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2023 세계청년대회 (© Catholic News Agency)2027년 서울에서 열릴 세계청년대회(World Youth Day, WYD)는 단순한 종교 행사가 아니다. 그것은 글로벌 복합위기(polycrisis)와 문화적 희망 서사가 교차하는 역사적 기점이자, 청년 세대가 새로운 글로벌 비전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는 보기 드문 기회다.
분열의 시대, 청년은 어디에 서 있는가
오늘날의 청년 세대는 경제·정치·사회가 동시에 흔들리는 전례 없는 복합위기 속에 놓여 있다. 세계 경제는 다자주의가 무너지고 보호무역주의가 부활하며 불안정성이 확대되고 있다. 미국의 관세 정책으로 촉발된 공급망 교란과 인플레이션은 한국을 비롯한 수출 의존 국가에 직격탄을 날리고, IMF는 2025년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3.3%에서 2.8%로 낮췄다. 이런 경제적 충격은 불안을 키우고, 불안은 혐오와 극단주의의 토양이 된다.
선진국 내부의 구조적 모순도 심각하다. 프랑스의 재정 위기는 고령화와 누적 부채, 경직된 노동시장이라는 복합 문제가 터져 나온 사례다. 정치적 교착과 사회적 저항이 반복되면서 ‘경제 문제 → 정치 불안정 → 해법 부재’라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반면 개발도상국에서는 디지털로 무장한 청년들이 기성 정치의 부패와 무능에 맞서 민주화를 요구하며 거리로 나서고 있다. 2025년 네팔의 Z세대 시위는 그 대표적 사례였다. 이처럼 청년들은 분열된 세계의 최전선에 서 있다. 그러나 그들은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라,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 낼 역사적 주체이기도 하다.
▲ 2025년 9월 초, 네팔 정부가 여러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차단한 조치에 청년들이 반발하면서 시작된 시위 (© THE KATHMANDU POST)혐오 정치에 맞서는 문화의 힘
분열의 정치가 혐오와 국수주의를 확산시킬 때, K-Culture는 놀라운 방식으로 공감과 연대의 글로벌 서사를 만들어냈다. 방탄소년단(BTS)의 “Love Myself” 메시지는 외부의 적을 설정해 정체성을 강화하는 극단주의 논리를 깨뜨리고, 자기 긍정과 타자 공감이라는 내면의 혁명으로 전환시켰다. 전 세계 청년들은 이 메시지에 공명하며, 팬덤은 단순한 소비 집단을 넘어 자발적 공동체로 진화했다. 이는 단순한 ‘문화의 인기’가 아니라, 정서적 공용어를 통해 분열의 시대에 새로운 연대의 가능성을 보여준 사건이다. K-Culture는 세계 청년들에게 ‘국경 너머 연결되는 경험’을 제공하며, 문화가 정치적 대립을 넘어선 연대의 플랫폼이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 포용과 용기의 무대
이러한 시대에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가 개최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한국은 가톨릭 중심 국가가 아니며, 절반 가까운 인구가 비종교인이고,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사회다. 그럼에도 종교 간 대화와 협력의 전통으로 ‘종교 평화의 모범국’이라 불린다. 또한, K-Culture의 발신지로서 전 세계 청년들에게 익숙하고, 문화적 신뢰를 쌓아온 나라다.
이번 대회의 주제는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이다. 여기서 ‘세상’은 단지 외부의 적이 아니라, 분열·냉소·혐오·절망이라는 내면의 적이다. 이 대회는 청년들에게 혐오 대신 공감, 국수주의 대신 연대, 냉소 대신 희망을 선택하는 ‘용기’를 요청한다.
‘글로벌 K-Spirituality’를 제안한다
대회를 둘러싼 논란—공적 자금 투입 문제, 종교 중립성 논쟁 등—은 회피할 장애물이 아니라, 오히려 대회의 비전을 확장할 전략적 기회다. 한국은 이번 행사를 ‘가톨릭 축제 지원’이 아닌, 세계 청년이 모여 새로운 윤리적 프레임워크를 선포하는 글로벌 청년 정상회의로 재정의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글로벌 K-Spirituality’다.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WYD)는 단지 가톨릭의 대규모 신앙 행사로만 머물 수 없다. 세계는 경제, 정치, 사회가 동시다발적으로 흔들리는 복합위기의 한가운데에 있으며, 청년들은 그 충격을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깊이 받아내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서울 WYD는 분열의 시대를 넘어설 새로운 윤리·문화·영성의 프레임을 제안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K-Spirituality다. 한국의 정(情)과 한(恨), 다종교 공존의 역사, 그리고 K-Culture의 공감 미학을 바탕으로 개인의 치유에서 공공의 정의, 그리고 세계시민적 연대까지를 하나의 호흡으로 엮어내는 K-Spirituality는 치유, 정의, 연대, 디지털, AI라는 다섯 축을 통해 미래의 청년 비전을 제시하는 영성 설계도다. 오늘의 청년은 디지털 과잉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 감정적 탈진과 방향감각 상실, 그리고 존재 의미의 공백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다. 단순한 정신 안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K-Spirituality의 첫 번째 축은 영성의 회복과 신앙 성찰을 결합한 ‘의미와 가치의 회복’이다. 한국인의 깊은 정서 언어인 정(情)과 한(恨)은 억압된 감정의 잔재가 아니라, 표출과 수용, 화해와 용서를 거쳐 성숙한 공감 능력으로 전환되는 과정이다. 감각 접지와 상징 묵상, 자기자비 선언으로 이어지는 내면의 성소 기도는 불안을 낮추고 자기혐오를 중화한다. 트라우마 서사를 재구성하는 ‘스토리 리라이팅(Story Rewriting)’은 ‘왜 나에게?’라는 피해의 언어를 ‘그래도 나는’이라는 책임의 서사로 바꾼다. 경계 설정과 비폭력 대화, 용서의 의식을 통해 관계가 다시 건강하게 정렬될 때, 치유는 단순한 안정이 아니라 삶의 통합으로 이어진다.
