 따로 있습니다. 우리나라 도시들은 미로 같은 길도 있고 종로나 광화문과 같이 정치적이고 상징적인 큰 길도 있습니다. 궁궐 앞 남쪽을 향한 큰길(지금의 세종로)은 권위를 상징하는 길이었고 그 주변으로 정부 청사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종로는 상업 거리여서 주변에 가게들이 늘어서 있었습니다. 그 뒤로 피마길이 있는데, 말을 피하는 길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종로거리를 다니는 마차와 양반들을 피해 다니던 서민들의 거리였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자동차 길과 보행자 길인 셈입니다. 우리 민족의 삶은 대게 집안과 골목에서 이뤄졌습니다. ‘응답하라 1988’에서 보듯이 골목은 거의 사적, 공적 생활이 같이 섞이는 곳이었지요. 내 집 물건들을 내놓기도 하고 밥을 먹기도 했습니다. 서양 도시의 광장에 시민들의 공적 삶이 담겼다면 우리 도시에서는 이런 길들이 그런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그렇게 요긴하게 쓰이던 골목길들을 지금은 자동차한테 다 내어주고 만 게 참 안타깝습니다. 


- 독일의 프라이부르크와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그와 같이 환경을 강조한 도시가 알려진 곳이 많은데 한국에도 그런 곳이 있나요? 


▶ 수원시가 과거 행궁동을 한 달간 자동차 없는 도시로 지정하고 실험했습니다. 생태도시를 지향해 한 달 동안 화석연료를 쓰지 않고 도시를 운영했던 아주 이례적 실험이었지요. 우리나라 여러 도시에서도 지금 생태도시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전주시도 생태 도시를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고, 서울시도 시민들의 에너지절약 운동을 통해 ‘원전 하나 줄이기’를 적극 추진하고 있습니다. 


다행스럽게 최근 우리나라 도시들은 튀는 도시에서 환경도시와 문화도시로, 생태도시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도시행정의 정책 방향이 바뀌어도 건설이나 토목으로 먹고사는 기업과 자본이 여전히 힘이 세기 때문에 4대강 사업처럼 과거와 같은 도시개발을 끊임없이 요구할 것입니다. 결국, 자치단체장이나 공무원들은 선거를 의식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시민들이 좋은 정책에 대해 공감과 지지의 뜻을 분명하게 보내야 합니다. 만약 튀는 건물을 짓는데 시민들이 열광한다면 튀는 건물들이 더욱 늘어갈 것입니다. 도시의 진로는 정확히 시민들에게 달려있습니다. 정말 참한 도시는 어디에 따로 있지 않습니다. 참한 시민들이 사는 곳, 그곳이 바로 참한 도시입니다.  


- 도시와 사람에 관해서 질문해 보고 싶습니다. 2007년 남미 5차 주교회의 아파르시다 문헌에서는 ‘하느님은 도시에 사신다’는 구절이 새로 나왔습니다. 서울시로만 좁혀보면 서울시에 사는 수많은 사람 중에서 특히 가난한 사람, 어려운 사람을 보면서 도시에서 신앙생활을 하도록 종교단체가 배려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 저는 신앙생활은 장소와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시골에서도 도시에서도, 전원과 자연 속에서도, 그리고 아주 현대화된 곳에서도 신앙생활을 할 수 있고 하느님의 섭리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저는 ‘다양성’이라고 봅니다. 시골이 있고 도시가 있고, 도시 안에서도 부자동네 가난한 동네, 넓은 길과 좁은 길 등 이런 다양한 것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것이 도시의 본성입니다. 시골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시골의 공동체성은 때론 불편함을 수반했기 때문에, 초기 도시화 과정은 사람들에게 삶의 자유를 얻는 것으로 다가왔습니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편리한 삶으로요. 그러나 지금의 도시화는 사람의 안전과 편안한 삶을 저해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고 생각합니다. 고독사로 죽는 사람이 (한 해) 1,000명이 넘고, 이웃에게는 무관심으로 일관합니다. 신앙인이라면 도시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현상을 성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느님이 인간에게 세상을 잘 돌보라고 하신 것처럼 시민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를 잘 돌보아야 합니다. 나와 내 가족, 우리 집만 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집 안에서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집 밖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 공간을 내 것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길과 거리, 도시환경을 돌보아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바로 내 삶의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길거리에서 쓰러져 죽을 수도 있는데 내 집만을 생각한다면 안 될 것입니다. 도시는 ‘관계로 연결된 생태계’입니다. 모래알처럼 살지 말고 공동체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래야 다함께 안전하게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도시에서 내가 시민의 역할을 다하는 것은 신앙인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 성서에 보면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있지 않습니까? 비유가 일어난 장소는 도시로 가는 시골이었는데 우리 시대에는 시골보다 도시에서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가 많이 나와야겠습니다. 한 나라의 품위를 알아보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나라가 가난한 사람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달려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서울시 빈민촌에 서울시장이나 서울 가톨릭교회 교구장님이 거주하는 것은 어떨까요? 


▶ 저는 그런 행동이 비록 이벤트라고 할지라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생태계를 보더라도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은 가장 하위에 달려있습니다. 식물이 사라지면 식물을 먹는 초식동물들이 못 살고, 그러면 상위 동물들도 결국은 멸종합니다. 


