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주교 서울대교구 유경촌(티모테오) 보좌주교가 8월 15일 0시 28분, 지병으로 투병 끝에 서울성모병원에서 선종했다. 향년 63세였다. 유 주교는 평소에도 검소하고 청빈한 삶을 살며 교회의 가난한 이웃과 함께하는 사목에 헌신해 왔다.
소신학교에서 서울교구 주교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은 신앙생활
유경촌 주교는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나 성신고등학교와 가톨릭대학교를 졸업했다. 이어 독일 뷔르츠부르크대학교를 거쳐 프랑크푸르트 상트게오르겐대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며 깊은 신학적 기초를 다졌다. 1992년 사제품을 받은 이후에는 서울대교구에서 사목과 교육을 병행하며 신학교 교수로도 봉직했다.
2008년부터 2013년까지는 서울대교구 통합사목연구소장을 맡아 교구 규정집 편찬 작업을 이끌었으며, 교구 사목 행정의 기틀을 다졌다. 2013년 12월 교황 프란치스코에 의해 서울대교구 보좌주교로 임명된 뒤 2014년 2월 주교품을 받았다. 이후 사회사목 담당 교구장 대리와 동서울 지역 교구장 대리를 맡아 교구 내외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화려하지 않은 사목, 언제나 사회적 약자와 함께 해
유 주교는 특히 사회적 약자와 함께하는 사목으로 주목받았다. 세월호 참사 추모 미사와 이태원 참사 추모 미사 등에서 고통받는 이들의 곁을 지키며 위로와 연대를 실천했다. 2023년 10월 명동성당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1주기 추모 미사에서는, "유족들이 아픔을 딛고 일어서려면 희생자에 대한 추모가 제대로 그리고 충분히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하며, 유가족에 대한 배려와 연대를 거듭 당부했다.
가난한 이들과 노동자,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고, 언제나 겸손한 자세로 그 자리에 함께하려 했다.
그의 사목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늘 낮은 자리로 향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임종 직전에도 “가난한 이들 곁에서 더 함께하고 싶은 일이 많았는데, 그러지 못해 마음이 아프다”는 말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성모승천 대축일에 하느님 품으로 가셨으니 성모님의 품에 안기셨으리라"

선종 직후 명동대성당 지하성당에 빈소가 마련되었으며, 15일 오후 3시에 ‘빈소 여는 미사’가 봉헌됐다. 이후 조문은 매일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이어졌고, 매 시간 연도와 미사가 봉헌되며 수많은 사제와 신자들이 고인을 기렸다.
조문을 위해 명동대성당을 찾은 신자들은 긴 줄을 서서 애도의 뜻을 표했고, 더운 날씨에도 성당 코스트홀에서는 고인을 위한 묵주기도가 이어졌다. 신자들은 “늘 따뜻하게 다가오던 주교님을 잃어 마음이 무겁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장례미사는 18일 오전 10시, 명동대성당에서 서울대교구장 정순택(베드로) 대주교의 주례로 봉헌됐다. 한국천주교 주교단과 서울대교구 사제단이 공동으로 집전했으며, 성당을 가득 메운 신자들이 눈물 속에 함께했다. 정 대주교는 강론에서 “유 주교님은 늘 검소하고 가난하게 살며, 힘든 이들을 직접 찾아가 함께하려 했다”며 “성모승천 대축일에 하느님 품으로 가셨으니 성모님의 품에 안기셨으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이용훈 주교는 18일 고별식 추도사에서 “유경촌 티모테오 주교님은 평생을 단순하고 소박하게 살며 사회적 약자와 함께한 사목자로, 교회의 진정한 섬김을 보여주셨다”고 추모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주교님께서 보여 주신 사랑과 가르침을 고이 간직하고 서로의 발을 씻어 주며 살아가겠다"고 밝혔다.
장례미사를 마친 뒤 유 주교의 유해는 경기도 용인 천주교 용인추모공원 성직자 묘역에 안장됐다.
서울대교구 이경상 주교는 SNS를 통해 “늘 낮은 데로 임하며 소외된 이들 곁에 머무르던 분이었다. 많이 그리울 것”이라고 전했다. 의정부교구장 손희송 주교도 “하느님께서 이제 달릴 길을 다 달린 뒤 ‘이제 됐다’고 말씀하신 듯하다”며 고인의 헌신을 기렸다.
유경촌 주교의 삶을 기억하는 이들은 한 목소리로 “낮은 자와 함께하는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증언했다. 그의 청빈한 삶과 사목적 헌신은 한국 천주교회의 중요한 유산으로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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