서울 WYD가 이러한 치유 모듈을 피정과 소그룹, 개인 동반의 표준 프로그램으로 제공한다면, 참가자들은 순간의 감동을 넘어 삶의 구체적 변화를 경험할 수 있다. 불안, 우울, 분노, 스트레스의 하락과 삶의 만족도, 자기자비 지수의 상승, 관계 만족도의 회복은 그 객관적 지표가 될 것이다. 영성은 체험을 남기지만, 치유는 변화를 남긴다.
그러나 치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신앙은 고백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K-Spirituality의 두 번째 축은 ‘공공영성’이다. 이는 부정의(不正義) 앞에서 침묵하지 않고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서는 신앙이며, 전례를 교회 안에서만이 아니라 사회의 광장으로 확장하는 태도다. 추모와 회개, 연대의 전례를 노동, 이주, 기후, 돌봄 등 구체적 사회 이슈와 연결하는 예언자적 전례(Liturgy)는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일상의 정치에 대한 신앙적 응답이다. 법과 인권, 기후 세미나와 봉사를 결합한 시민선교 주간은 청년을 강연의 청중이 아니라 행동하는 주체로 세우며, 공정무역 주일이나 저탄소 주간, 교구 ESG 가이드라인과 같은 생활의 전례(Liturgy)는 신앙이 삶 전체에 스며드는 방식을 보여준다.
혐오와 폭력 앞에서 1분 침묵과 백리본, 공감 문장을 이어가는 캠페인은 시끄러운 분열 대신 조용한 결연을 사회에 번역한다. 서울 WYD가 이러한 공공영성 실천을 행사 전후 1년 동안 지속 가능한 프로그램으로 설계한다면, 참여 인원, 봉사시간, 정책 제안 채택 수, 협력 기관의 확대, 그리고 교회의 공적 신뢰도 변화가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다. 공공영성은 도덕 교훈이 아니라 공동선의 인프라다.
K-Spirituality의 세 번째 축은 ‘세계시민적 연대’다.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이 말하듯, 참된 영성은 국경을 넘어 약자와 타자의 고통에 응답한다. 오늘의 언어로 말하자면 세계시민교육(GCED)과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영성의 동력으로 전환하는 일이다. 빈곤, 난민, 기후, 젠더 문제를 성경과 전통, 현장학습과 연결하는 SDGs 영성 수업은 지식이 감수성으로, 감수성이 책임으로, 책임이 행동으로 확장되는 경로를 마련한다.
남반구의 도시나 본당과 트윈 프로젝트를 맺고 장기적인 상호책임 공동체를 구축하며, 합동 공연이나 전시, 영화 상영 같은 문화 외교는 정서의 공용어를 통해 분열의 언어를 무력화한다. 팬덤형 자선이나 디지털 옹호 활동은 분산형 연대의 효율을 높인다. 서울 WYD가 이러한 연대의 구조를 선언과 프로그램으로 제도화하고, 파트너십 수, 공동 프로젝트 수, 청년 참여 비율, 편견 감소와 공감 증가를 사전·사후로 측정한다면, 이 행사는 단순한 문화적 감동을 넘어 연대의 제도화로 기억될 것이다.
팬데믹은 신앙의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미사가 중단될 수 있다는 사실, 교회가 물리적 공간에만 의존할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K-Spirituality의 네 번째 축은 가상세계 속에서 영적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온라인 성당과 유튜브 미사, 메타버스 성지순례는 신앙의 공간성을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재구성한다. 시간 기도 앱을 통한 디지털 성무일도는 습관의 영성을 만들어내고, 순례 배지와 중보기도의 벽이 있는 메타버스 성지는 ‘실재하지 않아도 실존하는 장소’를 구현한다. 1:1과 소그룹 동반의 체계화, 위기 신호 감지와 전문기관 연계는 디지털 공간에서의 사목적 가능성을 확장하며, 스크린 안식일과 댓글 윤리, 출처와 초상권에 대한 규범은 디지털 공간에 덕의 윤리를 심는다. 신앙은 공간을 잃지 않는다. 새로운 공간을 얻는다.
