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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통을 뒤져 비린내로 사람을 찾습니다"
  • 전순란
  • 등록 2015-04-21 16:32:37
  • 수정 2015-04-21 16:4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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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20일 월요일, 비


하늘도 참 많이 울고 싶었나보다. 몇날며칠을 울어도 그치지 않는 눈물. 산허리를 어루만지며 멈출 듯 하다가도 다시 흐느끼는 봄비를 두고 사람들은 물었다. “어떻게 안 울고 견디냐?”고. 그러자 엄마들은 대답했다.


“울 눈물이 남아 있다면 이렇게 비바람 부는 거리에서 미친 여자처럼 일년을 넘겨 노숙을 하겠어요?” “이렇게 조중동에 종편방송에 욕을 먹고 농성천막까지 찾아와 고함을 지르고 욕을 해대고 행패를 부리는 일베와 애국청년단과 백골단에게 미친년 취급을 받으면서 이렇게 거리를 헤매고 있겠어요?” “여자가 이렇게 삭발을 하고 영정을 들고 최루액과 물대포를 맞겠어요?” “이렇게 경찰들에게 포위되어 오줌도 못 싸고 갇혀 견디겠어요?”




국민의 지팡이는커녕 오로지 정권의 개로서 하시라도 국민을 살상하는 살인무기가 되어온 경찰(어제 55주년을 맞은 4.19의거때 입증된 사실이다! 어제 유가족까지 잡아넣었다니! 외유 가면서 박근혜가 부하를 불러 그랬나보다. “내가 팽목까지 행차했는데 감히 자리를 떠?”


대한민국 정부가 세월호 사태를 방관하는 너무도 야만스러운 행태가 세계 언론에 연일 떠오르고 있는데 저 철면피에 분을 바르고 외유를 하는 여자라니! 세월호 조사를 일체 차단하고서 유가족을 조롱해온 여당의원들이 세월호를 아파하는 국민들을 비웃듯이 일제히 세월호 배지를 달고 어깨를 흔들어대는 꼴이라니!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들의 저 민낯이라니!



얼마 전 독서회 친구가 가족과 함께 제주도에 가서 온 가족이 활짝 웃는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왔었다. 그런데 안경을 미처 못 쓴 내 눈에는 제주로 수학여행 가던 아이들 얼굴로 비쳐서 “이게 정상인데. 이렇게 신나게 다녀와야 하는데. 이렇게 이쁜 아이들을 다 수장시키다니!”라는 댓글을 달았고 당장 “언니, 왜 욕해?”라는 대답이 왔다.


아차싶어 안경을 찾아 쓰고 보았더니 그 친구의 팔순 어머니를 모시고 여덟 자녀가 활짝 웃는 사진이었다! 지리산 속에 사는 평범한 아낙의 머리와 가슴도 이러니 온 국민이 ‘세월호’로 얼마나 심한 속병을 앓고 있는지 알법하다.


저녁뉴스에는 총리가 수수한 정치자금 문제가 사방에서 갈수록 터져 나오고 늦게는 그의 사임 소식이 전해온다. 박근혜는 꼭 자갈치시장 쓰레기통만 뒤져서 썩은 비린내로 사람을 찾는지 총리시켜주고 장관시켜준다면서 그래도 '인재'라는 사람들을 무대에 올려 온갓 망신을 다 시키고서 다시 쓰레기통으로 내던지는 별난 취미를 보인다.


지난 초봄 대전에 갔다가 현수막까지 걸고서 ‘충청 총리’를 반기던 사람들을 보았는데 지금은 그들이 무슨 심경일까? 어느 신문이 심층취재를 해보니까 그 지역 사람들의 대꾸는 “됐슈!” 한 마디더란다.


미루가 어제 준 두릅으로 장아찌를 담갔다. 다시마를 끓여 다싯물을 만들고 간장과 매실청과 감식초로 담갔으니 사흘마다 세 번은 끓여 식혀서 다시 부어넣어야 한다.


소담정 도미니카가 물을 길으러 왔다가 잠시 들렀다. 올해는 심정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로 작심하고 구체적으로 그런 사람들을 만나고 어루만지고 소생시키는 얘기를 들려준다. 마음에 병든 사람도 많지만 그들을 돕노라면 본인이 병고를 벗어놓고 치유됨을 체험한단다.


그간 넉넉히 내린 봄비에 감자들이 두툼한 흙 켜를 젖히고 세상구경을 시작했다. 땅속에는 하느님의 기운이 가득히 흐르고 있어 씨앗도 뿌리도 씨감자도 땅속에 들어가면 그 기운을 받아 생명을 북돋아 올린다. 농부는 하느님이 농부이심을 절감하며 살아간다.


어제 임봉재 선생님한테서 얻어온 꽃들을 마당 화단에 심었다. 하양수선화, 누운주름잎, 삿갓끈동부, 수련곰취, 당귀... 고 작은 것들이 떠나온 친정 흙을 잊을 즈음이면 새 땅에 터를 잡고 뿌리를 뻗으리라. 일기를 쓰는 이 시각도 휴천재 봄비는 멈추질 않아 이 땅의 설음과 아픔을 노래해온 김유철 시인의 “봄 飛”라는 짤막한 시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꽃으로 시작되는 소풍이 얼마나 아름다우랴

적막으로 시작하는 봄은 또 얼마나 아름다우랴

첫 날갯짓으로 창공으로 수놓는 것

그래 우리네 소풍은 봄 飛로구나

덧붙이는 글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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