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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이 어디 있냐!’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지성용) 하늘이 장차 큰일을 맡기려 하면 지성용 2024-04-04 15:5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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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불의와 부조리가 만연합니다.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방식의 모순과 대립이 세상을 뒤 덮었습니다. 공정과 상식을 말하지만, 불공정과 몰상식이 판을 칩니다. 원칙을 말하지만, 불법 과 변칙이 난무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세상 문제에서 떠나려고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이 어디 있냐! 귀신은 뭣하나 저런 놈 안 잡아가고!’라고 말합니다. 벗어나고자 하지만 쉽지는 않습니다. 우리들 모든 삶이 정치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서쪽 바다 용유도에서 살다가, 송림동을 거쳐 동쪽 바다 강릉까지 왔습니다. 강릉에는 눈이 많이 내리기도 하지만 습설(濕雪)은 나뭇가지를 뚝뚝 꺾어 버립니다. 인근 삼척에서 만난 박홍표 신부님은 <탈핵 천주교 연대> 공동대표와 <삼척 핵발전소 유치 백지화 투쟁 위원회> 상임 대표로 활동했습니다.


박 신부님은 박주환 신부 편을 들다가 조중동의 십자포화를 받으신 원로 사목자이십니다. “원로”라는 말에 어울리지 않게 얼굴도 동안이시고, 움직임이나 생각하시는 것은 청년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박 신부님은 “(박주환 신부) 바른말 하는데 정직이라니 어느 사제가 교회를 믿고 목숨을 바치겠는가!”라며 탄식하셨습니다. 그분의 눈빛과 생각과 말씀 가운데에서 하느님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사제를 통해서 여러 가지 일을 하신다는 것을 강하게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박정훈 대령의 고군분투(孤軍奮鬪)


박정훈(스테파노) 전 해병대 수사단장은 지난 2월 1일 항명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두 번째로 열리는 군사법원 공판에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날 명동 가톨릭회관 상담실에서 점심 식사와 면담 일정이 잡혀있었으나,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의 재판 출석과 증언 공방으로 재판 은 점심시간을 넘겨 지속 되었습니다. 박정훈 대령의 육체적인 피곤과 심리적인 고충으로 당 일 면담은 가능하지 않았지만, 이후 전화 음성을 통해 박 대령은 재판에 당당하게 임했으며, 최선을 다해 싸우겠노라 다짐했습니다. 그는 현 해병대 사령관에게 당당하게 “지금이라도 사령관으로서 명예로운 선택을 하시길 바란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늘의 큰 뜻을 품고 계시기에 뼈를 깎는 고통이 지나가면 큰 임무가 내려올 것입니다. ‘강 자에게 더 당당하게, 약자에게는 더욱 겸손하게’ 전쟁 군번 해병 6기 저희 아버님의 유언이셨습니다.”라고 문자를 드렸습니다. 박정훈 대령은 “신부님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가슴 깊이 새기고 잘 싸우겠습니다. 반드시 승리하겠습니다.”라고 답변을 보내오셨습니다. 진실을 위해 싸우는 군인, 부하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현직 해병대 사령관과 맞서 싸우는 군인을 바라보며 하느님이 어떻게 살아 움직이는지를 바라보게 됩니다.


임은정 검사의 항명과 민심 검사


반대자들은 임은정을 ‘항명’ 검사라고 부릅니다. 그는 검찰 내부통신망인 이프로스와 소셜미디 어 여러 계정을 통해 검찰 내부에 대한 비판의 글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2018년 서지현 검사가 검찰청 전용 웹사이트인 이프로스에 “나는 소망합니다”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이에 JTBC 뉴스룸에 생방송으로 출연하면서 한국 미투 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 습니다.


임은정 검사는 조직 내부의 잘못된 관행과 문제들을 제기하며 대한민국 검사의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고군분투했습니다. 임 검사는 2022년 7월 첫 번째 단독저서 <계속 가보겠습니다>를 출간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임은정 검사가 검찰 내부 게시판 ‘이프로스’에 게시한 글 19편과 2019년 이후 <경향신문>에 연재한 칼럼 13편을 자세한 후일담과 함께 담았습니다. 출간 즉시 정치사회 분야 베스트셀러 1위에 올라 화제가 되었고, 같은 해 9월, 초판 인세 1,000만 원을 시작으로 3개월간 총 1억 1000만 원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했습니다. 기부금은 공익신고자 보호, 취약계층 무료 급식 지원 등 복지사업에 쓰였습니다. ‘공익신고의 날(12.09)’을 기념해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1억 원 이상 기부자)에 현직 검사 최초로 가입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2021년 3월, 법무부는 검찰총장 제청대상자로 적합한 인물을 국민에게 천거 받았습니다. 한 달 뒤, 법무부는 국민 천거를 통해 접수된 후보자 14명의 명단을 검찰총장 후보추천위원회에 전달했습니다. 각 후보자의 병역 이행 여부, 재산 현황, 경력 등이 적힌 검증 보고서도 함께 전달되었는데. 법무부 장관의 취사 선택 없이 천거 후보 14명 모두 추천위로 넘겨졌습니다. 명단에는 이성윤, 한동수, 임은정 검사 등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민심은 천심이었습니다. 민심은 이제 그들을 역사의 무대로 불러올리려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의 마음이었습니다. 하느님은 '임은정'이라는 사람을 통해서 그분의 정의를 향한 걸음을 멈추지 않고 계시 는 것입니다. 임 검사와 나눈 새해 인사에서도 “끝까지 갈 것입니다. 씩씩하게 꿋꿋하게”라는 말을 합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의미와 소명을 불러일으켜 정의를 위 한 싸움을 멈추지 않게 합니다.


