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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생들에게 주는 편지
  • 김요한 목사
  • 등록 2015-04-24 10: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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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91-1993년에 서울의 유명 개신교 신학대학원에서 수학했다. 내가 신학대학원을 다닐 때, 일주일에 네 번이나 있던 학교 채플시간에는 전국 각지에서 소위 목회 성공했다고 하는 중대형교회 담임 목사들이 주로 와서 설교를 했다.


아마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그들 중 절대다수가 설교 시간에 마치 서로 입이라도 맞춘 것처럼 이런 이야기를 하곤 했다.


"전도사님들, 신학 공부 열심히 할 필요 없습니다. 목회 현장에 나오면 신학 그딴 거 아무짝에도 필요 없습니다. 목회는 신학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우리 동기 중 신학교 때 공부 잘 하던 사람들 지금 보면 별 볼일 없습니다."


채플 설교자들의 이런 감언이설은 수많은 신학생들의 심장과 뇌리에 깊은 감명을 주기에 충분했다. 크게 두 가지 이유를 꼽는다면,


첫째, 신학교에 입학한 학생들 상당수가, 입으로는 그리스도의 복음과 교회를 향한 소명과 헌신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중대형교회 담임목사가 되어 입신양명을 꿈꾸는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들에게 이미 세속적 의미에서 목회를 성공한 중대형 교회 선배 목사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진리일 수밖에 없었다.


둘째, 신학생들 상당수가 신학수업에 진지하게 정진하지 않고 그저 목사 자격증을 따기 위한 코스가 속히 지나가기만을 바라며 소일하던 상황에서, 공부 열심히 안 해도 된다는 그 말이 일종의 양심의 면죄부를 주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하나 더 꼽으라면, 도저히 공부에 집중하기 어려운 열악한 환경에 둘러싸인 신학교의 암울한 현실이 면학분위기를 망쳤다. 암튼 그런 식으로 해마다 막대한 숫자의 신학도들이 얼렁뚱땅 공부를 마친 채 목회 일선으로 쏟아져 나왔다.


또 그렇게 해서 목회 현장으로 배출된 자칭 '거룩한' 전도사, 강도사, 부목사들은 한국교회 특유의 몸으로 때워야만 하는 고단한 교역 현실로 인해, 일 년 내내 제대로 된 신학서적 한권 읽기도 벅찬 그런 시절로 젊음을 허송해야 했다.


그리고 우리는 작금에 그런 식으로 배출된 목회자들이 매 주일마다 얼마나 비성경적이고 반사회적이며 몰역사적인 언설들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제의 권위를 앞세워 설교라는 미명하에 강포하고 있는지, 정말이지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


개신교를 말씀(설교 사역)의 종교라고 할 때, 이렇게 강단이 부실해서야 어찌 교회와 신자들의 신앙과 삶이 바로 설 수 있단 말인가?


이런 현실에서, 참으로 송구한 말씀이지만, 나는 어차피 내 또래나 선배들 세대는 별 희망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우리 나이에 다시 신학적 소양을 기초부터 재정립하고, 튼실한 기독교 세계관을 재건축하고, 성경과 현실을 정합성 있게 종합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내 또래와 선배들을 계몽하고 설득하며 야단하는 것은 오히려 시간과 에너지의 낭비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잘못하면 서로 불필요한 오해와 감정의 상함만 초래할 뿐이다. 그래서 차라리 희망을 우리 후배들, 제자들에게 두는 것이 지혜롭고 현실적인 결정일 듯하다.


간곡히 부탁하거니와, 부디 지금 신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 그리고 신학교를 졸업한지 얼마 안 되는 형제와 자매들께서는 우리 같이 얼렁뚱땅 공부하고 목사 노릇하려는 생각일랑은 꿈도 꾸지 말기를 바란다. 기왕지사 그 길을 가기로 결단하였으면, 그 누구 못지않게 정직하고 치열하게 공부하고 또 공부해서 부디 실력 있는 설교자, 목회자가 되길 바란다.


하릴없이 커피숍이나 전전하며 허망한 이야기와 풍설을 배설하는 일로 세월을 허송하지 말고, 한참 공부해야 할 시기에 청중 앞에서 집회를 인도하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겉멋에 빠져 기타와 씨름하며 지나친 감성적 인간형이 되지 말고, 교회 안의 힘센 자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산송장처럼 굽신대지 말고, 오직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가운데 밤을 낮 삼아 공부 또 공부를 하길 바란다.


목회의 기교나 재주를 배우려고 하지 말고 본질을 구하며, 영혼의 독이 되는 요상한 설교집이나 간증집에 시간과 물질을 낭비하지 말 것이며, 평생을 책상에 꼽아두고 읽고 또 읽어야 할 묵직한 신학도서들과 씨름하며 다만 하루라도 더 젊은 날 총기가 남아 있을 때 공부 또 공부를 하길 바란다. 그리하여 무너져 내린 교회를 다시 일으켜 세울 실력 있는 목회자가 되길 소망한다.


혹여 그럴 자신이 없으면, 자신의 영혼을 위해서도, 교회 공동체를 위해서도, 무엇보다 역사와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도 지금이라도 더 늦기 전에 당장 신학으로 밥벌어먹는 자의 허울을 벗어버리고 차라리 세속에 나가 경건한 막일이라도 해서 먹고 살기로 선택하는 것, 그것이 신앙양심일 것이다.


지금 한국교회는 백척간두, 풍전등화의 위기상황이다. 다행이 50-60대 목사들은 그나마 같은 연령대의 신자들이 교회 안에 남아 있기라도 하니 아직은 교회가 목회자 가정의 생계유지의 부담을 나눠지고 있기라도 하지만, 그대들 젊은 형제와 자매들은, 주위를 돌아보건대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동년배들이 그리고 후배들이 교회 안에 거의 존재하지 않는 세대이기에, 신학과 목회를 통해서는 생존 자체가 상당히 걱정이 되어 드리는 고언이니 고깝게 듣지 말기를 부탁드린다.


부디 이 시대의 난제와 불화를 솔직히 그리고 겸허히 인정하고, 그 십자가를 달게 지고 따를 자만이 교회를 위한 섬김의 길을 갈 수 있기를 바란다.


"신학은 불의가 마지막일 수 없다는 희망이요, 살인자가 무고한 희생자에 대하여 승리할 수 없음에 대한 동경의 표현이다."

- 호르크하이머



덧붙이는 글

김요한 : 목사이자, 출판사 새물결플러스의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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