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제공 = 이기우) 부활 제2주간 토요일 (2024.04.13)
: 사도 6,1-7; 요한 6,16-21
초대교회에서 사도들과 신자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유다 이스카리옷의 자리를 채울 사도를 선출하는 일이었습니다. 마티아가 뽑힌 이 보궐선거 다음에 사도들과 신자들이 두 번째로 한 선거가 부제 직무를 신설하고 스테파노를 비롯한 일곱 명의 부제를 선출하고 그들에게 사도들이 안수한 일이었습니다.
오늘날 부제 직무는 과도기 부제직이든 종신 부제직이든 사제직을 준비하거나 돕는 보조적인 역할에 머물러 있습니다. 하지만 초대교회에서는 달랐습니다. 모두 백스무 명이나 되는 사도 및 신자들이 장엄하게 성령을 받고 뜨거운 은총으로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은 놀라운 기적들을 일으켰고, 이는 예수님께서 생전에 가난한 이들에게 베푸신 기적들과 동일한 것이었습니다.
아파서 고통받는 가난한 이들에게는 치유의 기적을, 소외되고 차별받아 마귀들린 가난한 이들에게는 구마의 기적을 일으켰던 예수님의 공생활이 사도들에 의해서 고스란히 재현되기에 이르자, 이를 지켜본 신자들은 뜨거운 은총으로 감화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에서 당부하신 대로, 함께 모여 말씀을 듣고 성찬을 나누며 서로 서로 발을 씻겨주는 심정으로 가진 것을 나누고 특히 궁핍한 이들을 돌보았습니다.
그랬는데도 신자들이 늘어나면서 내부의 불평등이 생겨났습니다. 상대적으로 약자인 그리스계 유다인들이 새로 신자 공동체에 합류하면서 주류였던 히브리계 유다인들에게 불평을 터뜨리게 된 것입니다. 초대교회에게 닥친 첫 시련이요 갈등이었습니다. 그래서 열두 사도가 제자들의 공동체를 불러 모아 대책을 내놓았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식탁 봉사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형제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에서 평판이 좋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찾아 내십시오. 그들에게 이 직무를 맡기고, 우리는 기도와 말씀 봉사에만 전념하겠습니다."(사도 6,2-4)
오늘날의 개념으로 말하자면, 사도들은 기도와 전례 거행 그리고 복음 선포 등 순수 종교적인 직무에 전념하겠다는 것이었고, 신설된 부제 직무는 식탁 봉사 즉 공동체 내부의 복지와 경영 등 경제적인 직무를 맡기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초대교회 내 약자들에 대한 복지적 배려와 교회 외부의 가난한 이들을 도울 수 있는 공동체 경영의 직무가 생겨난 것입니다.
그런데 스테파노가 교회의 첫 순교자로서 치명하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부제 스테파노는 단순히 내부 복지와 외부 나눔이라는 경영 직무만 한 것 같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순수 종교적인 직무에 전념하겠다던 사도들은 자신들을 극도로 경계하던(사도 5,33) 유다교 지도자들이 보기에 새로운 신흥 유다교 종파로 보일 정도로 신중하고 조신하게 처신했고(사도 3,1) 박해 받을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면서 갈등을 일으킬 만한 충돌 요인을 죄다 피해갔습니다.
