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검색
개헌과 선거제도, 시민이 직접 논의할 기회 (이원영) 10월 23일 시민제도개혁 시민 대토론회 열린다 이원영 2026-09-25 18:15:10
  • 폰트 키우기
  • 폰트 줄이기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 대군이 그리스로 밀려왔다. 아테네 사람들은 바다에서 맞서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탁월한 선택이었다.


여기에 아테네 민주정의 구조가 싹튼다. 삼단노선 한 척에 노잡이가 백일흔 명씩 들어간다. 200척이면 사만 명이다. 당시 아테네의 성인 남성 시민 거의 전부가 노를 잡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여기서 결정적인 것이 나온다. 중장보병은 아무나 될 수 없었다. 투구와 흉갑과 방패와 창을 자기 돈으로 갖춰야 했다. 그래서 국방은 오랫동안 유산계층의 몫이었다.


그런데 노를 젓는 데는 돈이 들지 않는다. 필요한 것은 몸과 시간뿐이다. 갑옷 살 돈이 없어 전쟁에서도 정치에서도 변두리에 있던 평범한 민중들이, 갑자기 나라의 운명을 쥔 자리로 걸어 들어왔다. 만약 아테네가 소수의 결정으로 움직이는 나라였다면 그 함대는 뜨지 못했다.


사만 명이 노를 젓게 하려면 사만 명이 그 배를 자기 것으로 여겨야 한다. 채찍으로는 안 된다. 삼단노선의 노잡이는 셋으로 층을 이뤄 앉아 초 단위로 박자를 맞춘다. 한 사람이라도 마음이 떠나면 배가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아테네는 전쟁의 중대한 결정들을 민회의 표결로 정했다. 독재자였다면 설득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독재자였다면 사만 명이 노를 젓지도 않았을 것이다.


반대편에는 페르시아 왕 크세르크세스가 있었다. 명령 한 마디로 수십만을 움직이고, 산을 깎아 운하를 뚫었다.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페르시아 병사들이 뒤에서 채찍을 맞으며 떠밀렸다고 묘사했다. 살라미스에서 진 것은 전제군주였던 것이다. 그리고 승리한 뒤 노를 저었던 사람들이 묻기 시작했다.


"목숨을 걸고 싸운 자가 왜 결정에서는 빠지는가."


이후 수십 년에 걸쳐 민회의 권한이 커지고 시민 참여가 넓어졌다. 참정권은 누가 베풀어서 넓어진 것이 아니다. 위험을 진 자들에게 몫을 인정해야 앞으로도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도 위기 한복판에 있다



▲ 충무공이 12척의 배를 민중과 함께 수선했던 회령포(장흥) 항구 전경. 천관산에서 내려다 보인다. ⓒ 이원영



우리 역사에도 같은 구조가 있었다. 임진왜란 때 조정은 의병과 천민에게 면천과 신분 상승을 약속했다. 그 기대가 민중을 움직인 힘의 하나였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자 약속은 흐지부지됐고 신분 질서는 제자리로 돌아갔다. 40여 년 뒤 병자호란에서 그때와 같은 항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조선왕조가 굴종에 몰렸던 이유다. 몫을 약속해 힘을 얻고, 몫을 주지 않아 다음을 잃은 것이다.


지금은 경제도 전쟁이다. 관세가 밀려오고 반도체를 놓고 압박이 들어온다. 호르무즈가 막혀 원유가 흔들리고 파병하라는 요구가 온다. AI 패권경쟁에서 뒤처지면 안보 자체를 외부에 맡기게 된다는 경고도 있다. 그리고 이 위기의 부담은 민중에게 먼저 닥치고 있다.


관세로 먼저 무너지는 것은 협상력 없는 중소기업이다. 유가가 오르면 먼저 타격받는 것은 기름값과 물가에 민감한 서민이다. 파병이 결정되면 가는 것은 누군가의 자식이고, 그 해역을 지나는 배에 탄 것도 우리 선원이다. 위험은 아테네의 노잡이들처럼 아래로 넓게 깔려 있다. 그런데 결정은 위로 좁게 모여 있다.


위기는 늘 결정을 좁히는 명분으로 쓰인다. 신속해야 한다, 기밀이 있다, 협상 카드를 공개하면 협상력을 잃는다. 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아테네는 정확히 그 반대로 갔다. 페르시아 대군이 밀려오는 국면에서 결정을 좁히지 않았다. 시간이 걸렸고 반대도 컸다. 그러나 그렇게 정했기 때문에 사만 명이 노를 저었다.


위기가 클수록 더 많은 사람의 참여가 필요하고, 참여를 얻으려면 몫을 주어야 한다. 부담만 지우고 결정에서 빼면 그 부담을 질 사람이 없어진다. 지금 경제전쟁을 견디려면 국민의 인내가 필요하다. 그 인내를 요구하면서 왜 그래야 하는지를 정하는 자리에서는 빼놓는다면, 그 인내는 오래가지 않는다. 대통령의 최근 담화는 그 부분이 빠졌다.


