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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나눔-김혜경] 부드럽고 순한 귀(耳順)를 달고 중국근대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루쉰의 대표적 작품 「아큐정전」. 그 주인공 아큐(阿Q)는, 어디 태생인지도 모르고 이름도 본적도 분명치 않은 가난뱅이다. 그저 마을사람들에게 품을 팔아 그날그날 먹거리를 해결하며 사는 말라깽이에 헌털뱅이다. 그런 주제에(?) 쓸데없이 자존심은 강해서 동네사람들은 물론이고 마을유지인 자오와 첸... 2017-03-10 김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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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나눔-김혜경] 찬란하고 쓸쓸하신, 神의 침묵 유명한 일본의 가톨릭 소설가 엔도 슈사쿠가 오십여 년 전에 쓴 「침묵」은 본질적인 무언가를 찾고 싶을 때 읽게 되는 책이다. 여기저기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다반사인 요즘, 북적거리는 마음이 영 가라앉지 않을 때, 믿음이나 사랑이라는 말이 가진 무게감을 새삼 느끼게 하는 작품. 밀도 있는 구성으로 나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예수가 말... 2017-02-09 김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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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나눔-김혜경] 정유년, 나의 초식동물 이행기 2017년 새해가 밝았다. 올해 정유년(丁酉年)은 닭의 해다. 예로부터 닭은 어둠에서 빛을 여는, 희망과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상징이었다. 음기와 액운을 쫓고 양기를 집에 머물게 하는 상서로운 동물로도 여겼다. 세화(새해에 그리는 그림)로 그려 대문 등에 붙여서 귀신을 쫓거나 복을 기원하기도 했다. 지난 해 우리는 모두 그 어느 ... 2017-01-11 김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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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나눔-김혜경] 광화문, 그 뜨거운 연가 큰물은 가장 낮은 곳으로 흐른다. 큰물은 선두를 다투지 않고 자리를 탐하지 않는다. 먼저 내달리던 물이 빈 웅덩이를 채우면, 뒷물이 그 곁을 스치며 새로운 선두가 된다. 부드러운 힘으로 단단한 것들을 깨고 갈아 제일 낮은 곳에서 가장 거대하고 육중한 존재로 완성된다. ⑴주말이면 이 물처럼 광화문에 사람들이 모여든다. 낯모르는 이... 2016-12-08 김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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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나눔-김혜경] 삶의 또 다른 이름, 죽음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우수수 떨어지는 노란 은행잎 때문에 괜스레 감상에 젖게 되는 이 가을. 마음 맞는 이들을 만나 따뜻한 차도 함께 마시고 담소도 나누면서 소소한 즐거움을 누리기에 더없이 좋을 그런 계절이다. 그런데 요즈음 상식을 뒤엎는 뉴스들로 온 나라가 시끌벅적하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란 사람이 일개 개인에게 휘둘려 공... 2016-11-11 김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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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나눔-김혜경] 사랑, 오직 ‘내.면.에.만’ 머무르게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낮이면 미적지근한 선풍기 바람에 얼굴을 들이밀고는 연신 얼음물을 들이켠다. 밤사이 조금 가라앉았던 땀띠가 삐질삐질 흐르는 땀 때문에 목 언저리 여기저기 벌겋게 다시 솟는다. 후텁지근한 날씨에 가려운 목을 벅벅 긁어대다가 그야말로 불현듯, ‘사랑’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사람이 사람을 예사로 수단삼... 2016-09-09 김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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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나눔-김혜경] 딥러닝보다 더 ‘딥’할 수 있을까? 지난 봄,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대결. 바둑의 ㅂ자도 모르지만 인간과 컴퓨터 프로그램이 바둑을 둔다는 게 신기했다. 그러면서 기계를 상대로 뭐 꼭 그런 거까지 해야 하는가 생각했고. 이런저런 세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이세돌이 이길 거라 여겼다. 아무렴 기계보다 못하겠어, 이세돌인데…싶었다.... 2016-08-08 김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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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나눔-김혜경] 주고-받고 또 주고-받고 다그치는 시간에 기껏 사발면 하나도 먹지 못하고 스러져간 열아홉 김군, 세상에서 아예 등 떠밀려버린 AS기사. 끼니도 거른 채, 고객을 왕처럼 여기며. 그렇게 살아낸 결과가 죽음이라니. “아들더러 가진 거 없어도 책임감 갖고 열심히 살라고, 그러지 말걸 그랬어요…”라며 오열하던 김군 어머니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뭔... 2016-07-11 김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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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나눔-김혜경] 부조리의 조화, 염불춤의 아이러니 동네 뒷산에서 뻐꾸기가 울어대는 걸 보니 여름인가 보다. 이맘때면 하루에도 몇 차례씩 들리는 뻐꾹뻐꾹 소리는 참 아련하다. 뻐꾸기는 어쩌다 제 새끼 건사할 둥지 하나 못 짓고 남의 둥지에 알을 낳고는 나 몰라라 하는 건지. 게다가 알에서 깬 새끼 녀석은 저만 살겠다고 둥지 주인이 낳은 알들을 밖으로 밀쳐내 버린다. 아무것 모르는 어... 2016-06-08 김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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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나눔-김혜경] 여전히 광주, 소년이 온다 산이며 들이며 연둣빛 초록이 눈부시게 반짝이는 오월, 순결하고 깨끗한 소년처럼 싱그러운 풍경이어서 더 아픈 날들. 교복 입은 아이들만 보아도 마음이 아릿해진다. 어른인 게 미안하다. 그래서 이 오월, 어렵사리 한 번 읽고는 밀쳐두었던 「소년이 온다」를 펴든다. 꼼꼼히 읽으리라 용기를 낸다.사실 한강은 아껴 읽... 2016-05-12 김혜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