마지막으로, K-Spirituality의 다섯 번째 축은 AI 시대에 인간다움을 지키는 영성이다. AI가 언어와 감정, 창작을 모방하고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시대에,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요소는 은총, 자유의지, 양심, 용서, 죽음 성찰이다. 데이터 정의와 편향, 생명존중, 책임, 설명 가능성을 신앙의 언어로 가르치는 AI 윤리 교리문답, 정보와 정념을 분별하고 양심성찰로 행동을 결정하는 이냐시오식 분별 훈련, ‘AI로는 할 수 없는 일’을 실천하는 창의·자비 챌린지는 효율이 아닌 자비의 잣대로 인간의 우선성을 확인한다. 기술을 두려워하지 않되, 인간의 고유성을 지키는 기준을 제시할 수 있을 때, 서울 WYD는 AI 시대의 신학적 나침반으로 기능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윤리위원회와 투명한 거버넌스, 아동·디지털 안전, 재정 공개, 피해자 중심 대응, 종교 간 협력 협약과 같은 제도적 기반이 필요하다. 또한, 개인의 정서와 의미감, 공동체의 공공 실천, 세계시민적 연대 행동의 변화를 혼합방법으로 평가해 치유, 공감, 연대의 장기적 효과를 추적해야 한다. 사진과 추억이 아니라 변화가 남아야 한다.
‘글로벌 K-Spirituality 선언’
서울 세계청년대회의 마지막 순간, 우리는 하나의 문장을 함께 외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단순한 행사 구호나 감동의 슬로건이 아니라, 시대적 전환을 이끄는 영성의 선언이어야 한다. ‘글로벌 K-Spirituality 선언’은 한국의 정(情)과 한(恨), 그리고 다종교 공존의 역사와 K-Culture의 공감 미학을 바탕으로, 치유·정의·연대·디지털·AI 시대를 관통하는 새로운 영성의 길을 제시한다.
이 선언은 세 가지 원칙으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근본적 공감(Radical Empathy). 우리는 국적과 신념, 세대와 경계를 넘어 타인의 고통에 능동적으로 귀 기울이고 응답하는 감수성을 회복한다. 둘째, 창의적 행동(Creative Action). 치유와 성찰에 머물지 않고, 사회적 약자와 함께하며 공동선을 실현하는 공공영성을 일상의 실천으로 확장한다. 셋째, 포용적 공동체(Inclusive Community). 다양성을 배척하지 않고 차이를 연결의 힘으로 전환하며, 디지털과 AI 시대에도 인간의 고유한 존엄과 신비를 지켜나가는 공동체를 세운다.
이 선언은 화려한 문장이나 상징적 제스처에 그치지 않는다. 치유 루틴, 공공영성의 실천, 세계시민적 연대, 디지털 신앙의 재구성, AI 시대의 인간성 수호라는 구체적 행동을 통해 누구나 일상에서 실현할 수 있는 영성의 생활 선언문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실행의 과정과 성과는 투명하게 공개되고, 종교·시민·청년이 함께 감시하고 평가하는 공적 약속이 되어야 한다.
서울에서 시작된 이 선언이 아시아로, 세계로 확산될 때, 세계청년대회는 단순한 종교 행사가 아니라 지구적 전환의 윤리적·문화적 이정표로 남게 될 것이다. 치유 없는 열정은 오래가지 못하고, 정의 없는 신앙은 공허하며, 연대 없는 문화는 소비로 사라진다. K-Spirituality는 이 세 축을 한 호흡으로 엮어, 정서의 언어로 시작해 공공의 행동으로 완성되며, 기술 문명 속에서도 인간다움의 핵심을 지켜내는 윤리적·영성적 나침반이 된다.
이제 우리는 묻는다. “세계청년대회, 어디로 가야 하는가?”
그 답은 분명하다. 치유로 뿌리를 내리고, 정의로 줄기를 세우며, 연대로 열매를 맺는 길. 글로벌 K-Spirituality 선언은 그 길의 출발점이며, 서울은 그 첫 번째 이정표가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그 길을 함께 걸어갈 준비가 되어있다.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분석을 넘어 행동과 선언으로 나아가야 한다. 공동선언문은 전 세계 청년들에게 울림을 주는 간결하고 힘 있는 언어로 작성되어야 하며, ‘글로벌 K-Spirituality’를 중심으로 지속 가능한 운동의 불씨를 지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이 대회는 단순한 행사가 아니라 분열의 시대를 넘어선 청년 연대의 역사적 전환점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