박은정 검사 “디올 백으로 하늘을 가릴 순 없다!”


2020년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에 앞장섰다가 현 정부 들어 거꾸로 징계받을 위기에 처한 박은정 광주지방검찰청 부장검사가 “다음 백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라고 비판하며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박은정 부장검사는 지난 2월 8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직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 렸습니다. 그는 “며칠 전 법무부가 저를 징계하겠다며 일방적으로 통보해왔다”라면서 “저는 고발사주로 실형을 선고받은 검사도 일찌감치 무혐의로 덮고 또 승진까지 시키는 이장폐천(以掌蔽天) 행위에 추호도 협조할 생각이 없다”라고 밝혔습니다. 이장폐천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라는 뜻으로, 얕은수로 잘못을 숨기려고 해도 숨길 수 없음을 이르는 말입니다.


박 부장검사의 사직서 제출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그는 현 정부 출범 직후인 2022년 6월에도 사직서를 제출했지만, 한동훈 장관 시절인 법무부는 입건 중이라는 이유로 수리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도 징계 절차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사직 의사가 받아들여질지는 불투명합니다. 그들은 의로운 사람의 심장을 말려 죽일 생각이지만, 민심은 박은정 검사를 떠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인권보호관실은 지난해 9월부터 박은정 부장검사와 이성윤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감찰에 돌입한 바 있습니다. 두 사람이 2020년 윤석열 검찰총장 감찰과 관련해, 법무 부와 대검찰청으로부터 한동훈 당시 검사장(현 국민의 힘 비상대책위원장) 관련 채널A 검언유착 사건 자료를 받아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윤석열 검찰총장을 감찰한 법무부 감찰위원 회에 제공했다는 것이었고, 박 부장검사는 당시 법무부 감찰담당관이었습니다. 잘한 일이었습니다. 누구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원칙과 상식입니다. 그러나 현 대통령과 집권당의 비상대책 위원장이라는 사람들은 그것을 반칙이라고 합니다.


박은정 검사는 페이스북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1973년 11월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이 워터게이트 사건과 무관하다며 다음과 같이 주장했습니다. 'people have got to know whether or not their President is a crook. Well, I'm not a crook.(국민은 대통령이 사기꾼인지 아닌지 알아야 합니다. 저는 사기꾼이 아닙니다.)' 그러나, 결국 그는 워터게이트 사건 수사 방해를 지시한 것이 사실로 드러나자 하야할 수밖에 없었다. (…) 국민이 선출하고 권 력을 위임했다는 이유로 모든 부분에서 예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독재로 가는 길이다. 닉슨과 미국은 되돌릴 수 없는 비극적 지점을 지났다. 대통령은 사임하라” <1973년 11월 12일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을 인용했습니다.


‘감찰’은 원칙과 상식이지만, ‘디올 백’은 엄연한 불법입니다. 박은정 검사는 새해에 인사를 나누며 “신부님. 저는 괜찮습니다. 이렇게 싸우는 것입니다. 제가 이길 것입니다.”라고 결의를 밝혔습니다. 그에게서 하늘을 만납니다. 나의 사사로운 이익이 아니라 원칙과 상식을 위해 결연하게 싸우는 그녀의 모습에서 하느님을 만납니다.


김현, 방통위 싸움에서 안산 세월호 투쟁까지


대한민국 방송통신위원회는 위원장·부위원장을 포함한 상임위원 5명으로 구성된 협의체입니다. 위원장과 상임위원 2명은 대통령이 추천하고 이외 2명은 야당이, 나머지 1명은 여당이 각 각 추천합니다. 방송의 공공성과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제도적으로 여야, 시민 사회, 정부가 민주적인 협의를 이룬 것입니다.


지난해 8월 23일까지 고군분투하던 김현 방통위 상임위원이 임기가 종료되면서 방통위 상임위원에는 이상인 위원(윤 대통령이 추천한)만 남았습니다. 5인 협의체에서 3인으로 운영되던 방통위가 초유의 1인 운영 체제에 직면했습니다. 이동관 위원장 임명 강행 문제와 자녀 학폭 문제가 세간을 떠들썩하게 흔들었고, 김홍일 위원장 취임 이후에도 대통령 추천 몫의 상임위원 두 명을 제외한 나머지 상임위원 세 자리를 채우지 못하고 ‘2인 위원 체제’의 장기화 속에서, 방통위는 이미 유효기간이 끝난 지상파 방송 재허가 의결을 위한 전체 회의 일정조차 잡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언론이 지금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 싸움의 한 복판에 김현(유딧)이라는 하느님의 전사가 격렬하게 정의를 위해 싸우고 있었습니다.