우리에게도 살라미스가 있었다. 계엄이 선포된 그 새벽 국회로 먼저 달려간 것은 시민이었다. 장갑차 앞에 선 것도, 총구 앞에 맨몸으로 선 것도 시민이었다. 현장 지휘관들이 발포하지 않은 것은 명령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앞에 선 사람들 때문이었다.


두 번의 광장혁명과 노잡이들, 그들이 직접 의논하고 결정해야


그 앞에 두 번의 광장이 있었다. 1700만 명이 23주를 지키고도 폭력 사태가 한 건 없었다. 위험을 진 쪽이 누구인지는 이미 분명해졌다. 아테네에서는 그 공헌이 참여의 확대로 이어졌다. 우리는 어떤가.


그 물음이 제도로 이어지지 않았다. 지금 개헌 논의가 열려 있다. 선거제도 개편 논의도 오간다. 국가의 기본 규칙을 다시 쓰는 일이다. 그런데 그 논의가 어디서 이루어지는가. 여의도와 청와대, 정당의 협상 테이블이다. 12월 3일 새벽에 달려갔던 사람들은 그 자리에 없다.


제시된 개헌 항목만 봐도 그렇다. 5·18과 부마항쟁 정신의 전문 편입, 기본권 강화, 대통령 권한 일부의 국회·지방정부 분산, 연임제. 주권자가 직접 물을 통로는 한 항목도 없다. 국민투표 발의권은 여전히 대통령 한 사람의 재량에 갇혀 있고, 국민발안도 시민의회도 목록에 없다.


게으름이 아니라 권한의 착오다. 이것을 직무유기라고만 하면 절반이다. 더 부지런히 하면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개헌과 선거제도는 대리인이 자기 권한의 범위와 자기를 뽑는 방식을 정하는 일이다.


아무리 선의를 가진 사람도 자기 자리를 스스로 재는 일에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 소선거구제를 고칠지를 그 제도로 당선된 사람들이 정하고, 대통령 권한을 어디까지 나눌지를 그 권한을 쥔 쪽이 정한다. 성실성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정하느냐의 문제다. 혁명이 늘 정권교체로 끝나고 구조교체로 이어지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규칙을 쥔 자들에게 규칙 개정의 전권을 맡겨두었기 때문이다.


요구가 아니라 실체로 대응하는 시민들


시민이 먼저 논의하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요구는 거절당할 수 있고, 검토하겠다는 답을 받고 몇 년이 지날 수도 있다. 다른 길이 있다. 시민이 그냥 논의하는 것이다. 오는 10월 23일 서울에서 선거제도개혁 시민대토론회(시민인권위원회, 시민의회추진위원회, 시민광장준비위원회 공동주최)가 열린다. 9월의 전문가 좌담회에 이은 자리다.



▲ ⓒ 이원영



소선거구제가 어떻게 표의 등가성을 무너뜨리는지, 비례성을 높이는 대안이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를 놓고 시민들이 마주 앉는다. 그리고 여기서 벼려진 의제를 추첨으로 뽑힌 시민들이 이어받아 숙의하는 파일럿 시민의회가 준비되고 있다.


이것이 요구와 다른 점은 거절할 대상이 없다는 데 있다. 이미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테네의 노잡이들도 참정권을 청원해서 얻은 것이 아니었다. 나라를 구했다는 사실 자체가 논거였다. 마찬가지로 시민이 실제로 숙의하고 결론을 내는 자리가 서면, 그 자리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논거가 된다.


시민이 숙의할 수 있는가는 이미 여러 번 답해졌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는 추첨 시민 160명에게 선거제 개혁을 맡겼고, 아일랜드는 수십 년간 정치인이 손대지 못한 문제를 시민의회에 넘겨 결론을 냈다. 우리에게는 신고리 공론화의 경험과 두 번의 광장이 있다.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 묻지 않는 것은 미숙함이지만, 준비된 자에게 묻지 않는 것은 배제다.


위험을 지는 쪽과 결정하는 쪽이 갈리면, 그 결정은 오래가지 못한다. 지금 열려 있는 개헌과 선거제도 논의를 대리인의 협상 테이블에만 맡겨두면, 나오는 것은 대리인에게 편한 규칙일 수밖에 없다. 그들이 나빠서가 아니라 그 자리에서는 그것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국민주권정부가 할 일은 그 논의의 결론을 내놓는 것이 아니다. 주권자가 그 논의를 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그 자리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시민이 먼저 만들 수밖에 없다. 10월의 토론회와 그 뒤에 이어질 파일럿 시민의회가 그 시작이다.


두 번의 광장이 증명한 것을 세 번째 광장으로 증명할 필요는 없다. 광장이 열리지 않아도 물을 수 있는 자리, 그것이 두 번의 광장이 남긴 숙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필진정보]
이원영 : 시민인권위원회 공동위원장, 국토미래연구소장, 전 수원대 교수
TAG
관련기사

주소를 선택 후 복사하여 사용하세요.

뒤로가기 새로고침 홈으로가기 링크복사 앞으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