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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등급 국민 - 우리시대 강도 만난 사람들 (김철호, 임태영, 김옥연)
  • 김근수 편집장
  • 등록 2015-09-25 11: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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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등급 국민 / 김철호, 임태영, 김옥연 / 대장간 / 208쪽 /13,000원


대입수능 점수 분류는 1등급에서 9등급까지 있다. 우리 인생에는 몇 등급까지 있을까. “10등급 국민”은 빚더미에 신음하는 빚꾸러기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소외된 사람들의 민생 문제를 오랫동안 상담해온 “민생네트워크 새벽”에서 펴냈다. 18명의 증언과 김옥연 목사, 김철호 목사, 임태영 선생이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는 이야기를 고백하고 있다. 


IMF 위기 때 부실 은행과 기업에 국민 세금인 공적 자금이 투입되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의 빚을 탕감하기 위해 국가는 공적 자금을 투입할 의사가 전혀 없다. 왜 그럴까.


국가는 부자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지만 국가는 가난한 사람의 재산은 커녕 생명도 보호할 의지도 없다. 가난한 사람들이 국가에 기댈 것이 거의 없다. 국가가 자본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자본의 하수인이다. 자본권력은 국가를 이용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합법적으로 착취한다. 


자본은 가난한 사람들의 세계를 잘 모른다. 아니 알고 싶지 않다. 우리도 가난한 사람들의 세계를 잘 모른다. 우리가 화성과 목성을 아는 만큼 가난한 사람들의 세계를 안다. 가난한 사람들의 세계는 지구의 오지보다 우리에게 더 미지의 세계다. 


성서를 모르면 예수를 모른다는 말은 그리스도교에 알려져 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을 모르면 예수를 모른다는 말은 그리 알려져 있지 않다. 아니, 알고 싶지도 않고, 혹시 안다 하더라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이다. 가난한 사람을 잘 모르는 우리가 예수를 제대로 알 리 없다.


예수를 조금 알아도 하느님 나라가 무엇인지 모르는 그리스도교인이 많다. 예수가 말한 하느님 나라는 잊고 예수만 보는 그리스도인이 적지 않다. 하느님 나라를 반대하는 가장 큰 세력이 바로 자본이다. 하느님과 돈을 함께 섬길 수 없다고 말한 예수를 우리는 벌써 잊었는가. 


그리스도교가 인간을 죄에서 본다면 자본주의는 빚에서 인간을 이해한다. 죄에서 구원보다 빚에서 해방이 더 시급한 사람들이 있다. 돈에 대한 욕심이 모든 죄의 근본이라면, 빚에서 해방이 자본주의에서 사는 인간의 꿈이다. 가난은 개인의 게으름 탓이 아니라 자본주의 구조가 낳는 찌꺼기다. 도시에 상수도와 하수도가 있다면, 자본주의에 이윤과 빚이 있다. 


그리스도교는 자본권력과 싸워야 한다. 자본은 가난한 사람들을 무너뜨릴 뿐 아니라 하느님 나라를 반대하기 때문이다. 자본은 그리스도교에게 최고의 유혹일 뿐 아니라 최대의 적이다. 예수도 이 사실을 정확히 알았다. 악마가 예수를 돈으로 유혹한 사실이 있다. 돈은 무려 예수를 유혹할 정도로 힘과 매력이 있다.


그리스도교에서 삼위일체는 하느님 아버지와 예수와 성령을 가리키는가. 우리 시대 삼위일체는 무엇일까. 돈, 미국, 하느님 아닌가. 돈과 하느님을 함께 섬기고 싶은 마음이 그리스도교의 솔직한 심정 아닌가. 그리스도교는 하느님보다 자본주의의 세례를 더 잘 받은 것 같다. 


그리스도교는 자본의 속성, 유혹, 위험을 잘 알아야 한다. 그리고 자본과 맞서 싸워야 한다. 자본에 굴복한 그리스도교는 이미 그리스도교가 아니다. 부자와 권력자와 가까이 지내는 종교인은 마약에 중독된 사람이다. 어서 병원에 가야 한다. 돈과 권력에 의지하여 교회를 세우려는 사람은 악마의 유혹에 빠진 사람이다. 어서 회개해야 한다.


그리스도교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헌금을 받아서는 안 된다. 헌금을 요구해서도 안 된다. 오히려 헌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 그리스도교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교회가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 어디서 많이 들은 말씀 아닌가. 


가난한 사람들을 모르면 인간을 모르듯, 빚을 모르면 죄를 알 수 없다. 죄가 신학적 살인이라면, 빚은 경제적 살인이다. 예수는 빚진 사람들의 현실을 잘 알았다. 예수의 이야기에 빚을 탕감하는 비유가 있다. 


빚은 가난한 사람들을 아는 통로다. 빚은 가난한 사람들을 서서히 죽음으로 이끈다. 정치적 억압이 즉각적인 박해라면 빚은 서서히 진행되는 박해다. 인간은 모두 빚쟁이다. 목숨을 자연을 하느님께 빚진 것이다. 땅은 인간의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미래 세대에게 우리가 빌려 쓰는 것이다. 세상에 내 땅이 어디 있는가. 세상에 교회 땅이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 시대 그리스도교의 가장 큰 죄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그 죄를 우리는 어찌 감당할까. 태산보다 더 큰 죄가 그리스도교를 짓누르고 있다. “10등급 국민”을 읽으며 드는 생각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세계를 좀 더 가까이 정직하게 알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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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2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 프로필이미지
    @nomem2015-09-26 12:30:53

    이런 책을 이곳에서 구입할 수 있는 방법이 없나요?

  • 프로필이미지
    @nomem2015-09-25 22:18:17

    사회적협동조합'새벽' 김철호 입니다. 기사를 퍼 갑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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