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5일 민들레국수집 대표 서영남 씨가 한국으로 귀국했다. 굶주린 빈민촌 어린이들의 끼니를 챙겨주기 위해 2014년 필리핀으로 떠났던 그는 필리핀 칼로오칸 교구와의 건물 계약만료로 3년여 동안의 여정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다.
그러나 서영남 씨가 건물 계약만료 때문에 빈민 무료급식 활동을 중단한 상황에는 석연치 않는 구석이 많았다. 굶주린 아이들에게 밥을 주고 가난 때문에 학교를 못 다녔던 학생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던 활동이 ‘건물 계약만료’로 좌절돼야 하는 상황이라니.
서영남 씨는 인천교구가 주보를 통해 민들레국수집에 대한 단절을 공표한 무렵부터 칼로오칸 교구도 필리핀 민들레국수집과 거리를 두었고, 결국 철수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서영남 씨는 인천교구가 사회복지 활동을 성직자 중심으로 하길 원하면서 평신도의 사회복지를 가로막는 상황이라 안타깝다고 말했다.
지난해 3월 가톨릭프레스는 인천교구의 민들레국수집 주보공지 사건으로 교회의 권력구조와 폭력의 악순환에 대한 특별보도를 시작했다. 제보자들을 통해 권력 지향적인 교회 내부의 문제점을 고발하고 폭력의 현장을 보도해, 교회가 보다 복음적인 사목으로 나아가길 바랐다. (관련기사)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교회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다시 민들레국수집을 찾았다. 필리핀에서 돌아온 서영남 씨에게 그간 달라진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물었다.
책 ‘민들레 국수집의 홀씨 하나’ 인세로 필리핀 활동 시작
필리핀은 서영남 씨가 유일하게 가본 외국이었다. 1988년 수도원 수사 시절 필리핀 마닐라로 견학을 가면서 현지 빈민촌의 충격적이고 안타까운 상황을 체험했다. 민들레국수집을 운영하면서도 수사시절 필리핀 빈민촌 체험에 대한 안타까움은 가슴에 계속 남아있었다.
2010년 ‘민들레 국수집의 홀씨 하나’를 출판하고, 그에 대한 인세가 들어왔을 때, 그는 필리핀 빈민촌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기로 결심했다. 2011년 102명의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보냈고, 2012년에는 120명의 아이들로 늘렸다.
그러다가 2013년 민들레국수집 10주년 감사미사에 고 최기산 주교님이 주례를 하러 오셨다. 그런데 필리핀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교구와 함께 아이들을 돕자’고 제안하셨다. 그래서 인천교구와 함께 필리핀 민들레국수집을 시작하게 됐다.
그는 교회와 함께 가난한 이들을 찾아간다는 생각에 기뻤다. 그해 8월 서영남 씨의 가족은 필리핀으로 현지 조사에 나섰다.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을 도울지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10월 필리핀 칼로오칸 교구 산 로케 성당 바로 옆에 있는 2층 건물을 무상으로 임대하는 계약을 맺었다.
서영남 씨가 활동했던 곳은 필리핀 마닐라 나보타스(Navotas)와 칼로오칸(Caloocan), 말라본(Malabon)이다. 모두 필리핀 대표적인 도시 빈민구역이다. 쓰레기로 인한 악취는 물론, 하수도 시설과 화장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각종 오물이 저지대 빈민들과 함께 섞여있는 환경이다.
그는 필리핀이 양극화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부자들은 높은 담을 쌓고 총을 든 경비들이 집을 지키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벽은 물론, 지붕조차 없는 집에서 산다는 것이다. 심지어 입을 옷이 없어 알몸으로 쓰레기장을 돌아다니는 어린이들도 있었다. 쓰레기장을 뒤지고 있는 어린이의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다.