도시설계의 관점에서도 달동네라고 불리는 빈민촌을 중요하게 봅니다. 사회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달동네라는 곳에서 함께 모여 살았는데 재개발로 인해 많은 지역이 아파트로 변모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이 갈 곳을 잃었습니다. 결국, 이 사람들은 그나마 남아있는 오래된 동네의 반지하로 들어가 외롭고 절연된 삶을 살게 됩니다. 달동네에서는 가난한 이웃들끼리 서로 알고 소통하며 살았지만, 송파구 반지하 방은 주변으로부터 고립된 곳이다 보니 결국 세 모녀는 죽음을 선택하는 지경에 이릅니다. 따라서 가난한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면서 살 수 있는 곳을 남겨두어야 합니다. 그 안에서 사람들이 최소한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돌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재개발의 논리는 내쫓고 부수고 새로 짓는 것에만 열중하고 있습니다. 


- 종교건물들, 성당이나 수도원이나 종교단체에서 소유한 건물들이 보통 일반 주민이 사는 건물보다 훨씬 크고 아름답고 멋진 건물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가난한 사람들이 희망을 느낄지 소외감을 느낄지 염려가 됩니다. 다른 질문을 하고 싶은데요, 둘째 아드님 정도운 작가께서 활발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데 소개 좀 부탁합니다. 


▶ 둘째 아이가 자폐 성향, 발달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날벼락을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하느님도 많이 원망했습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어떻게든 우리 아이가 씻은 듯이 낫기를 기대했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야 우리 아이의 자폐가 씻은 듯이 치유될 수 없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장애는 ‘능력의 결여’가 아닌 ‘다른 능력’일지 모릅니다. 그래서 이 아이의 ‘다름’을 받아들이고 조금 다르게 사는 방법을 찾았는데 그것이 그림이었습니다. 어려웠지만 미술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고, 거기서 좋은 선생님들의 지도를 받아 작가로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 번 전시회를 했고 작년 말에 첫 번째 개인전을 이화여대에서 했습니다. 


첫 전시회가 시작되던 날 우리 아이의 얼굴이 그려진 현수막을 보며 하느님께 기도했습니다. 저에게는 아이가 큰 아픔이었던 적이 있었는데, 이제는 이 아이가 자부심이 되는 것을 보면서 삶이 참 신비롭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느님이 우리 도운이를 저에게 특별한 선물로 주셨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또한, 도운이처럼 발달장애가 있는 다른 친구들에게도 희망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도 다양성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 참한 도시가 좋다고 하시더니 참한 신앙인을 만난 것 같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에게 감동하신 부분이 있다면 소개해주십시오.


▶ 한국에 오셔서 세월호 가족들을 공항에서 만나 이야기하실 때가 기억납니다. 특히 교황님의 표정과 손짓이 기억에 남습니다. 당신의 생각과 감정을 얼굴과 손으로 진솔하게 드러내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방한기간 내내 교황님께서 주교님들과 신앙인, 정부와 청년들에게 직설적으로 하셨던 말들이 기억납니다. 


참 아쉬운 것은 교황님의 방문이 아스라한 드라마를 한 편 본 것처럼 흘러가버린 것입니다. 여전히 교회나 신앙인들은 요지부동인 것 같습니다. 교황님은 방한하셔서 은유법이 아니라 아주 절절한 직설법으로 중요한 말씀을 해주셨는데 우리는 전혀 바뀌지 않는 것이 절망스럽기도 합니다. 신부님과 주교님들이 부유함 속에서 안락한 삶을 영위하는 것은 그분들의 탓도 있겠지만, 그 성직자들을 에워싸고 있는 신자들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신부님과 주교님들은 그들 속에 고립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거대화되고 자본화 되는 교회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가난한 교회로 자신을 옮기는 것도 방법이겠습니다. 그러나 부자 신자들에게 둘러싸인 신부님을 비판하고 발을 빼는 것보다는 다가가 더욱 긴밀하게 대화를 나누고 신뢰와 친밀함을 키우려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교황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교회가 되려면 신자들이 신부님, 주교님과 더 진솔하고 친밀하게 소통해야 합니다.


- 끝으로 가톨릭프레스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세상이 바뀌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너무 빨리 판단하고, 빨리 선을 긋고, 빨리 포기하는 것 때문이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제 신앙의 큰 과제는 ‘어떻게 하면 하느님의 뜻에 맞도록 우리 도시와 우리 마을과 공동체를 만들 것인가?’,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를 좀 더 좋은 나라로 만들 것인가?’ 입니다. 이것은 한두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겠지요. 함께 힘을 모아 한 걸음씩이라도 나아가야겠지요. 요즘 우리나라는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것 같아서 절망스럽고 한탄스럽지만 말입니다. 


힘든 과제이지만 그 길과 방법을 예수님께서 분명하게 보여주셨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교회에서는 특히 평신도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참한 도시는 시장의 말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참한 교회도 주교님과 신부님을 맹목적으로 따르기보다는 평신도들이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깨어있는 의식이 유지될 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도시공부를 하는 것이 그런 의미에서 행복합니다. 만약 도시가 물건이라면 도시설계는 물건을 생산하는 일과 같습니다. 도시가 생명체라면 도시설계는 생명을 돌보는 의사와 같습니다. 도시가 사랑하는 연인이라면 도시설계는 그 연인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저에게 도시는 사랑이기 때문에 도시설계는 제 삶에 선물이고 감사입니다. 


- 도시에는 시민의 참여의식이 소중하듯이 우리 가톨릭교회는 평신도의 참여가 중요하다는 결론인 것 같습니다. 오늘 도시·가족·신앙 모두를 조화롭게 사시는 참한 신앙인을 만나게 되어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가스펠툰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