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10일 일요일, 비
새소리 대신에 그 자리를 빗소리가 채운다. ‘비 오는 날이면 새들은 무얼 하나?’ 젖은 날개로 날아오르지도 못하고 나뭇가지에 하염없이 앉아 지는 비를 하염없이 바라볼까? 이곳 소록도에 내리는 비는 눈물이다. 소록도를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눈물’이라고 부르겠다. 소록도 1번지 ‘(직원) 성당’의 제단 반원천장은 돔 스테인글라스로 장식되었다. 그런데 그 그림의 제목이 ‘하느님의 눈물’이다.
유리화의 십자가는 붕대로 감긴 ‘한센인의 그리스도’로 십자가 밑의 삼각형은 소록도이고 위에 떨어지는 물방울은 하느님의 눈물이다. 사람이 겪는 가장 큰 고통은 ‘하느님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절망감이리라. 그런 인간들에게 하느님의 대답은 ‘나는 인간의 고통을 원하지 않는다. 다만 영원한 생명을 위해서 고통을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인간과 함께 울고 계시는 그분의 눈물이 우리를 절망에서 손잡아주신다. 그래서 고통도 견딜 만하고 외로움도 참을 만하다.
비온 뒤 아무런 인기척 없는 숲길을 혼자 거닐며 정호승의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를 다시 되뇌인다.
갈대 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섬에 버려진 그들의 절망과 외로움이 하루 종일 내 가슴에도 이 섬에도 빗물로 흘러내렸다. 10시 30분 미사 후 성체조배실에서 나가이 다카시의 「묵주알」을 읽으며 인간의 고통에 함께 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묵상했다. 원폭으로 집이 재의 허허벌판이 되었는데도 작가는 부엌 뒷쪽에 있는 타다 만 아직도 따듯한 골반과 요추덩어리를 찾아내고 아내인 줄 안다. 그 옆에 십자가가 달린 묵주가 남아 있었다. 그는 그 덩어리를 양동이에 담았는데 아내가 덜거덕거리며 ‘미안해요. 미안해요’라고 하는 듯했다.
모든 게 끝장난 절망의 끝에서 ‘십자가는 기둥에 걸려있고 성모상과 성경도 있으니 이밖에 또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감사기도를 드리고 있노라니 온 우주의 재부를 혼자 독차지한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라는 고백을 과연 우리도 할 수 있을까? 이 사순절 목숨을 버리시고 영원한 삶으로 건너가신 그분만 생각하련다.
우리 스승 문동환 박사님이 하느님 품에 드셨다. 오늘 미사 강론에서 보속과 참회의 시기인 사순절엔 하늘 문이 활짝 열려있어 이 은혜로운 시기에 돌아가시는 분은 바로 하늘나라로 특급열차를 타고 올라가신다니 슬퍼해서는 안 되겠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따님 영미씨가 어머니 문혜린 여사에게 ‘이 분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나와 사랑에 빠진 사람’이라고 대답하더라는데, 저렇게 아파있는, 사랑하는 여인을 두고 어떻게 문박사님은 눈을 감으셨을까?
하기야 떠나면서 온전히 주님 손에 모든 근심걱정을 넘겨드렸으니 홀가분한 몸으로 훨훨 춤추며 떠나셨겠지, 먼저 가셔서 자리를 보고는 사랑하는 부인을 곧 부르실 것 같은 마음이 든다.
비 그친 후 오후에는 임도로 이어지는 섬 뒷길 걸었다. 바다도 잔잔하고 멀리 보이는 산 뒤켠으로는 연극이 끝나 후 출연진들이 모두 등장하도록 비구름 장막을 하늘 위로 걷어 올리고 있었다. 아마 모래 한신대에서의 문박사님의 영결식 장면이 이럴 듯하다.
보스코는 제네바에서 손주들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오늘 아침녁에는 다시 로마로 떠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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