기존에도 다른 단체에서 빈민가 지원 활동이 있었지만, 마을 전체가 가난하다보니 한계가 있어 보였다. 아무리 어려도 시설에 들어온지 6개월이 되면 몸무게를 측정하고 시설을 나가야 했다. 정상 체중에 가까우면 무료급식이 중단됐다. 아이들을 무게로 판단해 내보내는 것이 가슴 아팠다.
서영남 씨는 필리핀 빈민촌에서도 민들레국수집 방식으로 가난한 이들을 대접했다. 민들레센터를 찾는 아이들은 원하는 만큼, 또 언제나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센터를 방문한 아이뿐 아니라, 그 아이의 집에서 굶고 있던 다른 가족이 찾아와도 식사를 제공했다. 아이들은 굶주림이 해결되자 공부를 하고 싶어 했고, 그는 이 또한 기꺼운 마음으로 도왔다.
“내 사비를 털어 굶주린 아이들 밥 챙기는데, 무슨 욕심을 부린다는 것인지”
필리핀에서는 현지 건물 계약자가 재건축된 건물을 보고 마음이 바뀌어 재계약을 안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주변에서는 임대계약을 20~30년으로 맺을 것을 권했다. 그러나 계약당시 동행한 인천교구 사회사목국 신부는 3년 계약을 고집했다. 이후 서영남 씨가 욕심을 부려 수십 년간 임대계약을 맺으려고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는 “내 사비를 털어 굶주린 아이들 밥을 챙기는데, 무슨 욕심을 부린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당시 심정을 털어놨다.
칼로오칸 교구 담당 신부는 인천교구가 돈을 들여 필리핀 민들레국수집과 민들레센터를 운영하는 줄 알았다. 어느 순간부터 서영남 씨는 인천교구의 필리핀 선교를 돕는 봉사자 정도로 알려졌다. 그는 칼로오칸 교구 담당 신부에게 정확한 상황을 설명했고 이후 본격적인 필리핀민들레국수집이 열릴 수 있었다. 칼로오칸 교구 신부도 센터를 종종 방문해 아이들과 시간을 보냈다.
한편, 2016년 3월 13일 인천교구 사회사목국은 주보를 통해 서영남 씨가 운영하는 ‘민들레국수집이 더는 천주교 인천교구 소속의 인준시설이 아님’을 공지했다. 인천교구 주보 공지를 즈음해 산 로케 성당 신부와 칼로오칸 교구 신부들도 민들레센터를 더 이상 방문하지 않았다.
종종 마주치더라도 ‘무슨 목적이 있어서 여기에 왔는냐’라든지, ‘왜 이런 일을 하냐’는 부정적인 질문을 했다. 갑자기 돌변한 신부들의 태도에 서영남 씨는 당황했다. 이후 산 로케 성당 신부로부터 “건물을 비워줬으면 좋겠다”라는 통보를 받았다. 성당을 찾아가면 만나주지 않고 공문을 보내라 했고 공문을 보내면 소식이 없었다. 결국 아이들을 남겨두고 그는 한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다른 장소를 알아봤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현지인의 명의를 빌리거나 법인을 만들어야 하는데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물품을 주민들에게 나눠주고 아이들은 센터가 없어도 계속 공부할 수 있도록 방법을 마련해두고 돌아왔다. 간판은 빈민촌 한 가게에 맡겨 놨다. 방법이 있다면 다시 아이들과 함께 하고 싶다.
“지도신부가 없어도, 장부를 들추지 않아도…”
서영남 씨는 2003년 4월 1일 전 재산 300만원을 쏟아 민들레국수집을 열었다. 2004년 교구 사회복지회 가입시설 등록을 요청했지만, ‘교회 돈을 함부로 줄 수 없다’는 대답과 함께 거절당했다. 이후 2009년 민들레희망지원센터를 열고 이 센터를 인천교구 사회복지회 직영 시설로 등록한 후에야, 민들레국수집은 교구 사회복지회 가입시설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2014년 교구 사회복지회는 민들레국수집에 대한 감사를 통보했다. 서영남 씨는 고민 끝에 교구 사회복지회 가입시설 탈퇴를 결정했다.
