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 / 자 / 글자. 문자
박완서(1931-2011) 작가가 극심한 분노와 의혹에 시달리다가 주님 앞에 맞섰다. 작가의 말이다. “주님, 제가 도망쳐 나갈 문은 어딥니까. 들어 온 문이 있으면 나갈 문도 있어야 하는 게 아닙니까. 도대체 문을 어디다 숨겨 놓으셨습니까. 뭐라구요? 아직 들어오지도 않았다구요? 오오, 주님 나가기 위해서라도 일단 들어가게 하소서.” (1996년 4월 28일 서울주보 <말씀의 이삭> 중) ‘들어오지 않고는 나갈 수 없는 문’은 죽은 글자 속에는 없다.
교회에 매인 노예와 하느님안의 자유인
성탄을 죽은 문자로 만들더니
부활을 행사로 만들고
사람을 빚은 숨결을 십자가에 못 박은
노예들의 합창은 거창하다
문자판과 황금십자가와 석고상에
분향을 하는 노예들이
가난하고 버림받은 인간을 향해
경배하지 못할 이유를 찾는 동안
성탄을 이웃에서 보며
부활을 제 몸으로 체험하고
숨결로써 십자가를 등에 지는
자유인들의 합창은 소박하다
- TA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