새해 인사를 나누면서 그는 영화 <노량>의 마지막 대사를 인용했습니다. 이순신이 말했습니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바라나니, 부디 적들을 남김없이 무찌르게 해 주소서. 이 원수를 갚을 수만 있다면 이 한 몸 죽는다 한들 여한이 없을 것입니다.” 김현은 세월호 아이들이 떠올라서 잠을 이룰 수 없던 날들을 기억했습니다. 아이들이 숨차 오르는 장면이 떠올라 힘들었던 날들을 말했습니다.


이제 언론판에서의 싸움을 일단락 짓고, 다시 안산으로 달려가야 했습니다. 오랜 싸움을 통해 솟아오른 그녀를 보며, 하느님의 전사를 만나게 됩니다. 하느님의 정의를 위해 싸우던 유딧의 경기를 보게 됩니다. 그녀의 울부짖음은 세월호에 매장된 아이들의 소리입니다. 아이들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우리들의 마음속에 살아있고, 대한민국의 영혼 속에 살아 움직일 것입니다. 많은 이들의 기억에서 사라져가는 듯해도 다시 일어나 그들을 기억하고 순수를 회복하려는 하느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느님이 어디 있느냐?’라고 묻는 이들에게


하느님은 세상의 정의와 평화를 위해 싸우는 이들의 마음 안에 있습니다. 그들은 성당에 갇혀 있지 않고 길 위로 뛰어들었습니다. 슬퍼하는 사람들, 온유한 사람들,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 안에 하느님은 살아 움직이십니다.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그들 안에 하느님은 살아 움직이십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그들을 모욕하고 협박하며, 그들을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합니다. 그들은 빛과 같은 사람들이어서 합지 속에 집어넣으려 해도 등경 위로 올려집니다.


예수께서 회당에 가시어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를 펴시어 이러한 말씀을 읽었습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 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당장에는 불의가, 부조리가, 절망과 고립이, 마치 어둠이 빛을 삼켜버릴 듯하지만, 역사의 장강(長江)은 언제나 바르게 굽이치며 여기까지 흘러왔습니다. 소소한 이익을 추구하는 소인들이 세상을 집어삼킬 것 같지만, 세상 곳곳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의롭게 살아가는 많은 군자들과 대인들이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들은 빛과 소금 같은 하느님의 사람들입니다. 예 수를 믿는다는 사람들은 필시 그러한 길을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사제들과 수도자들은 더욱 신중하게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의 사제, 수도자이기 전에 하느님의 사제. 하느님의 수도자들이며 ‘진리를 향한 구도의 길을 찾아 나간다’라고 서원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제들과 수도자들이 세상에 대해 침묵하고, 소소한 자신의 일상을 위해 삶을 소비한다면 그것은 삶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의외로 사제들이 ‘교회’, ‘장상’, ‘순명’이라는 울타리에 갇혀 주인의 달란트를 보자기에 싸서는 땅에 묻어 두고 주인이 돌아올 때 항변하는 사람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주인의 탓으로 돌려버립니다.


사실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주인을 오해했습니다. 그래서 주인을 무서운 사람으로, 심지도 않은 데서 거둬들이는 사람으로 생각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주인의 권위를 전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말로는 주인을 두려워했다고 말했지만, 정작 그의 행동에는 주인을 두려워한 모습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주인을 우스운 사람으로 생각하고, 자기 뜻대로 주인이 움직여 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정의로운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드리는 맹자의 위로


<맹자 고자하(告子下)편 15장>에 있는 글을 마지막으로 봄을 열어봅니다. 2024년 봄은 뜨거워질 것입니다. 많은 이들을 길 위에서 만날 것이고, 많은 이들의 웃음과 슬픔, 피와 땀을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굳센 마음으로 세상을 향해 힘찬 하느님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더욱 정진해야 하겠습니다.


天將降大任於是人也(천장강대임어인야)

必先苦其心志(필선고기심지)

勞其筋骨(노기근골)

餓其體膚(아기체부)

空乏其身(공핍기신)

行拂亂其所爲(행불란기소위)

所以動心忍性(소이동심인성)

益其所不能(증익기소불능)


하늘이 장차 이 사람에게 큰일을 맡기려 하면

반드시 먼저 그가 마음의 뜻을 세우기까지 괴로움을 주고

그 육신을 피곤케 하며

그 몸을 굶주리게 하고

그 몸을 궁핍하게 한다.

그가 하려는 바를 힘들게 하고 어지럽게 하는 것은

마음을 쓰는 중에도 흔들리지 않을 참된 성품을 기르고,

불가능하다던 일도 능히 해낼 수 있도록 키우기 위함이다.



이 글은 <공동선> 2024년 3-4월호에도 실린 글입니다.



[필진정보]
지성용 신부 : 가톨릭 관동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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