그는 “왜 갑자기 교구가 민들레국수집 장부를 궁금해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동안 가입시설은 감사를 진행한 적이 없었고, 감사를 준비하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갑자기 통보하고 무조건 감사를 하겠다는 식이었다”며 당시의 일을 설명했다.
교구로부터 운영비를 받는 곳이 아니다. 후원자들이 민들레국수집을 보고 판단해 믿고 후원하는 곳이다. 그런데 아무 권한도 없는 교구가 사회복지회 가입시설이란 이유로 감사를 하겠다고 막무가내였다. 장부를 보고 뭘 알아내고 싶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식의 사회복지회 라면 탈퇴하는 것이 낫다’ 싶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그동안 사회복지회에 가입했던 다른 시설들도 하나 둘 탈퇴했다.
최근 인천교구가 성직자·수도자가 운영하지 않는 사회복지 시설을 교구 사회복지회에서 배제하는 배타성을 보여주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지도신부가 없어도, 장부를 들추지 않아도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전하며 가톨릭 정신으로 잘 운영되던 시설들이 많다. 그런데 교구는 ‘성직자 중심주의’로 이들을 밀어낸다. 기가 막힌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몇 군데 관련 시설들에 확인 전화를 해보니 ‘교구랑 더 이상 얽히기 싫다’, ‘교구와 관련된 사건으로 언론에 드러나길 원치 않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도 나는 교회를 떠나지 않는다”
사회복지 시설이 교회를 떠나게 되면 어느 순간, ‘시설장 부인이 외제차를 몰고 다닌다’거나 ‘시설장이 돈을 챙겨 아파트 몇 채를 샀다’는 뒷소문이 돈다. 이런 상황을 보고 있자니, ‘이 교회는 칼로 된 교회인가’ 싶었다.
그러나 서영남 씨는 “하느님이 하시는 일은 요령 같은 것이 없다. 이 민들레국수집도 300만원으로 시작했고, 하루하루가 기적 속에서 오늘에 이르렀다”라며 “작년 인천교구 주보 때문에 걱정이 많았는데, 이후 오히려 후원이 늘어났다. 교구가 민들레국수집을 탄압하니까 신자들은 물론, 일반인들까지도 국수집을 돕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인천교구가 다시 교회 정신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사회복음화’라는 미명으로 진행되고 있는 각종 사업을 과감히 포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교회가 병원사업과 대학운영사업 등 각종 사업에 빠지다보면 자신의 정체성을 잃는 것은 물론, 사업운영으로 진 빚을 갚기 위해 더욱 돈을 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교회는 대구대교구의 사회복지 방식을 롤 모델로 따르고 있다. 돈 한 푼 안들이고 국가의 것을 받아서 운영 하고 생색을 낸다. 교회가 제발 위탁 좀 안 받았으면 좋겠다. 정부로부터 돈을 받아야 되니까, 사람보다는 서류만 보게 된다.
서영남 씨는 “교회는 국가가 하는 사회복지의 사각지대를 봐야한다. 나라가 잘 하는 것은 내버려 두고 나라가 신경 못 쓰는 곳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오늘날 한국교회는 너무 커졌기 때문에 ‘성직자 중심주의’를 강요해선 안 된다. 성직자만 중심에 두고 평신도를 밀어내는 것은 교회 내 다양한 신자들의 요구와 교회 밖 세상의 흐름에 역행하는 퇴보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영남 씨는 “나는 교회를 떠나지 않는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교구가 교회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앞으로도 하느님 안에서 가난한 이들과 더 많이 함께 하고 싶다. 예수님은 가난한 이들 곁에 계셨고, 나도 민들레국수집을 운영하며 그분을 따라 그렇게 살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