玄 / 현 / 검다. 멀다. 그윽하다.
스승은 어느 날 나를 지현至玄이라 불렀다. “무슨 뜻인지요?” 라고 여쭙지 않았고, 스승도 별 말씀 없었다. 그저 ‘툭’ 소리 내며 발밑으로 다가온 불림이었다. 그 불림을 안고 가야하는 그림자가 낯설고 멀었다. 옛사람들은 하늘을 왜 검게 보았으며, 그윽하고도 먼 길로 보았을까? 난 이미 지현至玄이되 아직 지현至玄이 아니다.
감은사지 가는 길
천년동안 서있는 탑 앞에서
천년동안 기다린 사람에게 말했다
멀고 어두웠지만
마침내 내가 당신에게 이르렀습니다
흙길 산길 꽃길 눈물길이었지만
결국 비단길이었습니다
걸어서 다시 천년을 가더라도
또 당신에게 갈 것입니다
잠시 만나고 동탑 서탑으로 나뉘더라도
천년동안 고스란히 서 있을 겁니다
감은사지 가는 길
봄맞이꽃 손잡고 가는 길
화엄세상 현현玄玄하늘로 가는 길
+ <붓과 시편>을 열며 드리는 시인의 말
천자문에는 봄 춘春이란 글자가 없습니다. 봄은 문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보라는 저자 주홍사의 뜻이 담긴 다빈치코드인지도 모릅니다. 한 주간에 천자문의 순서에 따라 <붓과 시편>을 한 편씩 올리면 일 년에 대략 50여 시편이 될 것이고 다 마치려면 20년의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제가 마치지 못하면 또 누군가가 이어갈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시작합니다.
<붓과 시편>에서 부디 봄을 만나시길.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