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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목항의 비바람
  • 전순란
  • 등록 2015-04-15 17:17:05
  • 수정 2015-04-15 18:2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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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6일 월요일, 왼종일 비


김신부님은 아직도 나를 “무식한 프로테스탄트”로 기억하고 계신다. 1973년 가을, 결혼을 앞두고 가톨릭신자인 보스코와 프로테스탄트인 전순란의 성당 결혼은 원래 가톨릭신자는 가톨릭신자와 결혼해야 한다는 교회법 규정이 있어서, 이 규정을 면제해주는 ‘관면혼배’여야 했으므로, 월산동 본당주임이신 감성용신부님과 면담을 가져야 했다.


혼인미사를 거행하실 신부님은 전순란의 종교자유를 존중하여 개신교신자로 남아 있음은 묵인하지만, 장차 태어날 아이들은 가톨릭신자로 교육시키겠다고 서약하라고 요구하셨다. 애들이 커서 스스로 종교를 선택하게 하겠다니까, 신부님은 잘 좀 생각해 보라고, 그 서약을 해야만 성당에서의 혼배미사를 집전해 주겠다고 하셨다. 그 일로 나를 사무실에 두고 거의 한 시간 반 이상을 드나들면서 설득하셨다.


다른 사람 경우라면 당신이 소리를 지르고 말았을 텐데 속에서 부글거리는데도 참으셨단다. 결국 “교육은 가톨릭식으로 하겠는데 본인들이 변심할 때는 책임 못 지겠다.”는 타협안을 들으시고 그 면담이 통과된 것으로 기억한다. 아무튼 그렇게 교육시킨 아이 하나가 커서 신부가 되었고 걔의 서품 석 달 전에 나도 개신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하였다. 김신부님의 인내 덕분이다.



아침식사에는 식복사 아나스타시아씨가 낙지를 넣은 매생이죽을 쑤어주었다. 바다에서 막 잡은 낙지여서 맛이 참 좋았다. 팽목항을 가야 하는데 좀처럼 비가 그칠 줄을 모른다. 신부님과 작별하고 수강재를 떠나 완도를 벗어나 해남으로 해서 진도에 도착하니 11시가 넘었다. 팽목항 사목을 맡고 있는 최민석 신부님이 오늘 영명축일을 맞았으므로 점심을 대접하러 좀 일찍 도착한 길이었지만 가톨릭프레스 편집장 김근수씨가 계산을 하고 말았다.


제주도와 똑같은 기후라는 팽목항은 바람과 풍랑이 참 거칠었다. 진도읍에서 팽목항까지의 차도에는 길가의 벚나무에도 전봇대에도 노랑 리봉들이 매어져 있었다. 304명의 영정이 모셔진 분향소에 들러 향을 올리고 절을 하는데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겠다.


저 억센 바람과 비가 추적이는 팽목항은 바다에서 건져내지 못한 한국 국민의 양심을 보여주고 인간이기를 포기한 듯한 현정권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바람에 날리며 찢겨나가는 노랑 리봉들은 억울한 영령들이 파르르 떠는 소름이고, 시퍼렇게 출렁이는 소용돌이는 어미들의 몸부림이다.




최신부님이 그러셨다. "남편이 죽으면 과부라 불리고 아내가 죽으면 홀아비라 불린다. 과부와 홀아비는 평생 갈 수도 있고 안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자식이 죽으면 그는 ‘죄인(罪人)’이 되고 그 죄인은 죽을 때까지 형고를 받는다. 아이들의 부모가 지금 그 형고를 받고 있다." 세월호 사건은 1년 전 그대로고 반년 지나 급조된 ‘진상규명회’는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


부모들의 그 오랜 농성과 하소연, 팽목항과 서울을 오가는 삼보일배도 아무 소용없다. 광화문에서 청화대에 가려는 모든 행진은 경찰의 벽에 철저히 차단되었다. 엄마들의 삭발마저 돈벌이 장난으로 매도하는 매춘언론에 국민 절반이 타인의 고통을 전혀 못 느끼는 나병환자가 되었다.


오늘은 엠마오 소풍날. 가톨릭 신자들이 부활의 기쁨을 나누며 벚꽃이 만발한 봄을 만끽하는 날인데, 그 소풍을 희생하고 팽목항의 저 바람과 저 풍랑과 저 추위 속으로 순례를 온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이 500명이 넘었다! 가톨릭교회가 끝까지 세월호를 잊지 않고 함께 분노하고 있다. 여기는 아직 부활이 오지 않았다. 팽목은 아직도 사순절이다!


4시에 거행되는 미사와 그 이전의 간담회를 마치고, 내일 광주에서 보스코가 볼 일이 있어서 광주 신안동 수도원에 잠자리를 부탁하고 팽목을 떠났다. 새로 온 원장님이 쾌히 허락하여 수도원에 도착하니 저녁 8시가 넘었다. 신안동 수도원 엠마오 소풍은 젊은 수사의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모두 함께 전주를 다녀온 문상으로 대체되었단다.


스무 명 가까운 젊은이들이 다 공부방에서 내려와 우리를 환영해 주고 수사 하나가 작사 작곡한 “젊음의 엔지니어”라는 신나는 노래를, 율동을 곁들여 우리에게 들려주며 부활을 축하해 주었다. 저렇게 발랄한 청년으로 자랐을 세월호 영령들이 더욱 억울하고 더욱 서럽게 떠오르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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