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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교구 사제연수회 : 예수의 제자교육 2
  • 김근수 편집장
  • 등록 2015-09-23 10:3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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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9월 16과 17일 마산교구 교육관에서 열린 마산교구 사제연수회에서 가톨릭프레스 김근수 편집장이 3회 강연한 내용을 6회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주>



하느님나라와 십자가


예수는 갈릴래아에서 하느님나라의 기쁨을 선포했다. 예수는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의 슬픔을 선포했다. 예수는 예루살렘 가는 길에서 자기희생이라는 주제로 제자교육을 했다. 


그런데 하느님나라와 십자가는 모순되는 주제 아닌가. 예수의 선포 주제가 하느님나라에서 십자가로 바뀌었을 때 제자들은 얼마나 당황했을까. 하느님나라의 이상과 십자가의 현실에 제자들만 고뇌했을까. 이천년 그리스도교 역사가 그 앞에서 여전히 고뇌하고 있다. 


하느님나라를 십자가에서 바라보고, 하느님나라에서 십자가를 보는 것이다. 고통 없이 하느님나라 없고, 십자가는 그저 고통이 아니다. 하느님나라는 어느 정도 이해되고 있지만, 십자가는 아직도 제대로 이해되고 있지 못한 것 같다.


예수는 왜 십자가 처형을 당했을까. 병을 고쳐주고, 마귀를 쫓아내고, 빵의 기적을 행하였기 때문에 예수는 체포되었을까. 기도하다가, 피정지도 하다가, 성경공부 하다가 체포되었을까. 원수를 사랑하고 비폭력을 가르친 예수 아닌가. 예수는 로마군인을 향해 칼 한번 쓰지 않았다. 점령군 로마군대는 식민지 시대의 청년 예수의 이런 유화적 행동을 이용하고 후원하고 홍보에 써 먹는게 더 좋지 않았을까. 로마군대는 왜 예수가 국가질서를 어지럽히고 식민지 통치에 위험하다고 여기게 되었을까. 예수의 어떤 말과 행동이 반란죄에 해당된다고 여겨졌을까. 


해방신학자 레오나르도 보프에 따르면 십자가는 불의에 저항하다가 겪는 고통을 기쁘게 감당하는 태도다. 불의에 저항하지 않고 얻은 고통은 예수의 십자가와 별로 관계없다. 불의에 저항하지 않았는데 십자가가 내게 올 리 없다. 억울하게 당한 고통을 어쩔 수 없이 견디는 자세는 예수의 십자가와 거리가 멀다. 부당한 고통을 이유 없이 참아내는 태도는 예수의 십자가와 아무 관계없다. 


하느님나라를 받아들이지만 십자가를 거부하는 신앙은 어떻게 될까. 영광신학, 번영신학, 승리주의 신학이 자리 잡을 것이다. 요한복음과 영지주의가 그 사례를 보여준다. 하느님나라는 거부하고 십자가는 받아들이면 어떻게 될까. 고통을 숭배하는 사상, 복음을 기쁨으로 여기지 못하는 태도가 나오기 쉽다. 


불의에 저항하다가 겪는 고통을 기쁘게 감당하는 사람만 하느님나라의 기쁨을 맛본다는 말 아닐까. 그 모습을 예수가 몸소 보여주었다. 불의에 저항하지 않는 사람은 십자가를 알 수 없다. 십자가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하느님나라를 알 수 없다. 


불의에 저항하지 않았는데도 하느님나라의 기쁨을 맛본 사람들이 성서에 있다. 불의에 희생당한 가난한 사람들이다. 불의에 저항하든 불의에 당하든 그 사람들은 하느님나라에 가까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는 가난한 사람들,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하느님나라를 선포한 게 아닌가. 


하느님나라와 예수


하느님나라와 예수는 서로를 설명해주는 지점이다. 하느님나라가 무엇인지 예수의 말과 행동에서 알아차린다. 예수가 누구인지 하느님나라 관점에서 본다. 이 상호 연관이 교회사에서 많이 흐려지게 되었다.


부활 이후 초대공동체는 예수에 집중하고 하느님나라를 망각하기 시작하였다. 기다리던 마지막 날이 오지 않았고, 공동체는 박해받는 소수파였고, 로마제국의 통치에서 조직을 유지해야 하는 절박한 과제가 있었다. 그래서 예수에 우선 집중하고 하느님나라를 유보할 수밖에 없던 사정도 있었다. 


교회가 로마제국의 국교 지위를 얻은 이후에도 하느님나라 망각 현상은 줄어들지 않았다. 하느님나라를 강조하기보다 오히려 교회를 하느님나라로 동일시하는 착각이 유행하였다. 초대 교회 공의회도 예수의 인성과 신성, 삼위일체 등 예수에 집중하였다. 사도신경에도 하느님나라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교회를 하느님나라로 동일시하던 풍조는 성직자를 곧 교회라고 여기는 풍조로 발전되었다. “예수는 하느님나라를 선포하였는데, 우리 눈앞에 정작 나타난 것은 교회였다”라는 독일 신학자 마틴 켈러의 말은 조금 과장이겠다. 그러나 많은 부분 진실을 담고 있다. 교회가 하느님나라를 대체해 버렸다는 것이다.  


