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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김근수] 사제 영명축일에 돈봉투는 그만 예의는 돈과 관계없다 김근수 2016-01-25 11:4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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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에 대한 한국 신자들의 존경심은 대단하다. 그 갸륵한 정성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사제의 영명축일에 신자들이 바치는 미사와 기도 등 영적 예물은 참으로 감동이다. 신자와 사제가 일치하고 존경을 표하는 모습은 한국천주교회의 자랑이다.


영적 예물 뿐 아니라 물적 예물도 바쳐지고는 한다. 귀하게 받은 물적 예물을 자선과 기부, 선행 등에 남몰래 요긴하게 쓰는 사제가 많다. 그런 사실을 신자들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신자들이 더 정성스레 물적 예물을 준비하는 것이다. 물적 예물을 간곡하게 사양하는 사제들도 드물지 않다. 그 깊은 뜻을 모르는 신자는 없다. 


그러나 물적 예물을 마련하지 못하는 가난한 신자들도 있다. 그 안타까움과 자괴심을 우리는 안다. 물적 예물의 사용처가 아름다운 것을 인정해도, 물적 예물 자체에 의문을 품는 신자들도 있다. 그런 질문을 그저 묵살할게 아니다.


물적 예물에 꼭 돈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물적 예물이란 말을 돈이라는 단어로 정직하게 바꾸어보자. 적지 않은 본당에서 사제의 영명축일을 맞아 신자들이 돈봉투를 모으거나 바치고 있다. 이 풍경이 아름다운가? 바람직한가? 계속 이어가야 할 전통인가? 


계속 하자는 신자도 있을 것이다. 가능하면 없애자는 의견도 있을 것이다. 신자들도 사제들도 여러 의견이 있을 것이다. 주교들은 어떤 생각일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중요한 판단 기준은 무엇일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 아닐까? 가난한 교회 만들기에 사제는 모범을 보여야 하지 않는가?


‘교구사제는 가난 서약을 하지 않았으니 가난이 사제와 무슨 상관이냐’고 항변하는게 옳을까? 사제는 가난해야 하고, 가난해야 비로소 사제다. 사제에게 가난은 교회법적 서약 이전에 복음의 의무다. 가난하지 않은 사제는 하느님의 요청을 어기는 셈이다. 가난하지 않으면 사제의 본분에서 멀어질 위험이 커진다. 가난과 거리가 멀게 사는 사제들이 실제로 적지 않다.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이다.  


사제의 영명축일에 물적 예물을 드리는 관행을 이제 없애는게 어떨까? 성당에서 예의를 돈으로 표현하는 모습은 복음 정신과 거리가 멀다. 교회 밖 어디에 가서 크게 자랑할 일도 아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아신다면 얼마나 슬퍼하실까. 혼배미사를 드리고 봉투받는 모습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분노한 적이 있었다. 


사제의 영명축일에 축하는 영적 예물로 충분하지 않을까. 좋은 뜻이 있어도, 사제에게 돈을 드리는 것은 권할 일이 아니다. 우선 신자들이 생각을 바꿀 일이다. 그까짓 돈봉투로 착한 사제들을 왜 난처하게 만드는가. 


영명축일뿐 아니다. 사제의 은경축에서도 돈봉투는 없애자. 이러저런 여러 기회에 사제에게 돈으로 예의를 갖추는 일은 그만 두자. 주지도 말고, 받지도 말자. 돈으로 예의를 표시하는 일은 한국천주교회에서 이제 그만 보자. 


‘악마는 지갑 속으로 들어온다’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말했다. 돈을 가까이 하는 사제는 세속화와 부패의 위험에 가까이 있다. 귀한 우리 사제들을 악마의 위험에서 보호하자. 사제와 돈은 멀수록 좋다. 사제들을 돈에서 보호하자. 그것이 우리 평신도의 도리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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