그러자 은총과 능력이 충만한 스테파노는 백성 가운데에서 큰 이적과 표징들을 일으켰습니다.(사도 6,8) 이에 반대하는 유다인들, 이른바 해방민들과 케레네인들과 알렉산드리아인들과 킬리기아와 아시아 출신들의 회당에 속한 사람들이 나서서 스테파노와 치열한 논쟁을 벌일 지경이 되었습니다.(사도 6,9) 그러나 스테파노의 말에서 드러나는 지혜와 성령에 대항할 수가 없었고(사도 6,10), 급기야 사람들을 선동하여 최고 의회에 성전과 율법을 모독했다는 혐의로 고발해 버렸습니다.(사도 6,12-14)
사도행전 7장은 이 최고 의회 법정에서 스테파노 부제가 행한 긴 연설을 장중하게 들려줍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새로운 관점에서, 즉 가난한 이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신 예수님의 관점에서 재해석한 설교였습니다. 이러한 태도를 깊이 들여다 보면, 베드로를 비롯한 기성 사도들과는 물론이고 빌라도 앞에서 침묵하셨던 예수님보다도 훨씬 더 용감한 모습이었습니다. 결국 이러한 스테파노의 결기어린 모습은 최고 의회 의원들을 포함한 유다인들의 적대감을 불러 일으켜 재판이나 선고도 없이 돌로 쳐서 죽이는 사태로 번지게 되었습니다.
애초에 초대교회 내부의 더 가난한 이들을 배려하라고 신설된 부제 직무에 선출되었지만, 이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사도단의 소극적인 처신으로 말미암아 기성 유다교단과의 마찰이나 충돌도 마다하지 않았던 스테파노는 교회 역사상 첫 순교자가 되는 영광을 안았습니다.(사도 7,60) 부활 시기 동안 요한 복음과 특히 사도행전의 선포를 하는 교회의 전례적 취지를 길잡이로 삼아온 맥락에서 보자면, 스테파노가 맡은 부제 직무는 가난한 이들의 복음화를 위한 특별한 책임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명제는 예수님께서 당신의 메사아 사명의 최우선적 사명으로 삼으셨던 바였기 때문입니다. 따지고 보면 세족례나 성찬례도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기 위한 배려였습니다.
오늘 복음의 상황은 빵의 기적으로 많은 군중을 배불리 먹이신 예수님께서 억지로라도 당신을 임금으로 모시려고 쫓아오던 군중을 피해 산으로 기도하러 가셨다가 겪으신 일입니다. 그 동안 제자들은 따로 배를 타고 갈릴래아 호수 한가운데로 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날이 어두워지자 큰 바람이 불어 호수에 물결이 높게 일었습니다. 이 바람은 북쪽 헤르몬 산에서 불어 내려오는 바람과 서쪽 지중해에서 불어 올라오는 바람이 마주치는 맞바람이었습니다(마르 6,45-52). 새벽이 되자 더욱 거세어진 바람에 밀려 배가 뒤집어질 지경이 되었고 높은 파도로 인해 넘쳐 들어온 물이 불어나는 바람에 배는 가라앉을 지경이 되었습니다(마태 14,22-33).
예수님께서는 며칠째 군중을 가르치시느라고 시달리셨기 때문에 장정만도 오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시는 커다란 기적까지 일으키시고 난 후에는 이들로부터 벗어나서 홀로 쉬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군중도 제자들도 다 돌려보내시고 헤르몬 산에 올라 하느님께 기도하시다가 문득 제자들이 처한 위험이 감지되셨나 봅니다. 하느님의 영과 소통하는 기도를 하다 보면 흔히 겪게 될 영적인 감지현상을 보여 주신 셈입니다. 이때 감지된 제자들이 겪고 있던 그 위험은 매우 다급하게 느껴지셨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당신이 타고 가실 배도 없었던 형편이었으므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구하러 서둘러 가느라고 물 위를 걸어가서 구해 주셨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이 광경에 제자들은 놀라서 유령인 줄 착각하기도 했지만(마태14,26), 예수님께서는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요한 6,20) 하고 태연히 배에 오르셨습니다. 그분이 배에 오르시자 그렇게 거세게 불던 바람이 갑자기 멈추었습니다(마르 6,51). 기적 같은 일은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을 때는 맞바람 때문에 노를 젓기가 그렇게 힘들더니(마르 6,48), 그분이 함께 계시니까 노를 젓지 않았는데도, 배가 어느새 제자들이 가려던 곳에 슬그머니 가 닿았던 것입니다(요한 6,21).
