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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현이동훈] '병신년' 대신 '붉은 원숭이 해'
  • 현이동훈
  • 등록 2016-01-15 09:57:54
  • 수정 2016-01-15 09:5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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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그리고 자기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 (마태오복음 5장 22절)


오늘 글은 이 복음 말씀으로 시작하겠다. 양력으로 2016년 새해가 시작되고 어느덧 셋째주이다. 올해의 육십간지 이름은 공교롭게도 욕으로 들리는 말이다. '丙申年 병신년' 이 한자말 때문이다. 처음엔 듣기가 너무 불편했다. 날씨 SNS를 통해 이 한자말이 '붉은 원숭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대구의 장애인지역공동체는 페이스북에서 '붉은 원숭이 해' 쓰기 캠페인을 하고 있다. 이어 장애인단체 활동가들과 페미니즘 활동가들도  페이스북에서 장애인과 여성을 비하하는 언어들을 소개하며 비판하고 있다. 민주노총에서도 조합원들과 활동가들이 '병신년'이란 말을 사람에게 쓰지 않도록 결의했다고 한다.


비장애인들이 장난으로 할 수 있는 말들, 동정심의 의미를 가진 말들이 상처가 될 수 있다. 이는 여성들에게도 역시 상처가 될 수 있다.


장애학에선 신체손상만을 가리켜 장애라고 하지 않는다. 사회문화적 현상도 장애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주로 언어에서 그런 점들이 많다. 새번역 성경은 장애인에 대한 번역어들이 어느정도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문둥'이나 '고자' 같은 말들이 남아있다. 장애인운동이 활발하지 않았던 20세기 말에 공동번역 성서를 쓰던 시절에는 문둥이, 벙어리, 귀머거리, 절름발이란 단어들이 전례에서도 쓰였다. 어쩌면 전례에서도 이런 차별적 언어들이 쓰임으로 인해 교회의 장애인 차별이 나타난 게 아닐까.


'丙申年 병신년'이라는 말을 사람에게 쓰게 되면 안 되는 이유가 있다. '병신'이란 말은 장애인들을 비하하는 말이고, '년'이란 말은 여성을 비하하는 말이다. 올해 첫날부터 장애인운동가들과 인권운동가들이 '丙申年 병신년'이란 말을 쓸 때 주의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우리가 술자리에서, 힘든 노동중에 쉼을 가질 때, 짜증나거나 화가 나 다툴때, 친구들과 모여 뒷담화할 때, 청소년들이 장난으로 은어를 쓸 때 장애인을 비하하는 언어들을 함부로 쓴다. 대표적인 장애인 차별언어들을 소개해 보겠다.


우선 '벙어리'와 '귀머거리'는 뇌병변장애인과 언어청각장애인들을 비하하는 말이다. '절름발이'는 지체장애인을 비하하며 '문둥이'는 피부장애인과 화상장애인을 비하하는 말이다. '고자'는 성기능장애인들과 성적소수자들을 비하하는 말이다. 전세계적으로 성적소수자들을 비하하는 라틴말에선 사람이란 뜻의 '호모'도 있다. '바보'와 '멍청이'는 지적장애인과 발달장애인을 비하하는 말이 될 수 있다.


혹자는 이런 말을 조심해서 쓰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겠지만 좋은 의도에서 쓰이는 말도 장애인들을 비하하는 말로 쓰일 수 있다. 바로 "장애우"란 말이 대표적이다. 친구란 뜻의 한자말 우가 들어가 있어 모르는 장애인들에게 실례가 될 수 있다. 일부 사람들은 아직도 장애자라는 말로 실수를 범하기도 한다.


집회현장에 가보면 발언자가 자본가와 정치인들을 욕할 때와, 일부 그리스도인이 장애인들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 쓰는 말이 있다. 바로 "몸은 건강하지만 마음이나 정신에 장애가 있다"는 말이다. 이말도 역시 장애인들에겐 큰 실수가 된다. 바로 정신장애인들을 비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신장애인들을 사회에 복귀시키는 노력을 하지 않을 망정 이런 말 쓰는 것 자체가 위선이다.


그래서 '丙申年 병신년'이란 말을 사람에게 쓰면 장애여성을 비하하는 말이 되는 것이다. 대구의 번화한 거리인 동성로에 가보니 어느 커피전문점에 "잘해보자 丙申年병신년아"란 문구가 입간판으로 쓰여진 걸 보고 불편했었다. 만약 장애여성이 그 카페 앞을 지나쳐서 무심코 이 문장을 보고 상처를 받을지도 모르겠다.


중국과 남북한, 일본에선 음력 새해가 되려면 한달 남았다. 양력으로 새해를 맞이하고 지내고 있다.  '丙申年 병신년'이라는, 욕으로 오해할 수 있고 장애여성을 비하할 수 있는 이 한자어를 쓰게 될 때 사람에게 빗대어 쓰는 일이 없도록 하길 바란다. 대신 멋진 우리말 '붉은 원숭이의 해'를 많이 쓰길 바라본다.


[필진정보]
현이동훈 (안토니오) : 가톨릭 아나키스트로 아나키즘과 해방신학의 조화를 고민하며 실천하고 있다. 장애인 인권과 생태주의에도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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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1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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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mem2016-01-16 23:45:33

    '붉은 원숭이의 해'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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