속된 말로 비유하면 교회는 곧 바티칸은총 은행이고 사제는 바티칸은총 은행에 근무하는 직원이다. 평신도 고객은 은총은행인 교회에 정기적으로 들러 의무를 다 하고 돈을 맡기고 은총을 사제에게 받아간다. 사제는 은총을 관리하는 사람이다. 사제 허락 없이 평신도는 하느님의 어떤 은총도 전달받을 수 없다. 


누가 그렇게 가르쳤든 그렇게 배웠든, 이 정도가 대부분 평신도의 생각에 자리 잡고 있다. 교회는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말을 평신도들은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교회는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말을 내심 불쾌하게 여기는 사제들이 적지 않다. 


하느님나라 망각의 역사는 신학계에서도 19세기까지 계속되었다. 하느님나라 회복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서서히 진행되었다. 특히 해방신학은 하느님나라 회복을 가톨릭교회에서 주도하였다. 한국 평신도들은 성서교육, 교리교육, 공의회 문헌 교육 등 신자교육 분야에서 아주 빈약한 대접을 받고 있다. 


예수와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는 예수와 그리스도를 함께 부르는 약칭이다. 예수와 그리스도는 동일 인물이다. 예수는 그리스도요 그리스도는 곧 예수다. 예수는 부활한 그리스도요 부활한 그리스도는 곧 나자렛 예수다. 예수에서 그리스도를 보고, 그리스도에서 예수를 기억하는 것이다. 


예수는 부활한 그리스도라는 말은 교회에서 강조되었지만, 부활한 그리스도는 곧 나자렛 예수라는 말은 충분히 강조되지 못하였다. 나자렛 예수에서 부활한 그리스도를 연결하는 법은 배웠지만, 부활한 그리스도에서 나자렛 예수를 기억하는 법은 충분히 강조되지 못하였다. 나자렛 예수를 잊고 부활한 그리스도만 아는 사람은 많아도, 부활한 그리스도를 잊고 나자렛 예수를 기억하는 사람은 적다. 


나자렛 예수든 부활한 그리스도든 둘 중 하나만 잊어도 사실상 이단이다. 제1세계 국가에는 부활한 그리스도를 사절하는 신자들이 많고, 한국 같은 선교국가에는 나자렛 예수를 망각하는 신자들이 많다. 제1세계 국가에는 그리스도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신자가 많고,  한국 같은 선교국가에는 예수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신자가 많다.


예수에서 그리스도를 보고 그리스도에서 예수를 연결해야 한다. 나자렛 예수에서 부활한 그리스도를 보고, 부활한 그리스도에서 나자렛 예수를 보아야 한다. 한국 사제들과 신자들은 부활한 그리스도에서 나자렛 예수를 보는 교육을 더 많이 받아야 한다. 예수의 인성을 이론적으로 인정하지만 실제로 부정하는 사제들과 신자들이 한국교회에 적지 않다. 


예수의 인성과 신성


예수의 인성과 신성은 둘이 아닌 하나다. 구분할 수 있으나 분리할 수 없는 일치다. 하나가 커지면 다른 것이 줄어드는 반비례 관계가 아니라 하나가 커질수록 다른 것도 커지는 정비례관계라고 할까. 예수의 인성과 신성에 대한 이해는 같이 커지거나 같이 줄어든다. 예수의 인성을 알수록 예수의 신성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다. 예수의 신성을 더 깨달을수록 예수의 인성에 대한 감동이 더 커진다. 


그런데 예수의 인성과 신성을 정비례관계가 아닌 반비례 관계로 오해하거나 해설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들은 이런 딜레마에서 스스로 헤어나기 어렵다. 예수의 인성을 강조하는 사람은 어쩐지 예수의 신성을 무시하는 사람처럼 보이고, 예수의 신성을 강조하는 사람은 어쩐지 예수의 인성을 무시하는 사람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들은 예수의 인성과 신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사제 중에 이런 사람이 만일 있다면, 그들이 평신도에게 미치는 악영향은 어떻게 될까.  


마르코복음에는 왜 승리주의 사상이 없는가(부활 이야기). 부활 체험 40년 지나고, 부활 이야기가 홍보에 가장 적절하지 않는가. 역사의 예수에게 돌아가라는 의미다. 제자들은 권력다툼 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여자 제자들 사이에 권력다툼은 없었다. 남자 제자들은 경제적으로 예수 일행을 도왔다는 말이 성서에 없었다. 제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우월감을 가졌다는 말도 없었다. 성서에서 성직자 우월주의를 찾기는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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