거센 바람과 파도가 잔잔해지는 기적보다도 더 중요한 이 기적은, 이 자연현상으로 인해 제자들의 마음도 가라앉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가려던 곳에 어느새 가 닿을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빵이 늘어난 일이나 물 위를 걸은 기적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가려진 이 기적 현상이 오늘 미사의 복음에서 들려온 하느님의 메시지이고, 이는 독서에서 부제 직무를 신설한 사도들의 행위와 맞물려서 교회 직무에 관한 매우 중요한 통찰을 우리에게 제공합니다. 그것은 사제든 부제든 교회의 직무는 예수님의 현존을 통해서만 생명을 얻는다는 점이고, 그래서 성령이 충만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어제의 독서 말씀에서 들으셨다시피, 성령을 받은 후 사도들은 대외적으로는 박해의 상황 속에 놓여 있었습니다. 대사제, 수석 사제들과 경비대장 등을 앞세운 유다 최고 의회로부터 툭하면 체포되어 심문을 받았고, 매질도 당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해서는 입도 벙긋 하지 말라고 함구령을 요구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사도들은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사도 4,20)고 버티기도 하고, “사람보다 하느님께 순종해야 하지 않겠습니까?”(사도 5,29) 하고 항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이에 격분한 대사제로부터 공연히 매질을 당하기도 했는데 그때 사도들은 억울해 하기는커녕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욕을 당할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았다고 기뻐하며, 최고 의회 앞에서 물러 나왔습니다(사도 5,41). 그런 와중에도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은 군중 앞에서 태생 불구자를 일으켜 세우는 기적을 행하기도 했고(사도 3,8.12), 이 기적을 목격한 군중과 소문을 들은 이들을 합해 무려 오천 명 이상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는 또 다른 기적을 일으키기도 하며(사도 4,4), 몹시 분주하게 복음을 선포하고 있었습니다.
서두에 언급했다시피, 초대교회에서 사도들이 부제 직무를 신설한 이 조치는 이방인 신자들에게 할례를 면제하게 된 결정과 더불어 사도들이 예수님 없이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공동으로 합의한 첫 결정이었습니다. 이것이 훗날 교회가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중대한 결정을 해야 할 때마다 소집했던 역대 공의회의 유래가 되었습니다.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 내린 이 결정은 또한, 사제직과 예언자직과 왕직으로 구분될 수 있는 ‘예수 추종의 직무’에 있어서 사도들이 수행하던 사제직으로부터 예언자직과 왕직을 분리해 내려던 조치였습니다. 이리하여 부제들 중의 한 명으로 선출된 스테파노의 예로 미루어 보면, 당시 부제 직무는 말씀도 선포하고 식량 배급도 담당한 것으로 보아 그렇습니다(사도 6,8-15). 예언자직과 왕직까지도 수행했던 스테파노의 부제 직무를 보면, 가난한 이들의 복음화를 위해서라면 기성 유다교단의 종교적 권위와의 긴장이나 충돌도 무서워하지 않고 용감하게 수행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말씀을 선포하는 직무는 물론 교회 재정을 담당하는 직무에 있어서 간직해야 하는 자세는 예수 추종과 성령 순종입니다. 더 나아가서 교회 역사상 천8백년 만에 가난한 이들의 복음화 명제를 회복시킨 레오 13세와 비오 11세의 회칙의 가르침에 따르자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직무는 주교와 신부 등 온 성직자와 온 신자들이 더불어 힘을 합쳐서 해내야 할 메시아 백성의 사명입니다. 과도기 부제직이나 종신 부제직을 넘어 주교와 사제 등 오늘날 교회의 모든 직무 담당자들도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셨던 이러한 은총을 청해 받는다면 우리가 탄 교회라는 배는 어느새 가려던 목적지에 가 닿을 것입니다. ‘추종’과 ‘순종’으로 예수님의 영에 초점을 맞추는 것, 이야말로 교회와 복음화를 위해 무척 소중하고 바람직한 직무영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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