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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 요를 거두고 걸어가라” 신성국 신부의 ‘요한, 생명이야기’ 19 신성국 2018-03-20 18: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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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5,1-18의 벳자타 연못가의 병자 이야기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은데 이 사건과 사마리아 여인의 우물 사건은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서 제시하는 두 개의 물은 율법과 제도 안에서 생명을 얻는다는 유대 종교의 헛된 신앙을 고발하는 예수 사건이다. 예수가 주는 생명의 물과 벳자타와 사마리아의 우물은 전혀 다르다. 예수의 물은 곧 성령이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물이 곧 성령이다. 


벳자타의 병자와 사마리아 여인은 유대교 율법과 제도가 자신들을 치유할 수 있다고 믿었고 거기서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확신했다. 예수는 이런 신앙을 과감히 쳐내셨다.


예수는 병자가 원하는 대로 물속에 넣어주지 않았다. 어떤 신기한 마술을 부리지 않았다. 병자에게 “일어나, 요를 걷어들고 걸어가거라”고 말씀하셨다. 병자는 예수의 명령대로 그대로 따랐을 뿐이다. 치유를 넘어서 생명이 살아났다.


요 위에서 38년 동안 고생하며 살았던 사람이다. 병자는 요를 벗어날 수 없었고 요 없이는 살수가 없다. 말 그대로 요 안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노예로 살아야 했다. 요는 그를 지켜주고 보호하는, 그래서 결코 버릴 수 없는 필수품이었다. 그러나 예수는 “너에게 더 이상 요는 필요 없다. 요를 가지고 가서 불살라 버려라. 없애라”고 하셨다. 


여기서 ‘요’는 유대교의 ‘율법’이었다. 율법은 절대적 규범이다. 유대인의 생명과 죽음마저 결정짓는 신적 권위가 율법에 있다고 믿었다. 대다수 사람들은 율법의 노예였다. 


예수는 이 병자를 단순히 질병의 질곡에서 벗어나게 한 것이 아니라 노예상태로부터 해방시킨 것이다. 그 사람은 요를 집어 들고 감으로써 요(율법)에 갇힌 자가 아니라 요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유인이 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나를 살리신 분은 율법이 아니라 예수라고 용기 있게 증언한다. 


해방된 백성이 예수를 증거하고 있다. 그들은 지도자들, 권력자들 앞에서도 겁이 없다. 노예 상태에 있는 자들은 두려움이 많다. 돈의 노예, 조직의 노예, 자기 이익과 이기심, 교만 때문에 하느님을 못 본다. 욕심과 물질인 나를 소유한다. 나는 꼼짝을 못하고 산다.


교회의 창고에 돈과 교만, 욕심, 권력이 가득 차있다. 하느님을 보지 못하고 듣지도 못하면서 노예로 살아가는 교회의 현실이다. 2천 년 전 예수시대에 율법을 절대화시키고 사람들을 노예화시킨 유대교가 어느새 우리 교회 안에서 새로운 유대교를 만들고 있다. 


“일어나, 요를 거두고 걸어가라” 예수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며, 용기 있게 걸어가게 하신다. 생명과 은총은 교회법이 아니라 예수가 주신 말씀에서 온다는 진리를 벳자타 못가의 병자는 오늘도 생생히 증언하고 있다.




[신부열강]은 ‘소리’로 듣는 팟캐스트 방송으로도 업로드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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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진정보]
신성국 : 천주교 청주교구 소속으로 마리스타 교육수사회 파견사제다. 현재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사무총장을 맡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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