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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배하는 일도 달인의 경지에 이르면... 2015년 9월 16일 수요일, 맑음우리가 오면 늘 묵은 쌀을 서울집 테라스에 뿌려주곤 한다. 그런데 요 며칠 참새는 물론 뻔뻔한 비둘기까지 가까이 오질 않고 단풍나무에서 서성인다. 웬 일인가 싶어 지켜보니까 우리 침실 앞에 고양이가 납작이 엎드려 날짐승을 기다리고 있다. 몇 달 전 마당 한 구석에 꿩의 깃털이 수북하게 쌓이고 몸체는 흔적... 2015-09-17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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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몇 살까지 사회주의자여야 하는가? 2015년 9월 14일 월요일총각이 대문을 여는 소리가 딸깍 들린다. 이른 새벽이다. 이어서 골목길을 뛰어가는 발걸음 소리. 오늘도 늦었나? 그렇다고 잠이라도 푹 잔건 아닐 게다. 집안 청소를 들먹이면 “이모님은 제가 제일 게으를 거라고 보시죠? 그래도 제가 제 친구들 중에서는 중간은 간다구요. 중용(中庸)이라고 아시죠? 저보다 게으른 친... 2015-09-15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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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담이라는 아주 낯선 곳을 찾아서 2015년 9월 12일 토요일, 맑음‘경기도 화성시 봉담읍’이라는 곳이 지도상에 있다는 것은 알아냈다.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봉담-비봉’인가 하는 고속도로 표지판이 따로 붙어 있어, 마치 기찻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기차가 밤을 새러 기지창으로 가는 철길처럼 외길이 한 가닥 나 있었다. 언젠가 친구 윤길수 목사를 보러 화성에 갔... 2015-09-13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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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달치 농사를 사흘에 해치우고서... 2015년 9월 10일 목요일, 맑음햇살은 따갑지만 전형적인 가을하늘이다. 새벽에는 부부가 테라스에 나와서 ‘별이 쏟아지는’ 가을하늘을 한참이나 올려다보았다. 동쪽으로는 카시오페아 아래로 페르세우스와 그 왕자가 구출하러 온 안드로메다도 한 눈에 보였다. 남쪽으로는 궁수(弓手, sagitarius)의 현란한 위용이, 머리 위에는 여름밤의 대 삼... 2015-09-11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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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밤길' 2015년 9월 7일 월요일, 맑음밤새 선잠을 잤다. 엄마의 숨결은 고르디 고른데도 언젠가 저 숨을 멈추실 것 같다는 불안감이 내내 나를 사로잡았던 듯하다. 화장실을 가시면서 휘청휘청 옷장 문을 붙잡더니만 다음 손잡이를 찾아서 다음 벽으로 갈 화살표로 삼으시는 동작이다.몇 주 전까지 계시던 방은 옷장 끝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화장실로 ... 2015-09-09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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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 한 마리까지 창조하시고 기억해두시고 구원하신다?" 2015년 9월 5일 토요일, 비오다 흐림석 달만의 귀국과 미루씨의 해프닝으로 내게 보내오는 패친, 카친들의 귀국환영인사가 대단한데 오랜만에 돌아와 일손이 안 잡히리라는 염려의 글도 꽤 된다. 그런데 벌써 이튿날부터 일손이 안 잡히는 게 아니고 할 일이 너무 많아 걱정이다!우리가 온다고 손바닥 만한 잔디밭을 엽이가 깎긴 했는데 나머... 2015-09-06 전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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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산상에서 구름과 노닐고 밤에는 인가에서 만월과 노닐었노라 2015년 8월 28일 금요일, 맑고 높은 산은 구름오로파 성모성지에 갔다. 성지 뒤에 있는 무크로네산(로마제국 시대부터 성산(聖山)으로 숭배받아왔다)에 가는 길인데 오로파 성지에서 일하는 위신부를 한 번 더 만나보기 위함이기도 하다. 아무도 모르는 산골짜기 성지에서 8월 한 달을 보내며 사목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한국인 ... 2015-08-30 전순란